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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제물론의 배경과 해석 (2) 레이어케이크와 같은 현실
게시물ID : phil_101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hil
추천 : 1
조회수 : 104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11/06 00:42:21

layercake.jpg

레이어케이크는 일단 접어두고, 피자 한판을 주문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봅시다. (요리게 아닌거 압니다.^^)

피자가 육등분되어서 옵니다. 그 피자 한판에 몇개의 개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 여섯? 아니면 더 많이? 다 정답입니다. 가능한 답들은 대충 이렇습니다:
  1. 원형 피자 하나
  2. 세모난 피자 슬라이스 여섯개
  3. 치즈, 크러스트, 허브, 페퍼로니등의 피자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음식재료
  4. 그 음식재료를 구성하는 여러 화학원소들
  5. 그 화학원소들을 구성하는 더 작고 더 많은 입자들
피자의 구조는 이렇게 여러 계층이나 단계로 나뉘어집니다. 레이어케이크식의 구조라고도 할 수 있죠. 

이 구조는 보시다시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큰 것이 더 작은 것들로 세분화되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작은 것들이 더 큰 것을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 그럼 이러한 구조를 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현실에 전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올라갈 수 있을만큼 올가가면 그 끝에 있는 최상 계층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제일 큰 존재가 있습니다.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내려가서 그 끝에 다달한다면, 그 최하 계층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제일 작은 입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혜시의 '역설'(이라고 흔히 일컫지만 다 역설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중의 첫번째 명제는 레이어케이크와 같은 현실의 최상 계층과 최하 계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至大無外,謂之大一;至小無內,謂之小一。

가장 큰 것은 그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태일(太一)이다. 가장 작은 것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소일(小一)이다.

혜시의 다섯번째 명제도 현실의 계층 구조를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大同而與小同異,此之謂小同異;萬物畢同畢異,此之謂大同異。

더 큰 차원에서는 같지만, 더 작은 차원에서는 같은 것과 다름: 이것을 '소규모의 같음과 다름 (소동이 小同異)'라고 한다. 

만물이 모조리 같거나 모조리 다름: 이것을 '대규모의 같음과 다름 (대동이 大同異)'라고 한다.

'대동이'는 현실의 최상 계층에서 모든 것이 동일한 물질이고, 최하 계층에서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개체라는 것을 말합니다.

'소동이'는 더 높은 분류 단계에서 함께 분류되는 것들이 더 낮은 분류 단계에서 따로 분류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저는 두가지의 존재론을 구별하겠습니다. 하나는 보텀업(bottom-up) 존재론입니다. 즉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최하 계층에 있는 소립자들이고, 상위 계층에 존재하는 것들은 소립자들의 배치와 그것들간의 상호작용에 기반한다는 이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탑다운(top-down) 존재론입니다. 즉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최상 계층에 있는 구별없는 혼연일체이고, 하위 계층에 존재하는 것들은 이 혼연일체가 이렇게 나뉘고 저렇게 나뉘어지면서 생기는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음양오행설이나 퇴계선생의 《성학십도》에 첫번째로 나오는 태극도나 우리나라의 태극기가 보여주는 게 대충 이렇습니다: 하나가 둘 [음양]이 되고, 둘이 다섯[오행]이 되고 이들의 상호작용이 만물을 생성한다.)

이 시점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보텀업 존재론입니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은 탑다운 존재론입니다. 후기묵가나 혜시나 장자의 존재론을 이해하려면 이점을 감안해야합니다.

참고문헌: 

우리말로 번역된 혜시의 첫번째 명제의 출처는 박성규가 번역한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입니다. 혜시의 다섯번째 명제는 A. C. Graham의 Disputers of the Tao에 있는 영문 번역에 따라 제가 한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장자의 국역본은 어느 것이 제일 좋을까요. 글쎄요. 2006년도에 교수신문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번역본은 안동림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후에 나온 김학주의 번역본을 가지고 있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추천하는 번역본은 A. C. Graham의 영문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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