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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수능을 일주일 앞둔 모든 수험생들에게..
게시물ID : lovestory_699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도찌
추천 : 7
조회수 : 996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1/05 20:57:38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oYGYU
 
오늘 아침 꿈을 꾸었습니다.
 
어젯밤 수능과 관련된 뉴스를 보고 잠들어서 그런가..
정말 너무나도 오랫만에 고등학교 마지막 학창시절을 불태우던 그때를..
고3때 수능을 준비하던 그 시절들을요..
 
연구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면서, 위키질을 하는데 머릿속에서 오늘 아침 꾸었던 그 꿈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더군요.
 
그래서 오랫만에 취업준비고, 뭐고,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사색에 잠겨 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고..
 
수능을 일주일 앞둔 수험생들과 내년에 수능을 치루게 될 예비수험생들에게 
저도 지금 왜 이 글을 써내려 가는건지 제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 저도 알게 될 그 무언가를 이야기해주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디에다가 쓸까..
고민을 한참 하다.. 여기에다가 글을 남겨봅니다.
 
 
안녕하세요. 수험생, 예비수험생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곧 치루게될 수능을
이미 9년전에 치뤘고, 그 과정을 지나온 한 청년입니다.
 
사실 이 글은 여러분들에게 수능날 팁이라던가.. 수능준비 요령이라던가.. 이런 내용들이 아닙니다.
제가 치뤘던 그때의 수험 상황과 앞으로 여러분들이 겪게될 수험 상황은 약 10년이라는 시간 속에 많은 것들이 변화했을테니깐요.
아마 지금의 상황은 수험을 치루게 될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저 별다른 특이했던 이야기를 해주기보다 그저 제가 고등학교 그시절 겪었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고 느꼈던 점들.. 그 후 제가 걸어왔던 길들을 이야기들을 쓸까 합니다.
 
 
10년전 고등학교 시절,
저는 제 내키는대로 놀기를 좋아했었고, 그리고 아주 공부를 못했던 학생이였습니다.
 
어느정도로 못했었냐면..
지금은 수능이 점수 배점이 어떻게 되는건지 잘모르겠지만
언어 수리 외국어 100점 씩 그리고 탐구영역 4과목 200점 총 500점 만점에 200점도 안나왔던 꼴통이였습니다.
 
모의고사를 치루는 날은 그냥 자는날+일찍마치는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고,
학교를 가는 이유는 친구들과 놀고 동아리활동을 위해서 가는 정도 밖에였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없었죠. 정말 이름없는 전문대 조차도요. 딱 한군데 있었다면 그건 바로 군대
그래도 그땐 저는 그 사실 별로 개의치는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굳이 하고 싶지도 않는 공부들은
제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공부 할 필요성을 못느꼈었기때문이죠.
 
그런 골치 아픈 일들은 미래의 나에게 던져주고, 그 후 미래의 저는 신나게 과거의 저에게 욕을 하고있습니다.
현재의 내 행복에 충실하는게 맞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먼 훗날 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할 근거는 지금 현재의 내 행복이다. 라고요.
그렇게 저는 자기합리화를 했었고, 또 그대로 실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 해보고싶었던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뭘 해야할지 모르니깐, 막연하게 제가 즐겁다 라고 느낀 일들만 찾아 골라서 했었죠.
 
지금은 고전게임 축에 들지만.. 그당시 PC방을 휩쓸던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에 미쳐있었고,
학교에선 교과서대신 만화책과 판타지, 무협소설을 읽었고.. 또 여학생들과의 썸씽이나, 친구들과의 우정놀이
매일같이 여러가지 핑계로 야자를 째먹고, 학원도 째먹고, PC방에가서 총질, 코인노래방, 친구들과 놀러다니는게 제 일상이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2004년 겨울 고등학교 2학년을 끝마칠 무렵,
매일같이 놀아도 놀아도 뭔가 공허하고.. 답답하고.. 행복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 감정이며,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걸까 하고요.
 
생각 끝에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언제까지나 나는 어린애처럼 신나게 놀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제 눈앞의 현실과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걸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회라는 곳에 진출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고,
그 후 불투명하고 막연해 보이는 제 미래가 보여서..
불안한 제 모습이 보여서..
그렇더군요.
 
그래서 내가 뭘 하고싶은걸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보았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내가 뭘 잘 할 수 있을까..?
뭐 하면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까..?
그 다음에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요..
 
