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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괴담] #21~26 (그릇백화점 외 5편)
게시물ID : panic_737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환상괴담
추천 : 28
조회수 : 4384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10/20 14:44:05
[그릇백화점]
 
 경남 합천에서 그릇 전문 가게를 열고 장사 중인 자영업자입니다!
기묘한 일화 공모전이라니, 딱 제 취향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응모합니다.
사실 퍽 환상적이라거나 오싹하지 않은데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남부 지방에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장사는 접은 셈치고 TV를 보고 있는데
우산도 없이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한 명 불쑥 들어오더라구요.
비를 피하러 온 건줄 알았죠.
그래도 예의상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그릇이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두리번거리다가 찜솥이 있는 쪽으로 가더라구요. 말도 없이.
하, 바닥 더러워지게 물을 줄줄 흘리는데 언짢더군요.
각설하고, 그녀가 첫 마디를 뗐어요.
“이 솥.. 아기 한 명 정돈 들어갈 수 있겠죠?”
엥? 아기? “에.. 그정돈 되겠죠.” 했더니 지갑에서 돈이란 돈은 다 꺼내주더니 솥을 들고 나가더군요.
“저기요! 거스름돈은!”
솥 안에 검은 비닐봉지로 쌓인 묵직한 덩어리를 집어넣더니, 끙끙대며 사라지는데..
경찰에 신고는 했습니다만, 당시 합천의 날씨가 나빠 일대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게 제가 받은 연락의 전부에요. 아기가 들어갈 솥이라뇨, 이상하죠,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진심으로.

[공대여신]

 혜영은 대학교 3학년이 되도록 차별만 당했다.
여자 귀한 공대의 두 여학생이지만 몸매도 미모도 빼어난 수희와 비교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같은 잘못을 해도 자신은 구박을 받고 수희는 위로를 받는다.
심지어 둘의 싸움 이후엔 수희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조차도 혜영이 이해해주지 못한 탓으로 여겨진다.
넌 애가 왜 그래, 얼굴 따라가냐? 그 말은 혜영의 대학교 3년을 내내 따라다니며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던가, 그녀는 면도칼을 준비했다.
여느 때처럼 쥐를 갖고 놀고자 고양이가 다가온 어느 날 잽싸게 달려들었다.
수희의 얼굴은 난도질을 당했고, 혜영 또한 무사하진 못 했다.
둘의 얼굴은 채칼로 감자를 썰어댄 듯 갈렸고,
미이라처럼 붕대에 감겨 병원에 누워있다.
둘 모두 위독하다.
공대 사람들이 병원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말이 혜영의 몽롱한 의식 속에 전해진다.
그녀는 반쯤 달아나버린 입술로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공대 여신은 나야..
 괜찮아? 괜찮아? 공대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빨간 붕대가 나란히 누운 병실, 그나마 상태가 나아보이는 쪽.
이 쪽이겠지? 수희야! 수희야!
새로운 공대여신이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자장가]
 
 음악게시판에 글을 쓰는 건 처음이네요.
자장가를 찾고 있습니다. 가사가 좀 특이해요.
자장, 자장, 나고 자고, 자고 자라, 새 나라 새 일꾼,
무럭무럭.. 여기까진 확실하구요. 음은 자장 자장,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자장, 자장, 잘도 잔다,
그 자장가랑 똑같아요.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올린 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식검색 해봤고,
각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며 물어봤지만 답이 없더라고요.
자작곡일수도 있겠죠. 그게 아니길 바라기에 이렇게 찾고 있는 거지만..
 음악게시판에 맞지 않는 질문을 좀 해도 될련지요?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저 자장가의 작사 작곡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들어보셨다면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스쳐지나가다 들은 거라도 꼭 얘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겐 너무 절실합니다.
 제 어린 시절,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살던 어느 날
어머니 무릎을 베고 저 자장가 소리에 스르르 잠에 들었다 일어났을 때
더 이상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게 단서라곤 저 자장가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저 자장가를 들어보셨습니까? 생각 좀 해보세요..

