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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주워온 고양이
게시물ID : animal_3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loudNine
추천 : 32
조회수 : 170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4/01 22:29:12


살맛 나던 3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다시 또 날이 밝았다.
휴일의 마지막날이었던 월요일 밤, 줄어드는 연휴가 마냥 아깝고 서러워 밤새 이부자리에서 뒤척거렸더니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내내 정신을 못차리고 버벅거렸다.
어설프게 가진 지난 밤 잠자리에 눈이 좀 침침한 것 같아 손거울을 집어들었는데
전에 없던 몹쓸 것들이 피부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패이고 팔뚝살이 처지기 시작하는 옘병 같은 일을 실제로 목격하고 보니
언제 한번 날잡아서 동네 피부과에 예약전화를 때려넣어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회사 창고가 위치한 지하2층 주차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창고 밖에서 동료오빠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얼마전 고양이 한마리를 주차장 구석에서 본적이 있다는 오빠의 말에
오~드디어 올것이 왔군! 인간 대 고양이가 벌이는 하악질을 라이브로 보여주겠어~하고
느긋하게 밖을 나섰다.
그런데.............................팔뚝만한 고양이는 어데가고 애옹~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계속 듣고 있자니 뭔가 다른 세계로 인도될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에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손바닥보다도 작은 뭔가가 같은 자리에서 바동거리며 애처로운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아이구야! 새끼 고양이네. 완전 새끼예요. 완전 새끼!"



뭐 그렇다고 불완전 새끼가 있다는건 아니지만 여지껏 살면서 이렇게 작은 꼬물이는 처음 봤던지라
괜스레 호들갑을 떨며 손안에 주워들었다.
아직 눈도 못뜬 꼬물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건지 아니면 곁에 있던 어미가 갑자기 사라져 불안한건지
목청껏 울어대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손목을 벅벅 긁어댔다.
자그마한 발에는 살집이 아직 붙지 않아 뾰족한 발톱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아마도 동네 길냥이가 회사 주차장에 새끼들을 낳았는데
수시로 들려오는 차 시동소리에 놀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떨어뜨렸거나
아니면 형제 중 유독 약해보이는 놈이라 부러 놔두고 떠난 것 같았다.
일주일도 채 안되어 보이는 어린 것이 차가운 바닥에서 마냥 울고 있으니
어찌나 딱해보이던지. 마치 계모임에 나가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놓쳐
동네 입구에서 발작을 지기던 내 7살의 모습과 같았다고나 할까.
우선 작은 박스에 넣어 그자리에 두고 퇴근때까지 기다려봤다가
그런데도 어미가 찾아가지 않으면 그대의 인생은 내가 접수하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 7시 반, 얄팍한 신문지 한장을 덮고 자는 꼬물이를 박스채 품에 안고
회사를 나섰다.



2008년5월6일.....꼬물이의 인생이 제대로 말리기 시작한 날.




회사 근처의 동물 병원에 들러 꼬물이의 상태를 진단하니 태어난지 5~7일정도 되었으며
다행히 특별한 질병이나 상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요만한 아깽이는 절대적으로 어미품에 의존해야 하고 그편이 살아날 확률이 크지만
이미 혼자가 되버린 이상 키우는 사람의 꾸준한 관심과 보살핌이 살수 있는데에 큰 관건이라 하셨다.
당시에는 뭐 그냥 우유만 냅다 먹이면 살겠지~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직원분께 분유 한통과 조그마한 젖병 하나를 부탁드렸다.
헌데 강아지용 분유만 취급하고 있다는 병원 원장님께서는
언젠가 TV 동물 농장을 봤는데 호랑이 새끼가 강아지용 분유를 먹고 훌륭하게 잘 컸다는 예를 꼽으며
동물 병원에 고양이용 분유가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셨다.
고양이용이든 강아지용이든 어린 것이 뭐 맛의 차이을 알겠냐 싶어
그냥 강아지용 분유로 구입했다.
다만 강아지용 분유를 먹고 훌륭하게 잘 자랐는데 성격이 개 같으면
주인이랑 애완묘랑 아주 환상적인 콤비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다.
게다가 젖병마저 새것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딱 한번 밖에 쓰지 않았다는 젖병을 들고와
이건 공짜로 드리겠다며 너덜해진 포장지를 흔드셨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물품을 건네받는데 직원분은 또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사연 하나를
귀에 아주 쏙쏙 들어오게 흘리셨다.



"뜯은 흔적만 있지 거의 새것과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새끼 강아지한테 한번 물려봤는데
바로 다음날 죽어버렸거든요."



뭔가 위험한 동물 병원이였다.
검은 기운이 가득한 젖병을 가방에 넣고
털이 복실복실한 강아지가 프린팅 되어진 분유통을 옆구리에 들었다.
한참을 울다 지쳐버린 꼬물이는 박스안에 몸을 잔뜩 웅크려 잠이 들었고,
그날따라 스피드 레이서 찍으시는 1번 버스 기사님의 만행에
얘 자다가 구토할까 싶어 박스를 공중에 띄운채
근력 하나로 50분의 크레이지 드라이브를 견뎌냈다.
쳐진 팔뚝에 탄력이 붙은 기분이였다.




