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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녀는 행방불명 (bgm)
게시물ID : panic_721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뿡분
추천 : 12
조회수 : 452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26 15:15:11
 
4343.jpg
 
 
 
 그녀는 행방불명
 
 
 
 또다. 또, 그 여자가…….
 
 악몽 같았던 밤은 지나갔다. 나는 흥건하게 젖은 이마를 닦으며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온 방 안에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지만, 나 홀로 악몽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발가락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관통하는 그 서늘한 느낌.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직도 그 여자가 창백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4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꾼 악몽을 공포영화로 만들면 적어도 200편은 넘을 터였다. 출연자는 바뀌는 법 없이 정해져있다.
 
나와 그 여자.
 여자는 내 위에 누워서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여자가 나타나는 날에는 대체로 몸이 무겁다. 그래서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보면 악몽이 시작되는 패턴이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창백한 뺨과 거미줄처럼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먼저 보인다. 여자는 내 위에 누워있다. 한뼘 정도 공간을 두고 허공에 둥둥 떠서. 그녀는 등장해서 퇴장할 때까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하는 말은,
 
 “도와줘요.”
 
 목소리며 표정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분명 꿈일 텐데도, 나는 외면하지 못하고 어쩔줄 몰라한다. 내 뺨 위로 떨어지는 여자의 눈물이 생생하기 때문일까. 하기야 세상 어떤 사람이, 어떤 남자가 “도와주세요”, 그 애틋한 부탁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아는 사람이라면.
 정확히는 한다리 건너서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그녀는 내 대학시절 스승의 딸이었다. 결벽증과 고지식함으로 유명했던 최 교수, 그의 외동딸이 분명했다. 꿈속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누구였더라. 아, 그 이상했던 애.
 
 아버지 후광으로 대학에 입학한 재수 없는 애,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꼬리치고 다니는 불여우, 스토커, 미저리 등등.
 많은 별명이 그녀를 뒤따랐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기회도 없었다. 2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휴학하곤 잠적해버렸으니까.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최연희라는 이름이 캠퍼스 내에 유령처럼 떠돌아 다녔다. 최 교수가 강단에 설 때마다 그의 딸 또한 입방아에 올랐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와 재수없기로 유명한 딸의 조합은 뒷담화 소재로 쓰기엔 환상이었으니까. 
 최 교수 모녀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이름도 간간히 등장하곤 했다.
 
 “애제자, 스승님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는 건 아니겠지?”
 “누가 애제자야?”
 “과제도 안 내, 시험도 백지로 갖다내고. 그렇다고 출결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에이쁠? 그 깐깐하기로 유명한 최 교수가 너한테만 점수를 퍼 주잖아. 교수님 애정을 한 몸에 받는 기분이 어때?”
 
 최 교수의 애제자가 내 별명이었으니까,
 그들 모녀 사이에 어중간하니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최 교수의 관심은 어색했다. 나는 그리 성실한 편도 아니었고, 붙임성이 좋아서 교수들에게 사랑받는 학생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최 교수는 나를 곁에 두려고 했다. 계절학기 중에는 그의 잔심부름을 도맡았을 정도로.
 
 아무튼 내 기억 속에 최 교수와 최연희는 유별난, 이상한 사람들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4년 전부터 최연희가 내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봐도 귀신인 몰골로. “도와주세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는 꿈 밖에서도 최연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을까? 소문대로 유학을 가거나 학교를 옮긴 게 아니라면? 홀연히 사라졌던 게, 본인 의사가 아니었다면? 한밤중, 길을 가다가 납치당하는 그녀를 떠올려 본다. 목이 졸려서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라든가, 강물에 내던져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건, 악몽이 아니다.
 악몽이라면 잠에서 깨면 잊혀져야 옳지 않는가.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녀는 왜 내 꿈에 나오는 걸까.
 그녀에 대한 생각은 냄비 속의 물처럼 끓어올라, 흘러 넘쳐서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동안 잘 지냈나? 날세, 최 교수.”
 
 다름 아닌 최 교수였다. 몇 년 만에 듣는 최 교수의 목소리는 늙고, 지쳐 있었다.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네만…….”
 