하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론이 나오지 않자..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진짜 왜 이렇게 좆같은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 피곤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짜증이 났고..
공부가 인생이 전부인가? 학교는 감옥이다. 보이지 않는 창살이다. 짜증난다. 화가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런저런 중2병스러운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있었습니다.
 
그 생각들이 지나자 이번엔..
사는게 뭔가? 나중에 졸업하면 머하고 살아야하지?
어른들 말대로 하면 그냥 공부 열심히하면 편안한데 돈많이 주는데 가서 행복하게 살수있나?
 
그리고 막연하게 이제 수능 1년밖에 남지 않았네..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 뿐이였죠.
그 생각들의 끝에 남는 것들은 불안감이였습니다.
 
 
답답하다.
 
불안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그 후 저는 다시 놀러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행복하기 위해 놀러다닌게 아닌..
현실도피를 위해 놀러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내 현실이 답답해서 숨막히는이런 것들을 외면 하고싶어서..
그렇게 놀러다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고등학교 1학년때 학교를 자퇴하고 목수나 노가다일이 하고싶다며
학교를 뛰쳐나갔던 오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동네 놀이터에서 이런저런 근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목수를 할꺼라면서 뛰쳐나갔던 친구는 노가다를 전전하면서 목수일을 배우다 관둬버리고
그때 동네 인근 여고근처 닭꼬치구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목수일을 관둬버렸냐고 물으니..
자기가 정말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답니다.
 
그래서 니가 앞으로 뭐 할꺼냐고 물어보니
사실 자기도 잘 모르겠답니다.
 
그리고 지금 딴건 잘모르겟지만..
여자애들을 꼬시기 위해선 여자애들을 많이 만날수 있는곳으로 여기를 선택했고,
그래서 자기가 알바하는 꼬지집에서 '꼬지오빠'라고 불리면서
여고생들을 쉽게 꼬실수있다고 자랑했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잘되면 나도 소개쫌 이라는 말을 했던건 비밀
그런데 그 후 친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남은 제 고등학교 시절을 뒤흔들었습니다.
 
 
" 뭘 하고싶은건지, 뭘해야 하는건지.. 나도 내 스스로 잘모르겠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하면서 집중을 하다보면 찾을수 있지 않겠냐?"
 
(이런 말을 해줬던 이 친구는 그때 그 꼬지집 알바를 시작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에 재미와 자기 적성을 찾아, 10년이 흐른 지금 현재, 한 가게의 메인 쉐프로 멋지고 훌륭한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 말을 들을땐 그냥 개소리 하지말라며 넘어갔지만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그날 밤 친구의 말을 곰곰히 다시 씹어보았습니다.
그 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남은 고등학교 1년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공부해 볼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이 되었고,
그리고 저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머리털 난 이후 처음으로 노력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뼈저리게 느낀것중에 한가지가..
공부를 한다는건
 
자기자신과
외롭고..
불안하면서도.. 
길고..힘든..
싸움이더군요.
 
처음엔 무척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어도 불안감은 여전히 가지시 않았고요.
 
하지만 뭘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니 친구말대로 일단 눈앞에 보이는 이거라도 해보자..
대학에 가보자.. 무조건 대학에 한번 가보자..
이런 막연한 목표를 잡고 그냥 아무생각없이 막 공부했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반 기상해서 30분정도 구보를 하고..
7시까지 학교에서 모자란 잠을 잠깐 자고..
방학 보충 수업시간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서서 수업을 듣고..
밤에 야자가 끝난 이후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가 안되더라도 그저 오래 앉아 있기로 했었습니다.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날 휴대폰을 제손으로 직접 박살을 내버려서 할게 없었고..
기초지식이 없으니 학원에 가도 수업을 못따라가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해를 못하면 그냥 앉아서 mp3로 노래를 들으면서 글자를 외운다는 기분으로
최대한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끝나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고,
2005년 저는 고3이 되었습니다.
 
 
고3이 된 후 첫날 야자시간에 진로상담으로 담임선생님께 불려갔습니다.
그동안 1학년 2학년때 받았던 제 성적들을 보며..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군요.
그 후 이런저런 말씀들을 해주셨지만.. 정~~~말 좋게 돌려서 말씀해주시더군요.
 
공부를 시작하고 그때까진 모든게 적응도 안되고, 괴롭고, 외롭고, 힘들었지만..
공부를 시작한 후 3월 첫 모의고사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모의고사가 끝난 이후.. 가채점을 한 후.. 결과를 보는데..
그리고 그 괴로움, 힘든것들을 뒤로한 채 성취감이라는게 느껴지더군요.
 
