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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울 아빠와 통닭
게시물ID : cook_1173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심한듯쉬크
추천 : 18
조회수 : 1134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4/10/04 03:26:08
아빠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철이 없으신 분이니
나름 일관된 삶을 사셨다는 덕목 하나는 보유하고 계시나
그 덕목의 유탄은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였다.
 
떨어져 있어도
별로 그립지도 않고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살가운 인사말도 대략 패쓰한
무심한듯 쉬크한 부녀사이가
아빠와 나를 관통하는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는 주말이면
국민학교 교문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어찌어찌 남매를 자전거에 실어
정확하게 학교와 집 사이에 있던 통닭집에 데리고 갔던 삼십대의 아빠가 생각난다
 
잘생긴 외모
시골 부잣집의 막내 아들
으리 으리 좋아하던 박력남은
 
각박한 서울살이에
그 놈의 의리에 생까이고
날마다 커가는 아이들 틈에
먹고 사느라 같이 밥벌이 하느라 바쁜 마누라 대신
일주일에  한번 새끼들 목에 고기를 넘겨주려 왔던거 같다.
 
단골 통닭집에 들어가
닭을 시키고
뜨근뜨근한 닭이 나오면
각 부위별로 엄마 몫을 따로 챙기고
지난 주에 먹다 킵핑해 놓은 소주 반병을 찾아 한 잔 따르면
우리 남매는 하이에나 새끼들처럼
오골오골 고기옆에 모여 앉아
통닭을 뜯곤 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집으로 돌아 오면
피곤한 일상에 늘 기미가 끼어 있던 엄마가
일에서 돌아 와 있고
아빠는 무심한듯 쉬크하게 엄마에게
챙겨온 통닭봉지를 건네고 나서야,
엄마의 늦은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더랬다.
 
언젠가
아빠한테
그때 먹은 통닭만큼 맛있는 닭이 없다고 말했더니..
아빠는
다른 기억을 풀어 놓으셨더랬다.
맨 처음에는 통닭 반마리를 시켜도 많이 남았었는데
날이 갈 수록 우리 남매의 양이 늘어서
한마리 반을 시켜도 모자라는 지경이 되서야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더라는...
 
얼마전 동생넘이랑  통화를 하다가
남들에게는 못하는 아빠의 뒷담화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
아빠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같아
뭔 복에..자기 한 일에 비해, 진짜 복이 많지 않냐?
아마도 전생에 청산리 전투에 참가해서 혁혁한 공을 세웠거나
혹여, 김좌진 장군일 수도 있어..
그러니, 자기가 한 것도 없으면서, 이리 많은 걸 우리한테 받지..
도대체 뭘 했다고..
엄마가 혼자 고군분투했구만..
 
모..이딴 말을 하다가
우리는 그 옛날의 통닭집 이야기를 하고..
 
동생은 그 옛날
국정교과서에 실린
눈밭을 헤치고 아픈 어린 아들을 위해
서러운 서른 살의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 대신
통닭집 기름이 내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시를 읊어 대다가
그래서 내 혈전이 탁하다는 둥
이동네 저동네 다 훑던 뒷담화는 끝이 났더랬다.
 
 
 
좋은 기억들은 휘발성이 강해 날아가 버리기 쉽고
아프고 서러운 기억들만 가슴에 쉽게 남는다 했던가.
 
힘들고 괴로웠던 이야기들
구비구비 억울했던 사연들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이리 비오는 날 생각나는 통닭이라도
추억 만들어 줘서 대견하우..아빠..
 
철이 없어도
아픈데도, 또한, 없어 다행이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죠.
 
오유 게시판에
첫 글 올립니다.
 
여러분
즐거운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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