 그는 여전히 나를 자신의 애제자, 부려먹기 좋은 순진한 학생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품을 떠난 지 4년이나 흘렀건만.
 
 “아닙니다. 다른 분도 아닌 교수님 일인걸요. 말씀만 하십시오.”
 “휴가동안 집을 봐줄 수 있겠나? 일본에 급하게 갈 일이 생겨서 말일세.”
 
 이해되지 않는 부탁이었다. 몇 년, 몇 달도 아니고 고작 며칠 떠나 있는 동안 집을 봐달라니. 애완동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집지키는 개 취급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여러모로 석연찮은 부탁이었다.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하기도,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어쨌거나 그가 점수를 잘 준 덕분에 졸업에서 취업까지 탄탄대로였으니까.
 이어진 침묵에, 최 교수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연희를 기억하나?”
 “연희라면……따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벌써 4년이 넘었군. 자네가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몰라도, 내 딸은 방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네.”
 “따님이라면……유학을 간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무수한 추측의 씨앗만 뿌려놓고 연기처럼 사라진 최연희.
 그녀가 사라진 이유에 관해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지만, 유학길에 올랐다는 설이 가장 지배적이었다.
 최 교수는 호소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유학을 간 게 아니라네. 그야말로 연기처럼 사라졌지. 잘 지내라는 쪽지도 남기지 않고. 입고 있던 옷만 걸친 채로 사라졌단 말일세.”
 
 실종, 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꿈속에서 도와달라고 울던 모습도. 언젠가 내 상상 속에 나왔던 비참한 최후, 목이 졸려서 강물에 유기당하는 모습 또한 떠올랐다.
 
 “혹시…….”
 
 그는 불길한 추측을 알아차렸는지 내 말을 끊었다.
 
 “아니,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도 아니라네. 연희는 잘 지내고 있어. 드문드문 전화가 왔으니까. 문제는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거지만. 아내와 내가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는 중이지만……벌써 4년이나 흘렀군. 그 애가 언제 마음을 바꾸고 우리 품으로 돌아올진, 솔직히 모르겠네.”
 
 이 기묘한 부탁은 최연희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집을 비울 수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네. 연희가 사라지고 나서 쭉 미뤄온 일이라, 안 갈수도 없고 말이야.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이라곤, 자네밖에 떠오르지 않더군. 염치없지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그러겠노라 답했다.
 최 교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최연희가 잘 지내고 있다면, 내 꿈에 나타날 일이 없겠지. 내 눈으로, 귀로, 보고 들어서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만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해방될 테니 말이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약속 날짜를 기다렸다.
 
 안개가 깔린 새벽, 나는 첫차에 올라 최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잔심부름을 도맡았기 때문에 최 교수의 집 주소는 훤히 알고 있었다. 최 교수는 묵직한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 특유의 시선으로 걸어오는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그도 굳게 닫힌 입매를 뒤틀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게. 오랜만이군.”
 “잘 지내셨습니까?”
 
 최 교수의 아내는 먼저 차에 올라 있었다. 검게 선팅된 창문을 빼꼼 내리고 고개를 까닥이는 걸로 인사를 끝냈다. 숙여진 시선 끝에는 내가 들고 있는 가방이 있었다. 불룩한 가방이 고깝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정이 뚝 떨어지는지, 오히려 내가 부탁을 하러 온 기분이었다. 하기야 딸이 사라진지 몇 년째니, 예전의 그 다정했던 성격도 바뀔 법도 하지.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부탁하네.”
 
 그들이 탄 차가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한참만에 집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현관에서부터 2층으로 가는 계단 벽까지 액자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였다. 딸이라곤 하나뿐이었으니, 최연희가 분명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집안 깊은 곳으로 갈수록 점점 성장해갔다. 7살, 10살……교복을 입은 모습에서 갓 대학에 입학한 모습까지. 최연희는 사라진 후에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모양이다. 21살 나이에 멈춘 채로,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고.
 
