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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숫자와 기록으로 보는 조선왕조
게시물ID : history_180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애비28호
추천 : 12
조회수 : 2867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4/09/17 22:48:58
1대 태조(太祖)
1392년 7월 17일 태조는 개경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오르다.
그의 나이 58세 때임.
붓글씨를 정자(正字)로 잘 썼던 세조 임금. 7대 세조(世祖)
대군(大君) 시절, 아버지 세종의 명령으로 서적 인쇄시 인쇄 활자를 깍고 파낼때 바탕이 되는 밑글씨를 직접 붓글씨로 씀.
그가 쓴 붓글씨가 결국 활자가 되어 책으로 인쇄되었다는 이야기임. 조선의 공식 지정 폰트였던 세조 임금.
조카 때려 잡고 왕이 된 남자이지만 보기보다 섬세한 임금임.​
세조_1~1.JPG
(세조 임금의 붓글씨)
세자 생활을 가장 오래한 임금 랭킹.
NO.1 27대 순종(純宗) 32년 5개월
NO.2 20대 경종(景宗) 30년 11개월
NO.3 5대 문종(文宗) 28년 8개월
가장 짧게 세자 생활을 한 임금. 2대 정종(定宗)
1398년 8월26일 세자(世子)에 책봉 되어 같은 해 9월4일 왕위에 오름.
약 8일간의 짧은 세자 생활이었음.
아버지 이성계 눈치보랴 동생 태종 이방원 눈치보랴...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임금. 21대 영조(英祖)
출생 1694년 9월13일. 사망 1776년 3월5일(83세)
세자생활 1721년 8월20일~1724년 8월29일(4년)
임금 재위기간 1724년 8월30일~1776년 3월5일(즉위 31세. 재위 53년)
만약 1735년에 태어난 영조의 아들 세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 속에서 죽지 않았다면
그는 42세에 왕위를 물려 받는 늦깍이 왕이 될뻔 했음.
가장 짧게 왕위에 있었던 임금. ​12대 인종(仁宗)
출생 1544년 11월20일. 사망 1545년 7월1일(즉위 30세. 재위 8개월)
11대 임금인 중종(中宗)과 장경왕후(章敬王后) 사이에 태어나 6살에 세자에 책봉 되어 25년간의 세자 생활 끝에 왕이 되었으나
아버지 중종의 사망 후 상중(喪中)에 너무 슬퍼한 탓에 사망 하였다고 전해짐.
더군다나 인종과 왕비 인성왕후(仁聖王后) 사이에 아들도 없었음.
가장 어린 나이에 사망한 임금​. 6대 단종(端宗)
출생 1441년 7월23일. 사망 1457년 10월24일.
단종 나이 17세에 숙부인 세조(世祖)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쫓겨난 후 목을 메어 자살 하였다고 함.
단종 이외에는 8대 예종(睿宗)이 20세, 24대 헌종(憲宗)이 23세에 사망함.
조선시대 최초로 방계혈통으로 왕이 된 임금. 14대 선조(宣祖)
※ 방계(​傍系) : 할아버지 - 아버지 - 아들의 라인으로 왕위 계승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계(直系) 자손이 없을 경우 형제나 친척의 자손을 왕위에 앉히는 관계. 곁가지라는 뜻으로 보면 됨.
임금의 정부인에게 태어난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하나 12대 인종, 13대 명종 임금이 모두 아들 없이 일찍 죽는 바람에
11대 임금인 중종의 소위 말하는 '첩'인 창빈 안씨(昌嬪安氏)의 아들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招)의 아들이었던
선조가 임금이 됨.
덕분에 왕권 계승의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후에 광해군이 반정으로 쫓겨나는데 적잖은 영향을 줌.
물론 광해군도 선조의 정부인이 아닌 '첩"이었던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아들이었음.
가장 어린 나이에 왕권을 물려 받은 임금. 24대 헌종(憲宗)
1827년 7월18일에 태어나 1834년 11월8일에 즉위함. 그의 나이 8세 때임.
가장 가장 늦은 나이에 왕권을 물려 받은 임금. 또 다시 2대 정종(定宗)
1357년 7월1일에 태어나 1398년 9월5일에 왕위를 물려 받음. 그의 나이 42세였음.
26대 고종(高宗)조선시대 임금 중(물론 고종 때 대한제국으로 선포 했으니 정확하게 조선 시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겉절이로 왕권을 물려 받은 왕임.
