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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딸
게시물ID : humorstory_109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공구리0
추천 : 12
조회수 : 109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05/12/01 18:39:59
전 32평 아파트를 분양받아 지금 이사와서 산지 93일 되었습니다.
아내와 여섯살 된 딸 하나 이렇게 셋이 살고 있지요. 우리 셋이 살기에는 솔직히 좀 넓습니다.
입주하기 두세달 전 우리 딸이랑 마눌이랑 장을 보고 차를 타고 오는데 갑자기 딸이 
"아빠 우리 아파트에서 살자. 아파트에서 살고싶다. 태섭이는 아파트에서 사는데...."
이러는 겁니다.
만약 분양 안받았으면 가슴 찢어질 정도로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 분양도 받았고 입주도 얼마안남아서 자신있게 딸에게 말했습니다.
"니가 그럴줄 알고 아빠가 벌써 아파트 샀어. 그러니까 조금만 있으면 이사갈거야"

이사하면서 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생전 처음으로 집을 샀다는 것보다 딸이 좋아하는게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다시 안가고 계속 아파트에서 살건지 몇번씩 저와 엄마에게 확인하더라고요

얼마전 부터 우리 딸은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졸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덩달아 마눌도 졸르고 있죠.
그러더니 어제 우리 딸이 갑자기 
"동생이 생기면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가야겠다. 아파트는 넷이 살기엔 너무 좁아"
이러는 겁니다.
마눌이랑 어이가 없어서 돈없어서 쟤 동생 못만들겠다고 했죠

그리고 나니 아버지가 생각나더라고요.
나도 대책없이 아버지께 이것저것 사달라고 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한번은 컴퓨터가 사고싶었습니다.
아버지 한테 사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필요하냐고 하시기에 100만원이면 될거 같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내일 준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옆에서 듣고는 미쳤냐고 난리가 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20년쯤 전이니 지금 돈으로는 500만원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필요하대쟎아." 한마디 하시고는 얘기 끝.
어머니도 더이상 얘기 못하셨습니다.  우리집 분위기가 원래 그랬어요.
다음날 아버지가 돈을 주셔서 저는 컴퓨터를 살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아버지께 아무래도 차가 있어야 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갑자기 아버지 차 키를 주시면서 "내 차 너 가져라"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당신은?" 하시니까
"맞아, 나도 있어야 하쟎아. 어떻게 되겠지" 하시더니
새차를 사시더라고요.  내가 차 달라고 하길 기다리셨나?

그런 일들이 생각나고는 과연 내가 우리 딸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나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존경스러워 지더군요.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던 아버지께 저는 아무것도 못해드리고 그렇게 원하시던 아들도 못 나았는데 이제 뭔가 해드리고 싶어도 계시질 않네요.

우리 딸에게 우리 아버지가 저에게 해주신 것만치 해줄라면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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