 나는 내 기억속의 최연희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사진 앞에 멈춰 섰다. 어깨를 넘어서는 긴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말려서 굽이치고 있었다. 분홍색 립스틱과 짙은 마스카라는 그녀를 더 어려보이게 했다. 언니 옷을 빌려 입고 외출에 나선 소녀처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새내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2층 가장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 잃은 원피스가 구김도 없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문 맞은편에 놓인 전신 거울에는 사진 몇 장과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새빨간 립스틱으로 하트까지 그려놓은 걸 보면 좋아하는 남자하고 주고 받은 쪽지인 모양이다.
 몇차례 교수의 집에 방문했었지만 2층으로 올라온 적은 처음이었다. 최연희의 방에 들어온 것도. 그녀의 방은 소문처럼 요사스럽지도, 미저리 같지도 않았다. 평범하고, 수수하고, 소녀답다는 감상밖엔 들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방안을 쭉 둘러봤다. 밤마다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여자와, 이 방의 주인이 동일인물인지 실감나지 않아서였다. 
 세상에 귀신이란 게, 정말 있는 걸까?
 
 오늘밤에 밝혀질 테지. 그러길 바란다.
 
 최 교수가 일러둔 대로 냉장고 속은 음식으로 가득 했다. 그것들로 끼니를 때우고, 거실에 앉아서 하릴없이 리모컨을 돌렸다. 영화를 틀어 놓고 보다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아직 오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익숙한 느낌이다. 악몽을 꾸는 날이면 이렇게 몸이 무겁고, 일찍 졸음이 몰려왔지. 멀리서 전화 벨 소리가 들린다. 몽롱한 정신 너머로 그 소리가 아득하니 흩어진다.
 
 전화 받아야지. 최 교수일지도 모르잖아. 아니, 최연희가 전화한 건지도…….
 
 반쯤 일으킨 몸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발끝에 차가운 유리잔이 느껴졌다. 좀전에 마시려고 따라놓은 콜라 컵이다. 아, 카펫, 어쩌지. 나는 잠들기 직전, 엉망이 된 카펫을 보고 최 교수가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게 웃겨서 조금 웃었다. 그렇게 낄낄 웃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
 
 “……도와줘요…….”
 
 자기가 나고 자란 집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최연희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생생했다.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 위로 흩어져 있었다. 막 물 속에서 튀어나온 뱀을 얼굴에 올려놓은 듯한 촉감이었다. 방울져 또옥 또옥 떨어지는 눈물 또한 환상이 아닌 진짜 같았다.
 
 최연희가 흘린 눈물이 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망울 가득 고여 있던 눈물 또한 피로 변했다.
 
 “……도와줘……도와줘요…….”
 
 평소에 꾸던 악몽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서 잠에서 깨어나야 해.
 아무리 노력해도 손가락 하나도 꼼짝 할 수 없었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리가. 저리, 가! 목소리 대신에 하얀 입김이 쏟아져 나왔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던 최연희가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목표는 목, 내 숨통이었다. 그녀는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제발……제발 좀…… 떨어져……!!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나는 온힘을 다해 외쳤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하고 많은 사람 놔두고, 왜!!”
 
 사력을 다해 발버둥치자 서서히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최연희는 떨어질 줄 몰랐다. 좀 떨어져, 이 찰거머리 같은 년! 나는 이성을 잃고 최연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상해서 썩기 시작한 야채처럼 물컹거렸다. 찐덕거리는 액체가 내 얼굴로 쏟아졌다. 그녀는 정말 거머리라도 된 것처럼 나한테 찰싹 달라붙었다. 온힘을 다해 그녀를 나한테서 떼어놓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꿈이었나?
 꿈을 꿨다고 하기에는 목의 통증이 여전했다. 손에 남은 감촉도 여전했고.
 
 나는 치미는 구역질을 느끼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서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니, 파리한 안색의 남자가 헐떡거리며 서 있었다.
 이래도 귀신의 존재에 의문을 가질 건가?
 
 “……씨발…….”
 