500점만점에 220점을 처음으로 넘어보았습니다.
아직도 그 점수가 기억이 나네요. 224점.
물론 그때까진 등수에선 뒤에서 노는 제 성적표였지만..
처음으로 눈꼽만큼이나 오른걸 보니.. 괜히 울컥하더군요.
 
스포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상위 계급달성이나.. 클랜전 승리할때 느끼는 순간적인 짜릿함과는 달리..
이 성취감은 길고 오래가더군요.
 
그 후 더 독하게.. 열심히 했습니다.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더군요.
조금씩 조금씩 매달 모의고사를 치루면서 조금씩 점수를 상승시켰습니다.
 
어짜피 바닥에 있던 성적이라 더 내려갈 성적도 없으니 오르는 일만 남았더군요.
그렇게 1학기 내내 모의고사 성적표 막대기를 포풍성장시켰습니다.
 
시간이 지나 2005년 여름이 되었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며 처음으로 공부도 중 정체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루 수면시간이 4시간이 채 되지 않는데.. 그렇게 6개월 보내니 체력의 한계가 왔고.. 
여름날의 더위가 더욱 저를 힘들게 하더군요.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여기 수시 넣을꺼다.. 저기 수시넣을꺼다.. 이런 이야기들과..
내신성적이 좋지 않았던 제게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아서 뭔가 답답하더군요.
 
성적이 상승하면서 얻을수 있었던 성취감은 분명 있었으나..
모르는걸 모르겠는데.. 머리가 멍청해서 그런지 아무리 공부하고 이해하려해봐도 모르니깐 답답해서
낙천적, 긍정적이던 제 성격들이 점점 부정적이게 되더군요.
 
왜 내가 여기서 좆뺑이 치면서 공부해야하는거지?
아 진짜 좆같애서 못해먹겟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가..
이런 멘붕을 생각들과 제 속에 감춰뒀던 막연한 불안감이 다시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친구들과 보충수업을 듣다 말고 째먹고
그길로 몇몇 친구들과 뛰쳐나가서 정신줄놓고 PC방에 갔다가..
몇일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놀았습니다.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길에.. 뭔가 허무하더군요.
왠지 다시 공부를 해야할것 같고..
하지만 공부를 다시 하고싶진 않았습니다. 내가 할수있는 건 여기까진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다시 다음날 학교 보충수업을 나가기 시작했고..
그전만큼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부러 안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야자시간에 배가 아파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그 날따라 문득 어두컴컴한 운동장 모습과.. 불켜진 교실 속 풍경들과 
그속의 반 친구들과 창문넘어 보이던.. 공부를 옆반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시원하게 장속에 있던걸 배출해내고 다시 제자리에 앉아있는데..
문득 이런생각이 들더군요.
 
혼자하는 공부가 아니구나.
 
얼마전에 드라마 미생에서도 이런대사가 나왔었죠..?
정말.. 위로가 되면서도.. 마음을 다잡게 되더군요.
 
그렇게 여름이 지나..
제 인생의 마지막 고등학교 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중 하나씩 슬슬 수시 합격으로 저녁 야자시간에 하나.. 둘씩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부러움과.. 축하.. 그리고 불안감도 점점 다시 커져갔고..
살짝 흔들릴뻔한 적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제가 공부를 시작했던 그 이유들과.. 그리고 여름방학때 보았던 그 모습들을 기억하면서 믿고 나가기로 했었습니다.
 
그결과
9월 모의평가를 거쳐서 10월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면서
드디어 제인생에서 다시 처음으로 반에서 3등.. 전교에서 20위권 내로 진입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그땐 이정도면 어디라도 대학은 갈수 있겠구나.. 하는생각에 더이상의 성취감은.. 없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저.. 마지막 성적표를 보면서 생각했던건.. 막연하게 수능이 끝나면.. 대학이라는 첫목표를 달성해보면..
그땐 내가 뭘 하고싶은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 하나만 했습니다.
 
 
수능이 일주일정도 남았었고..
학교에선 컨디션조절 잘해라고 일찍 마쳐주더군요.
 
하지만 저는 마지막까지 수능 전전날까지 꾸준히 같은 공부시간과 리듬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능전날 수험표를 받았습니다.
미리 고사장입구에 가서 시험을 치루게될 장소를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끝이구나.. 이런 생각들..?
 