[예뻐졌다]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 흰 피부, 화사한 웃음.
청순한 듯 세련된 얼굴과 태가 나는 옷맵시,
그녀가 올해 동창회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녀, 미영은 왕따였으니까.
늘 어두운 얼굴로 쉬는 시간마다 600원짜리 햄버거를 사먹으며 교실로 뒤뚱뒤뚱 걸어오던 그녀.
 작년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떠받들던 화장 짙은 여자들의 시샘이
향수냄새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지만
남자들은 이미 청순가련 그녀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내가 그랬던 거 사과해, 사실 난 너 은근 마음에 있었다?
지랄도 가지가지구만.
 그녀는 늘 혼자였으니 그녀와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죄다 환심사기용 입에 발린 소리만 늘어놓았지만 그녀는 밝게 웃어주었다.
놀라운 일이야.. 예뻐진 것도 놀랍지만 그 모든 상처를 잊고 웃어줄 수 있다니..
예뻐지면 성격도 바뀐다는게 정말인가? 그래도 좀 아쉽다.
똑같이 못 생겨서 관심 밖이었던 또 다른 학생인 나에겐 좀 아는 척 해줄 수 있잖아.
나랑 햄버거도 많이 먹었잖아.
나도 살 빼고 꾸미고 이것저것 다 해서 이정돈데,
이젠 내가 부끄럽니? 그래서 날 모르는 척하는 거야?
 동창회가 끝나고, 바쁘다며 2차를 거부한 채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
무리에서 빠져나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 생각으로 따라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풀숲에 숨어 있다 나온 거대한 곰 같은 여자가, 쭈뼛거리며 30만원을 내밀자
30장을 세곤 ‘다음에도 불러주세요.’하며 헤어지는 모습을.

[공주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사지를 묶인 채 입을 틀어 막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다. 모든 일은 자던 중 순식간에 벌어졌다.
“내 목소리, 몰라? 난 네 목소리를 매일 생각할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네가 내게 준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뼈에 새겨진 흉터를 곱씹어야만 했다.
참회할 기회는 없다. 그래도 죽일 생각도 없어. 자, 뭐라도 말해봐.”
그가 내 입에서 재갈을 풀자마자 난 소리쳤다.
“내 아내, 아내를 어떻게 했지? 돈이라면 다 줄게, 제발 아내만은 살려줘, 그녀는 임신 중이란 말야!”
“나는 네 이기심 때문에 모든 삶을 잃었다.
여전히 네 잘못을 뉘우치기보단 네 행복을 잃기 싫은 게 우선인 모양이군..
가치가 없어, 곧 죽여주마. 아내 곁으로 보내준다는 이야기야.”
“무슨 소리야, 그녀를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고!”
“공주님이더군.”
“...무슨 소리야.”
으앵,으앵.. 닫힌 문틈으로 들려온다.
아직 출산예정일이 아닌 아이가 분명히 울고 있다.
“아빠가 된 걸 축하해. 죽기 싫겠는걸, 아내와 당신을 반반씩 닮았더군.
딸의 얼굴은 지옥에서 보게 될거야. 네 다음으로 보내줄테니까 말야.”

[마네킹]
 
“진짜 이런 8등신 길쭉한 몸매가 있을까?”
“왜 없어, 톱스타들 보면 몰라?”
“언니, 그래도 이런 마네킹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면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 중엔 비교불가 아닌가?”
“그야 그렇겠지. 내일 샵에 옮기자. 피곤해. 잘래.”
 동생과 힘을 합쳐 옷가게를 열기로 한 전날,
집에 마네킹 5구를 받아 놓고 저는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고향에서 아빠가 소형 트럭을 몰고 오시면 샵에 옮겨놓을 예정이었죠.
동생은 마음이 부푼 모양인지 제가 꽤 잠을 설치는 동안에도
혼자 거실에서 부스럭부스럭, 뭘 그리 살피고 점검하는지..
“야, 내 구두 어디 갔어? 아빠 왔어? 마네킹은?”
“언니가 다 옮긴 거 아니었어? 난 언니 구두 다 없길래 언니가 만진 건 줄 알았지.”
“네가 어제 늦게까지 안 자고 마네킹 만졌잖아!”
“뭐래, 나 언니 들어가자마자 나도 가서 바로 잤어!”
 아빠의 곧 도착한다는 문자에 답장도 하지 않은 채,
저와 동생은 이상한 줄 알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싸우고 있습니다.
만약 둘 중 누구도 아니라면 일은 더 복잡해지니까요.
마네킹이 구두를 신고 정말 살아 움직여 제 발로 나가지 않은 이상,
누가 이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둑이겠죠? 그렇겠죠?
동생한테 그만 싸우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얘기해야겠어요.
마네킹 도둑이겠죠. 아닌게 이상한거잖아요.
마네킹이 구두를 신고 나가다니요?
하하..하,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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