 욕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최 교수의 집무실에 심부름을 하러 가면, 창백한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나를 쳐다보던 그, 연약한 최연희가. 귀신이 돼서 내 목을 조르다니. 하하. 허무한 웃음이 허공에 흩어졌다.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이지.
 엉망이 된 카펫을 보니, 콜라 컵을 엎은 건 진짜였나 본데.
 나는 부엌으로 가서 행주와 종이타월을 가져와 카펫의 얼룩을 닦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나는 타월을 내던지고 카펫의 얼룩을 유심히 관찰했다. 엎어진 모양이 퍼져나가야 정상인데 도중에 끊어졌다. 꼭, 카펫 아래에 공간이 있는 것처럼. 그리로 흘러내린 것처럼.
 나는 가방을 열고 장도리 달린 망치를 꺼냈다. 부엌에서 가져온 칼로 카펫을 잘라냈다. 깨끗하게 잘라지지 않아서 손으로 잡고 뜯어내야 했다. 부우욱, 찢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흩어졌다. 카펫 아래엔 퍼즐처럼 맞출 수 있는 마루바닥이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보이기만 했다.
 
 콜라 병을 가져와 여기저기에 흩뿌렸다. 그러자 특정한 자리에서만 콜라가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옳거니. 이번엔 장도리 차례다. 장갑을 꺼내서 끼고 망치를 단단히 틀어 쥐었다. 장도리 끝을 마루 사이에 집어 넣고 힘주어 누르자 어렵지 않게 분리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반복에, 또 반복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마루를 뜯어내는 일에 열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등과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은 게 느껴졌다.
 
 마루바닥을 해체하자 흙이 드러났다. 단단하게 다지기는 했지만 콜라를 뿌린 덕분인지, 파내기에 무리는 없었다. 나는 털썩 무릎을 꿇고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삽 대신 장도리를 들고. 손톱 사이로 흙 알갱이가 파고들고, 숨은 거칠어져 간다. 땀과 흙이 뒤섞여 입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손등으로 쓱 훔치고 아래로, 더 아래로 흙을 파내려갔다.
 
 그때, 망치 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돌멩이는 아니다. 부드럽고, 말캉거리는……그래, 내가 찾고 있던 그것처럼.
 나는 망치를 집어 던지고 손으로 흙을 헤집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나타났다. 그 다음엔 오똑한 콧방울이, 동그란 이마가. 흙에 묻혀 있던 머리카락이 내 손가락에 엉겨들었다.
 꿈에서와는 정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최연희의 위에 누워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있었다.
 연기처럼 사라졌던 최연희가.
 아버지의 발 아래에 묻혀서.
 
 “그 미친 새끼……자기 딸을, 자기 집 한가운데에 묻었어…… 미친놈…….”
 
 다시 한번, 최 교수의 집무실에서 봤던 최연희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와 있을 때면 수줍게 나타나 볼을 복숭아빛으로 물들이던 모습이.
 
 최 교수는 미친 게 분명하다. 그 와이프는 또 어떠한가. 아침에 그 음울한 표정, 진실을 모르고서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집 구석구석, 도배하다시피 걸려 있는 딸의 사진. 부정입학을 시켜서라도 곁에 두려고 한 최 교수의 행동.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어떻게 이런 짓을…….
 
 달칵.
 그때,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최교수라는 것을 알았다.
 
 “!!!!!”
 
 황급하게 망치를 움켜쥐었지만 최교수가 그보다 빨랐다. 뒤통수가 터졌는지 뜨거운 액체가 줄줄 흘렀다. 검은 그림자는 내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왔다. 스며드는 가로등 빛에 확인한 얼굴은, 역시나 최교수였다. 그는 미간을 한껏 끌어 모으고 있었다.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것처럼, 딱 그만큼 진지한 얼굴로 내 목에 무언가를 감았다. 로프였다. 로프에선 썩은내와 함께 물 비린내가 뒤섞여 있었다.
 
 “교, 교수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는 냉막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최연희의 방, 거울에 붙어 있던 메모들과 비슷한 쪽지였다. 립스틱으로 하트를 그려놓았던. 나는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주워들었다.
 
