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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푸레이크의 군대 이야기 - 00
게시물ID : military_487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콘푸레이크
추천 : 3
조회수 : 78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7 18:22:24
08년 1월 15일 306보충대

겨울치고도 무척이나 추운 날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대날이라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고.
이른 새벽부터 깼지만 졸리거나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컴퓨터로 이것저것 깔짝거리다가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자 하던 것을 접고 부모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차로 306 보충대로 데려다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이나 지난 일이라 기억이 살짝 흐릿하지만, 아마 그 녀석과 같이 차를 탔을 것이다. 내 입대를 배웅한다는 뜻으로. 그 녀석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칠 때까지 거의 내 일평생 주욱 친구였던 자식이었다. 엘리, 우주인, ET, 외계인 등 여러 가지 별명을 거쳤지만 지금은 줄곧 외계인이라 불리고 있다.

별명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녀석 외계인은 내 군 입대에 결정적 쐐기를 박아버린 녀석이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입대를 빨리할 생각이 아니었다. 으레 보통 대학생이 그렇듯 복학은 생각하지만 그 전까지 최대한 놀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3월달 쯤에나 입대를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멍청하게도 다른 사람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입대하기 한 두 달 전, 그러니까 2007년 11월~12월 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내게 군대를 언제 갈 것이냐고 물으셨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에 대한 생각은 기본 개념으로 탑재되어 있었지만 나이가 어렸던 만큼 무척이나 낮은 버전의 개념이었다. 군대 문제는 내게 너무나도 귀찮은 것이었고 나는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하셨고 급기야 입대 방법에 대해서 직접 알아보시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입대할까봐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그때는 연말인 터라 이미 모든 입대 신청이 끝난 직후였다. 병무청에서는 아마 더 이상 입대 신청을 받을 수 없던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곧 포기하셨고 나는 안심했다. 중간 학기가 끝나고 입대할 생각은 없던 나였으니 최소 내후년에나 입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1년 이상은 버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믿음은 한 달도 되지 않아 깨지고 만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연말이 되면 병무청에선 추가 입대 신청이라는 것을 받는다. 병무청 입장에서는 이미 모든 입대 신청을 다 받았지만 세상일이 늘 그러하듯이 계획대로는 되지 않는 법. 입대 신청을 한 사람들 중에서 꽤나 다수가 입대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추가 입대 신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신청 기간이 하루 이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로서는 어떻게든 나를 내년에 군대에 보내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얻으셨을 때 아마 꽤나 기뻐하셨으리라고 생각한다.

웃기게도 이 추가 입대 신청은 꽤나 경쟁률이 높았다. 입대 연기나 취소를 한 사람들 수 그 이상이였다. 네이버 지식인을 뒤지자 매년 늘 그랬단다. 그러니 올해도 그냥 넘어갈 리는 없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원한 이상 추가 입대 신청은 결코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찝찝했지만 어떻게든 사회에 있을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가장 늦은 날짜로 입대 신청을 하기로 했다.

2007년 12월 20일?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이었을 것이다. 내 입대 운명을 가르는 아침이 왔다. 추가 입대 신청은 무조건 인터넷으로만 받기에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아버지와 함께 PC방을 갔다. 집 컴퓨터는 1대인 데다가 인터넷 속도로 밀리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대학교 수강 신청을 하러 가는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그 대학교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아니라 군대라는 것이었지.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쉬며 미리 자리에 앉아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시간이 흘러 신청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바짝 긴장하며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아직 시간이 아니라는 팝업창이 뜨기를 여러번 반복하다 마침내 접속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미친듯이 내 신상을 적어서 신청을 눌렀다. 인터넷 화면에 입대 신청 날짜와 장소가 떴다. 나는 306 보충대가 가장 가까웠기에 그곳을 선택하고 날짜는 가장 늦은 3월 말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했다. 그러나 경쟁은 너무나 치열했다. 우리는 무한 로딩과 신청 종료의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5분도 되지 않아 내가 지원했던 3월달은 모두 마감이 되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학 수강 신청은 애들 장난이었던 것 같다.

20분이상 지나자 신청 홈페이지는 꽤나 한산하게 되었다. 더 이상 무한 로딩과 실패는 없었다. 그러나  애초 내 목표였던 3월달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백화점 생필품 마감 세일에서 아무 것도 사지 못한 아줌마들처럼 우리는 낙담했다. 우리는 패배자였다. 아니,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만 낙담했고 나만 패배했다. 아버지에게는 입대가 중요했지 날짜는 상관없었으니까.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유일하게 마감이 되지 않은 1월 신청 현황을 보았다. 가장 빨랐던 것이 1월1일인가 2일, 그리고 가장 늦은 날짜가 1월 15일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 옆에는 웃는 낯짝의 외계인이 있었다. 우리는 나와 아버지 뿐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3월달 입대 신청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나는 외계인까지 불렀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아직 여유는 있었지만 남은 자리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하는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늦게 가야 하는가.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외계인은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딩동댕 척척박사님' 이라는 소리와 함께 마우스를 좌우로 이동시키더니 끝나는 지점의 것을 선택해버렸다. 천진난만한 표정과 함께.
그 표정이 아직까지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 유유자적함까지. 자기 일이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정말 좋은 친구라면 이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서 꼭 복수를 해줘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훗날 나는 그렇게 했다.
어쨌거나 외계인이 선택한 날짜는 1월 1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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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나는 대로 두드리려고 합니다.


추가. 저도 모르게 미완성 글이 올라갔더군요. 당황해서 일단 삭제했습니다. 추천 주신 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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