집으로 가기전 잠깐 자주가던 PC방에 들러 예전에 열심히 게임하던 스포에 접속해봤습니다.
활동하던 클랜에서 1년정도 접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퇴가 되지 않았던게 의외였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올드비들에게 인사를 하니 반겨줬었습니다. 그리고 수능전날에 게임접속한다고 미친놈이라고 욕처먹은건 비밀
그리고 문득 내일이면 이제 스포도.. 마음편하게 불안감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정리했던 각 과목별 오답노트들을 보았습니다.
꽤 권수가 많았고.. 두꺼웠으며.. 손때가 많이 타있었습니다.
그걸 보는데.. 그냥 내가 이만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대견함이나 뿌듯함 같은건 없었습니다.
그냥.. 한번 뭐라도 해보겠다고 설쳤던 지난 1년의 발버둥 친 결과물 처럼 보이더군요.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저녁을 먹고..
침대에 바로 누웠는데.. 곧장 잠들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글쎄.. 저는 별로 의외로 긴장이 되지 않더군요.
그냥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무조건 밥을 반쯤만먹고 화장실가서 장에 있는거 다 비우고..
학교로 가자.. 그런생각만 했었던것 같습니다.
 
다만 처음으로 거의 1년만에 10시 이전에 그리고.. 푹 자봤던것 같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반 쯤 자동으로 눈이 뜨이더군요..
 
어머니께선 밤새 못주무셨는지 충혈된 눈이셨었고..
제가 일어나자 부엌에서 아침 준비하셨는데..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데 뭔가 속에서 뭉클하더군요..
 
씻고 나오자 아버지께서도 잠을 뒤척이셨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셨고..
생각했던대로 준비해서 시간에 맞춰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사장으로 가는길은 처음엔 조용했었지만..
고사장으로 갈수록 멀리서 북두드리는 소리와... 사람들 함성들이 들리더군요.
 
시끄러웠던 입구를 지나 진입하자 공기가 달라졌던것 같았습니다. 그냥 기분탓일진 모르겠는데.. 그덕에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고사장내는 쥐죽은듯이 조용했었습니다.
그저.. 책넘어가는 소리와 한숨쉬는 소리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속에 왠지모를 긴장감..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고.. 저역시 덩달아 미친듯이 긴장했었던것 같았습니다.
abc 초콜렛을 봉지째로 들고왔었는데.. 계속해서 초콜렛만 먹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고사장내 아주 오래된 친구가 들어와 제 앞앞 자리에 앉았고..
이녀석이 문득 뒤를 돌아보면서 바짝 얼어있던 제모습을 보며 피식 웃으면서 '수능 잘치라' 라고 한마디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같이 얼어있던 그놈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면서 긴장이 살짝 풀리더군요.
 
잠시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인 수능이 시작되었습니다..
언어영역이 시작이 되었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삐~ 하는 소리와 듣기 평가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뒤로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그저 한문제 한문제에.. 지난 1년간의 절실함을 담아서 풀었던것 같습니다.
언어영역 시험 종료가 되었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수험장엔 모르는 사람들 밖에 없었는데 복도로 나오니 같은 학교 친구들이나.. 동네친구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언어영역이 쉬웠니... 나 100점인거 같다니... 뭐니.. 이런 소리를하면서 떠들고 노는 모습을 보니까
긴장이 많이 풀리더군요.
 
수리영역 때부터 많이 추웠던것 같았습니다.
추워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마킹하던 펜을 잡고 마킹하다 손에 생긴 식은땀을 교복바지에 닦아가면서..
계속해서 마지막까지 자지 않고.. 풀었던것 같습니다. 역시나 기억은 날라갔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꺼내서 먹는데 같은 고사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동갑친구들이겠지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드디어 다들 웃으면서 편하게 밥을 먹었었습니다.
그런 모습들에.. 저 역시 긴장감이 완전히 없어졌었습니다.
 
외국어 영역시간이 되고.. 듣기평가가 끝난이후.. 뭔가..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수능이아닌.. 모의고사를 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모의고사다..
 
 
이런 느낌 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기분으로 시험을 쳤던것 같습니다.
 
외국어 영역이 끝나고 제가 문과라 사회탐구 영역을 풀었는데..
국사, 근현대사, 한국지리, 법과사회
이렇게 네 과목을 쳤던걸로 기억합니다.
 