보통 왕권이라는게 아버지가 왕이고 왕의 정부인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는게 정상적이지만
고종은,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인평대군(부인 복천부부인 오씨)의 아들인
복녕군 이욱(부인 양천 허씨)의 아들인 의원군 이혁(부인 안동 권씨)의 아들인 안흥군 이숙(부인 문화 류씨)의 아들인
이진익(부인 청풍김씨)의 아들인(군君이라는 명칭도 없음) 생원 이병원(부인 확인 안됨)의 아들인 남연군 이구(부인 여흥 민씨)의 아들인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순목 대원비 민씨의 둘째 아들임.
물론 고종의 부인인 (늘 호칭 문제로 콜로세움 열리는) 명성왕후 민씨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순목 대원비(여흥 부대부인) 민씨와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부인인 여흥 민씨는 다 같은 민씨이나 모두 다른 인물임.
가장 오래 산 왕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일찍 죽은 왕인 단종의 왕비였던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 82세까지 살았음.
가장 오래 산 종친(宗親)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는 세종 대마왕의 형님인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가 랭킹 1위를 차지함.
효령대군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1396년(태조 5년)에 태어나
1486년 5월 11일(성종 17년) 사망.
향년 91세였음. 효령대군이 생전에 거처간 왕이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9명임.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성씨(姓氏)
※ 정비, 계비, 생전, 사후, 관계 없이 왕후의 타이틀을 받았고 성씨 구분은 본관(本貫)만으로 확인함.
​NO.1 파평 윤씨(坡平尹氏)
정희왕후(貞熹王后, 세조)
제헌왕후(齊憲王后, 성종)
정현왕후(貞顯王后, 성종)
​장경왕후(章敬王后, 중종)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
청주 한씨(淸州韓氏)
​신의왕후(神懿王后, 태조)
​장순왕후(章順王后, 예종)
​안순왕후(安順王后, 예종)
공혜왕후(恭惠王后, 성종)
​인렬왕후(仁烈王后, 인조)
파평 윤씨와 청주 한씨 모두 5명으로 공동 1위.
세자 생활을 거치지 않고 바로 왕이된 임금들.
1대 태조 - 조선을 만듬.
7대 세조 - 단종에게 왕권을 빼앗음.
9대 성종 - 왕권 계승 순위를 거스르고 왕이 됨. 족보로 따지자면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물려 받아야 함.
11대 중종 - 쿠데타로 연산군 폐출
13대 명종 - 형인 12대 인종의 아들이 없어서 어부지리로 왕이 됨.
14대 선조 - 13대 명종도 아들이 없이 일찍 죽는 바람에 업혀와서 왕이 됨.
16대 인조 - 쿠데타로 광해군 폐출
25대 철종, 26대 고종 - 선조와 비슷한 이유로 업혀와서 왕이 됨.
가장 부인을 많이 둔 왕.
9대 성종(成宗)
​공혜왕후(恭惠王后), 정현왕후(貞顯王后), 제헌왕후(齊憲王后, 폐비 윤씨), 숙의 하씨(淑儀河氏), 귀인 정씨(貴人鄭氏)
숙의 홍씨(淑儀洪氏), 숙용 심씨(淑容沈氏) 등 12명의 정비, 계비, 첩을 두었음.
어린 나이(13세)에 임금이 된 덕분인 듯.
다음으로는 11대 중종이 10명의 부인을 두었음.
가장 부인이 적었던 왕은 역시나 단종 임금으로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 달랑 1명 뿐.
가장 자식이 많은 왕
부인이 많아서 상당히 유리한 성종 임금이 다시 1위에 이름을 올림.
16남(男) 12녀(女) 합계 28명의 자녀를 둠.​
​다음으로는 우리의 킹왕짱 세종 대마왕이 22명, 3위는 중종 임금으로 20명의 자녀를 둠.
아니 그런데 세종 임금은 그 많은 자식도 만드랴 한글도 만드랴​ 밤낮으로 무척 매우 많이 바쁘셨을듯.
가장 자식을 많이 만든 왕비
우리의 킹왕짱 세종 대마왕의 왕비였던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로 문종(文宗), 세조(世祖) 임금 포함 8남 2녀의 자녀 생산.
공동 1위로 성종 임금의 첩이였던 숙의 홍씨(淑儀洪氏)가 7남 3녀임.
 
(출전 - 조선왕조실록)
(나이와 재임 기간 등의 계산은 윤달 제외. 계산하기 너무 복잡함.)
(문제나 오류가 있을시 작성자는 빛의 속도로 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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