 ‘오빠, 나한테 이러지 마요. 왜 갑자기 싫다는 거예요? 오빠도 나를 좋아했잖아요. 예주 그 년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그년보다 어디가 못해서? 우리 처음 만났던 곳에서 기다릴게요. 나와 줄 거죠? 동민 오빠……!’
 
 쪽지에 쓰여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이름이었다.
 
 “동민군. 자네 꿈에도 찾아왔겠지? 우리, 불쌍한 연희가.”
 “뭐, 뭔가 착각 하신 모양인데 저는 연희랑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자기 혼자 좋아서 쫓아다닌 거라구요!!”
 “울면서 도와달라고 하지 않던가?”
 
 “제길! 도와달라고 할 사람은 나예요! 나라구요! 아십니까?! 그 스토커 같은 년이, 내 생활을 얼마나 진창으로 만들었는지 아시냐구요?! 걔만 아니었으면 예주랑 그렇게 끝나지도 않았어! 당신 딸이 천사인 줄 아나 본데, 그년은, 스토커야! 미저리라고! 으윽……!”
 
 최 교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로프를 천천히 잡아 당겼다. 굵은 로프가 살갗에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숨통이 막히고, 압력 때문에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다. 가물거리는 시야 저편으로, 두 손을 모으고 우두커니 서 있는 최 교수의 아내가 보였다. 도와달라고 손을 뻗었지만 감정 없는 인형처럼 서서 지켜볼 뿐이다.
 
 “처음 연희가 꿈에 나와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 그 애가 죽은 걸 알아차렸지. 경찰에선 단순 가출로 처리해버렸지만 우리 연희는 말도 없이 가출할 애가 아니었으니까……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추측하고는 있었어. 내가 놀란 건 연희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어. 살인자의 정체 때문이었지.”
 “으……으윽……큭……!!”
 
 최 교수는 로프를 아내의 손에 맡겼다. 그러곤 삽을 가져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최연희가 묻혀 있는 곳 바로 옆자리를.
 
 “그래도 설마 설마 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민 군 자네가……연희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내가 특별히 아껴줬던 제자가……. 아닐 거라고 부정했지. 내 망상은 아닐까, 생각했던 때도 있을 정도로.”
 
 그는 애석한 듯 주절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오늘 자네가 들고 온 가방을 보고 확신했네만.”
 
 그는 내 가방을 열고 장갑과 장도리, 나이프, 조립식 톱, 비닐로 된 우의 따위를 꺼내서 늘어놓았다. 최 교수의 아내는 혐오감 어린 표정으로 로프를 더욱 세게 잡아 당겼다. 이제, 끝이 왔음을 직감했다. 더는 발버둥 칠 힘도 남아있질 않다. 나는 두 팔을 힘없이 늘어 뜨렸다.
 아무도 로프를 잡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일어설 기력도 없이 기침만 쿨럭 쿨럭 쏟아냈다.
 최 교수가 한 삽 가득 흙을 퍼서 내 위로 뿌리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딸의 뺨을 쓰다듬었다.
 
 “우리 딸, 우리 예쁜 딸…….”
 
 최연희의 쪽지를 받고 나간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강변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최연희가 가는 동안 내내 히스테리를 부렸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보니,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갈대와 잡초로 우거진 강변에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내가 먼저 뛰쳐나갔던 것 같다. 최연희는 뒤따라 나와서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가 신경 써 준 거 알죠? 솔직히 오빠 실력에 수석이라니, 그게 말이 돼? 나를 그렇게 실컷 이용해 먹고, 이제 와서 딴 년이랑 사귀겠다고? 웃기지마! 장학금이고 인턴이고 다 취소 되게 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너, 제정신이야? 너랑 내가 무슨 사이라고! 만나서 드라이브 한번 하고, 술 한번 먹은거?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네 아빠는? 네 아빠는 멀쩡하게 얼굴 들고 강단에 설 수 있을 것 같아? 미쳤구나, 정말!”
 
 “그래……나는 미쳤어…… 오빠한테, 완전히 미쳤다구……오빠 없이는 못 살아.”
 
 최연희는 미친사람처럼 눈을 번뜩이며 내 팔을 잡아 당겼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강물이었다.
 