마지막엔 정말로 수능이라는 이름이 주는 긴장감은 없어졌고.. 평소와 바를바 없는.. 모의고사를 푸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 국사를 치를땐 빨리 끝나고 뭐할까... 이제 공부 안해도 되는구나.. 신난다.. 이런 생각에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두번째 근현대사를 치는 과정에서 문제를 생각보다 일찍 다풀어서.. 문득 고사장 바깥 창문을 보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번째 한국지리를 풀땐 뭔가.. 한시간뒤면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고..
마지막 법과사회를 풀땐 예상외로 문제들이 존나게 어려워서 잡생각없이 집중해서 풀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종료벨이 끝나고.. 시험지를 회수한후 감독관이 그동안 지난 12년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냥.. 이걸로 진짜.. 정말로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관이 이런 저런 덕담을 이야기해주면서 시험지와 OMR카드를정리를 끝마치는데..
다른고사장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었습니다. 그리고 끝이다!! 라는 고함도 들었던것 같습니다.
 
가방을 정리하면서고사장을 나가는데..
수험표가 눈에 들어왓었습니다.
 
문득 정말로 내 스스로 뭔가 끝내고.. 해낸거 같아서..
제 사진 위쪽 공간에 정말 고생많았다. 라고 적었고..
뒷면에다가 커다랗게 이젠 끝! 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우라라! 고함을 지르며 고사장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고사장 밖은 이미 어둑어둑 해져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울고있는 동갑친구도 있었고.. 기분좋게 뛰어나가면서 소리지르던 친구도 있었고..
다들 다양한 모습으로 수능을 끝내고 고사장 밖으로 많은 친구들이 걸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사장 교문 바깥엔 그런 친구들을 마중나온 그 친구들 부모님들도 보였습니다.
 
저도 집으로 걸어가던도중.. 멀리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보여 고등학교로 발을 옮겼습니다.
 
교문을지나 좀만한 운동장을 한바퀴 걸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걷는데.. 그때 기분은 글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냥..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굳이 글로 그때 느꼈던 그 기분을 표현하자면...
매우 상쾌했고.. 또 시원했으며.. 섭섭하기도 햇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마지막엔 눈물이 나왔습니다.
 
 
집으로 들어가자말자 부모님께..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저녁 먹지도 않고 바로 튀어나와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유가네 라는 철판 볶음밥집가서 배터지게 먹었습니다.
수능이 끝나서 그런지 번화가엔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들 웃고 있는 얼굴이였고.. 즐거워보였습니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가채점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 모습에 부모님께서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혼자서 하나 둘.. 가채점을 하는데..
하다말고 갑자기 가채점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언어영역 한 10문제쯤 채점하다.. 가채점 하는걸 그만뒀습니다.
결과를 알게되면 1년간 죽을 고생했었던 그 기억들과...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잃어버릴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금 이대로 이 기분 당분간 가지고 가고 싶어 채점하는걸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침대 밑에 가방이 눈에 띄였습니다.
가방을 열어봤는데.. 오답노트들을 꺼내 보는데 다시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총 8권이였습니다. 수리영역이 2권 외국어 영역이 2권 사탐 4권..
오답노트를 8권을 천천히 한장한장 펼쳐서 보니 1년간 개 피똥싸가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감회가 새롭고.. 왠지 뿌듯함이나..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는데..
동시에 모르는 문제들때매 멘붕하면서 공부했던 기분도 드러워져서 기분이 묘했던것 같았습니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학교를 가니 다들 미친듯이 웃고 노는 놈들도 있었고..
동시에 죽을 상으로 재수학원 다닐꺼라고 징징대는 놈들도 봤습니다.
 
잠시 후 담임선생님이 오셨고 가채점한 내역대로 수능점수를 조사해갔었는데..
저는 대충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5점정도씩 빼서 제출했었습니다.
 
그 후 진짜로 학교에 놀러나갔던걸로 기억합니다.
맨날 비디오를 봤었고.. 그리고.. 대학교 탐방을 다녔던걸로 기억합니다.
 
앞에 말했던 닭꼬치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친구는 그걸 계기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그리고 저도 학교가 끝난 후 그 친구의 소개로 저도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모아서 오토바이도 사고.. 이것저것 많은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수능이 끝난후에도..
사실 아직도 내가 뭘 하고싶은지는 잘모르겠으나..
수능도 해냈는데.. 1년이라는 시간도 버텨봤는데 어찌든 되겠지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늘상 저를 괴롭히던 불안감이 없어져서 일단 대학을 가보고 어떻게 할건지는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성적표가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장되던 순간들중에 TOP5를 꼽으라면 그중에 하나를 수능 성적표를 받던 순간으로 기억하고싶습니다.
 
심장이 터지는 느낌였는데..
결과는...
 
