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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사건 - 유전무죄 무전유죄
게시물ID : sisa_5684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hySoSerious
추천 : 1
조회수 : 248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1/03 10:30:36

영화 "HoliDay"  하이라이트씬   



지강헌 사건 뉴스 중계 영상 



 지강헌(池康憲, 1954년~1988년 10월 16일)은 1988년 교도소 이감중에 도망쳐 서울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탈주범이다.

지강헌 일당이 서울시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장면은 TV를 통해서 전국으로 생생히 중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특히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뜻으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고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절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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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0월16일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 아무개씨 집에서 권총을 들고 소리치고 있다. ⓒ 연합뉴스

88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중 12명이 탈출하여 서울시내로 잠입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500만 원 절도를 저지른 자기보다 70억 원 횡령을 한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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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18일 새마을운동본부 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전경환씨. ⓒ 연합뉴스

    죄목   징역
 지강헌   절도 500만원상당   징역 7년 +  보호감호 10년 (총 17년 격리감호)
전경환
(전두환 대통령 동생, 
前 새마을운동협회 총재)
 공금횡령(73억6천만원),
 탈세(10억원),
 뇌물수수(4억1천7백만원)
 불법 이권 개입   
 징역 7년 
 벌금 22억원
 추징금 9억원
※ 실제로 당시 전경환은 수감된 지 3년 만인 1991년 6월 가석방되었고, 이듬해 1월 대통령 특사로 사면 복권되었다. 

이 중에서 최후까지 잡히지 않던 5명 중 4명은 경찰의 검문을 피해 서울시에서 여러 군데의 은신처를 전전하다 10월 15일 밤 9시 40분경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영서 씨 의 집에 잠입해서 고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 되었으며, 인질극을 벌인 범인 4명은 다음과 같다.



인질로 잡혀있던 가장(家長) 고 아무개씨가 새벽 4시쯤에 탈출하여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병력 1천여 명이 집을 포위했다. 인질범들은 새벽 4시 40분부터 경찰과 대치했으며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낮 12시경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이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호송교도관의 총을 빼앗아 자살했으며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시도 직후 경찰특공대원들이 집으로 진입해 인질로 잡혀있던 가족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경찰진입과정에서 지강헌은 총 2발을 맞았고, 같은 날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끝까지 검거되지 않았던 5명 중 인질극에 가담하지 않았던 마지막 탈주범 김길호가 탈주한 지 1년 9개월 만인 1990년 7월 1일에 체포되면서 탈주극은 막을 내렸다.



출처 및 참고 

 위키백과   지강헌 사건 

※시사저널 / [표창원의 사건 추적]“유전무죄, 무전유죄” 탈주범의 절규

사기죄 5년 선고에도 실제 수감은 2개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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