 “차라리 같이 죽어!! 응?!”
 “제발……제발 좀…… 떨어져……!!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나는 온힘을 다해 외쳤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하고 많은 사람 놔두고, 왜!!”
 
 그녀가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끌어 올렸다. 사랑하니까, 집요한 목소리가 강물 위로 흩어졌다. 이미 그녀는 허리까지 물에 들어간 상태였다. 나는 나가려고 하고, 그녀는 끌어 당기려고 하고. 가녀린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남자인 내가 서서히 물속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몸이 휘청, 넘어졌다. 최연희는 이때다 하고 아예 내 몸에 올라타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집착은 나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바둥거리다가 손에 닿는 돌멩이를 움켜 쥐고 힘껏 휘둘렀다.
 
 “저리가, 저리, 가! 이 찰거머리 같은 년……! 미저리 같은 년!!”
 
 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몸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나는 물밖으로 얼굴을 내놓고 기침을 토해냈다. 손에는 아직도 돌멩이를 쥐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진 강물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최연희를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에 나를 죽이려던 사람인 것도 잊고.
 
 “연희야!! 연희야!!”
 
 그때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최연희였다. 머리를 피로 물들이고, 눈꺼풀은 경련하면서.
 샐쭉. 입꼬리를 끌어 당기고, 웃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기쁘게.
 
 “것봐. 역시 오빠는 나를 사랑해.”
 “뭐?!”
 “날 걱정하는 거잖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가오는 최연희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내 허리를 붙들고 매달리는 최연희를 떼어 놓기 위해 몇 번이고 놓으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꿈쩍도 않았다. 나는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좀 떨어져, 제발! 제발……! 최연희는 나에게 숨통을 틀어잡힌 채로 힘없이 팔을 늘어 뜨렸다. 깨진 이마를 타고 흐른 피가 최연희의 눈가를 적셨다. 마치 피눈물처럼 눈가에 고여 갔다. 그러면서도 나를 보는 시선만은 거두지 않았다.
 
 “……도와……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목을 조르고 있는 손을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최연희가. 드디어.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물 속에서 힘없는 발버둥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것도 사라졌다.
 
 나는 차로 돌아가 가방에서 최연희의 가방이며 물건을 챙겼다. 그런데, 가방이 이상하게 크고 불룩하고 묵직했다. 뭔가 하고 열어보니 로프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소름이 쭈뼛 돋았다. 최연희, 그 년은 정말로 나랑 같이 죽을 속셈으로 만나자고 한 거였다. 마지막 여행이니 어쩌니 한 것도, 다…….
 
 머리 위에서 웅웅- 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최 교수의 아내다.
 
 “이제 행복하니? 우리 딸.”
 
 이제 로프를 쥔 손은 없는데도, 숨통이 막혀온다. 아니, 로프 대신에 다른 것이 내 목을 휘어감고 있다. 차갑고, 가느다란, 최연희의 팔이. 마지막 힘을 다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최연희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4년이 지났는데도 썩지 않은 얼굴로.
 얼굴 위로 흙이 쏟아진다.
 귓가에 닿은 입술이 속삭인다.
 
 같이 죽어요, 오빠.
 
 
 
 *
 
 

 “정말 팔지 않으실 겁니까? 매매가보다 거의 두 배는 되는 액수인데……이 기회에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지으셔도 좋고, 아주 학교 근처로 옮기셔도 좋을 텐데요.”
 
 “글쎄, 생각 없다니까 자꾸 그러나.”
 
 “그래도 말입니다, 최 교수님. 이 동네는 어쨌든 재개발에 들어갈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챙길 수 있을 때, 두둑하게 챙기는 게…….”
 
 “재개발이 언제라고 했지?”
 
 “교수님도 아시겠지만 부동산이라는 게 짧은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먼 미래를 보는 투자라서 말이죠. 15년? 20년? 안에는 확실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담 상관없네.”
 
 “예?”
 
 최 교수는 특유의 음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쯤 되면 우리도…….”
 
 
 
 
 
- [나와 그녀는 행방불명]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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