원점 100 // 12 // 87 // 50/50/47/42 로 총점 386점
등급 1  //  8   // 2 // 1/1/2/3
 
정.말.로. 기분이 좋으면서도 좆.같.앴습니다.-_-..
처음엔 눈을 비비며 수리영역 점수가 3이 아닌 8로 잘못 표기 된건가 싶었는데.. 아니였습니다.
2시간 내내 덜덜 떨어가면서 한문제 신중히 신중히 풀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모의고사가 다찍어도 4~5등급은 나왓던걸로 기억하는데..
손으로 직접 노가다를 하면서 풀었던것들도 엄청 많았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겠거니.. 싶었는데... 현실이였습니다..
 
전 아직도 왜 그때 수리가 8등급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이상없었는데.. 현실도피
 
그래도 성적표를 받고 나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조금 차분해지자..
1년전이 떠올랐습니다..
참 웃음만 나오더군요...
 
그땐 200점도 안돼서 빌빌거렸는데..
 
나 정말 노력했구나.. 고생했다..
이제 대학교에가서.. 내가 정말 하고싶은일이 뭔지 잘 찾아보자..
이런 생각들이요..
 
그러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후.. 원하는 대학교엔.. 수리덕에 지원조차 못했었고.. 수리를 주깁시다. 수리는 나의원쑤
재수는 때려 죽어도 하기 싫어서.. 그냥 점수에 맞춰서 집근처 국립대로 진학을 결정을 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아예 날로 먹었습니다.
1년간 고독한 수행승처럼 제자신을 채찍질을하면서 공부를하다..
처음으로 대학으로 진학해서 아무것도 없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맛보자..
 
반대급부로 정말 고삐 풀린 망나니처럼 놀았습니다..
1학년 1학기가 ALL C+
2학기가 A+,A아니면 FFF
 
그리고..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놀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애초에 왜 대학을 가려했던건지..왜.. 공부를 했었던건지..
제가 하고 싶은일이 뭔지 찾는 일은 희미해져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저는 군대를 갔고..
군대에서 다시 생각할 시간들이 많아지자.. 
다시 진지한 생각들을 하면서 전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역이후엔.. 더이상 어릴때 처럼.. 놀기보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늘 일상에 쫒겨 다녔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들이 별로 없었죠.. 눈앞의 일들을 헤쳐나가기도 벅찼습니다.
시간은 정말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내가 하고싶은 걸 찾는 중요한 시간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직장에서 퇴직이후.. 다시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다시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일이 뭔지를요...
그러네요..
이제 저도 제가 왜 이글을 써내려가는지 알겠네요.
제게 쓰는 편지와도 같은 것 같습니다.
 
이제.. 고3 수험생님들과.. 예비수험생들에게 제가 해주고싶은 말은
 
저는 어릴때부터 믿어 왔던게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행복해야.. 미래의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한가지 더 추가할게 있습니다.
그 행복은 자기가 진정 하고싶은 일을 했을때 행복할 수 있다는겁니다.
 
제가 느끼고 겪었던 수능은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과정인것 같습니다.
끝이 아니라요..
end가 아닌 and죠.
 
지난 12년간의 결실을 맺고,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그 과정의 새출발을 하는 시간이 바로 수능입니다.
 
수험생 동생들은 지금 현재 행복한가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이 진짜 뭔지 찾았나요?
 
자신이 하고싶은 일들을 이미 찾은 동생들이라면.. 정말 축하드립니다. 진심으로요..
앞으로 그 하고싶은 일을 믿고 나아가면 될겁니다. 어떠한 어려움이나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요..
허나 그길이 아니라 생각이 들어도 다시 한번 찾아가면 됩니다. 늦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 수능이라는 수험을 앞둔 동생들은  수능을 마지막까지 힘내서 잘 치루고..
그 다음 과정으로 향해 걸어가며.. 대학.. 남동생이라면 군대.. 그리고 취업..
 
그리고 저도 앞으로 겪어야될 결혼.. 출산.. 자식들 장가보내기.. 퇴직들을 겪어 나가야 겠지요.
그 과정들에 있어서  제가 뭘 해야 행복할지.. 제가 뭘 하고싶은건지 저역시 동생들과.. 계속해서 찾아나갈겁니다.
 
시간은 유한하니..
이 시간이 끝나기전
no where 가 아닌 now here. 을 찾기 바랍니다.
 
우선 그 과정으로 지금 눈앞의 수능이라는 관문을 잘 통과하길 바랍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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