며칠전, 아직까지 상영관 하나를  접수하고 있는 '추격자'의 강인한 생명력에
오랜만에 서울 상경하신 엄마에게도 감상의 기회를 드리고자 싶어
늦은 밤 극장을 찾아 개봉 2주만에 200만명을 돌파한 저력을 직접 보여드렸다.
그 작품을 보고난 후로 엄마의 잔소리와 걱정은 평소의 열배로 늘어나
퇴근이 조금 늦어진다거나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으면 아주 그냥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귀가를 기다리셨다.
그날도 역시.....배터리가 방전된 폰은 나도 모르는 새에 자동적으로 꺼져 통신수단으로써의 구실을 잃은 상태였고  
조금 늦은 퇴근에 동물병원까지 들렸다 오느라 보통 귀가 시간보다 두시간 늦게 집앞 대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현관문을 열자 안방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계시던 엄마는 왜 이렇게 늦었냐며!!
품안에 든 박스에 대한 얘기를 꺼낼 틈도 없이 다다다 잔소리 어택을 가하셨고
행방불명된 딸래미의 실종단서라도 찾고 계셨는지 아빠는 내 방에서 뭔가를 뒤지고 계셨다.
(뭔가 발견하셨다면.....난 정말 행방불명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집 식구들...시트콤 출연을 노리고 계신건가.
왜 있지도 않은 사건을 미리 재연하고들 계시는건지.
한참 잔소리를 퍼부으시던 엄마는 늦게서야 손 안에 든 박스를 발견하고
흠칫 얼굴을 굳히셨다. 사고에 휘말린 것이 아니라 사건을 저지르고 온게 아닌가 하는 눈초리로
박스에 든 것이 혹여 토막난 뭔가의 사체인가 싶어 눈쌀을 잔뜩 찌푸리셨다.



"엄마!! 이거 고양이!"



차라리 토막난 사체가 나았으려나.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는 엄마는 요물을 주워왔다며 싸늘하게 고개를 돌리셨고
요물이든 뭐든 네발 짐승은 그냥 싫은 아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셨다.
어미에게도 버림 받고, 뭔가 동물병원에서도 버림 받고,
우리집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꼬물이의 처지가 너무 안쓰러워
내방으로 조용히 들어와 자고 있는 꼬물이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가여운 마음에 무작정 데리고는 들어왔다지만 솔직히 잘 키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일 굶은 채 도롱도롱 잠만 자는 녀석을 보니 착잡한 마음에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





허나!  
사실은 마음이 너무나도 약하신 엄마 아빠는 다음날이 되자
이렇게 작은 놈인줄 몰랐다며 엄마는 손수 분유를 타 먹이시고
새벽에 자고 있는 놈이 추워 보인다며
아빠는 출근하면서 자신의 베게 수건을 꼬물이에게 덮어주었다.
한번도 애완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부모님은
처음으로 집안에 들인 새끼 고양이가 그렇게도 신기할수 없는지
대화의 절반은 고양이의 올바른 양육과 배변훈련에 관한 내용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이내 박스 안에서 뒤집혀서 잠이 든 꼬물이에 시선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지어 이번주말에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던 엄마의 일정은
매 3시간씩 분유를 먹어야 하는 꼬물이로 인해 다음주로 연기되었고,
아빠는 내방에 있던 박스를 안방으로 옮겨, 나와 꼬물이가 돈독해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틈만 나면 손바닥에 올려놓고 직접 잠을 재우셨다.
이 집안의 귀여운 딸래미가 부모님의 기억에서 잊혀진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외롭다.





너무나도 작은 고양이라 아직은 성별 구분이 어렵다는 동물병원 원장님의 말씀에
꼬물이의 이름을 최대한 유니섹스하게 짓기로 하였다.
그런 내 마음으로 모르는 아빠는 '특허'라고 부르자며 꼬물이의 인생에 자신의 업을 얹어주시려 하였다.
꼬물이의 인생이 뭔가 처연해지는것 같아 급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최대한 부르기 쉽고 간단한 걸로 짓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한자를 중얼거리시더니 고양이 묘자에 선영이의 선자를 붙여 '묘선'은 어떻겠냐고 의향을 물으셨고,
'아이구 참말로!!! 묘선이가 뭐야~~묘~영이가 낫겠네~묘영아~' 하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히셨다.
물론 두분의 의견은 나로 인해 산산이 부서졌다.
묘선~묘영이라고 지었다가 나중에 거대 뽕알의 수컷으로 자라면,
지극히 여성스런 자신의 이름을 두고 정체성에 크나큰 혼란을 초래할거라고........
이런 말도 안되는 나의 반박에 부모님은 이름 짓는데에 백기를 드시고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부르셨다.
나비, 나리, 똘망이, 막냉이, 어이, 임마..................
볼품 없는 검정색에 종도 길냥이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코숏,
똥도 맛동산만큼 굵직하게 싸대는 똥쟁이지만 이왕 한가족으로 들인거
꼬물이의 생이 끝날때까지 책임지고 키워가야 겠다.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을 동고동락할 사이가 되어버린 이상
이름도 대충 짓기보다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데.....
똘망이라고 부르던 엄마의 부름에 익숙해져 꼬물이의 이름은 '또랑이'로 결정되었다.
상당히 건전치 않은 상태가 연상되는 이름이지만,
연탄-탄빵-빵상-깨랑까랑 식으로 사고를 넓혀가던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어
앞뒤 잴것 없이 또랑이로 의견을 모았다.
헌데 밤마다 또랑이를 안방에 데리고 가 주무시는 아빠의 행동을 보아서는
매일 밤마다 또랑이의 귓속에 '특허'라는 단어를 심어주고 있는게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된다.




<데려온 첫날, 이틀 내내 재채기를 달고 있어 동물 병원에서 감기약을 지어 먹였더니

하루만에 다 나았다. 진료비가 12000원이었다. 낫지 않을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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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개돼지로 성장했다.



저희집 고양이 개또랑이(개또라이)입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던 녀석이~

이제는 대갈통이 손바닥으로도 다 안잡히는 개돼지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게는 평생 귀여운 녀석이에요.

평소에는 주인을 개같이 보면서 간식 줄때만 존내 앵기면서 발라당 뒤집어지는데 아~~~이런 사랑스러운 띱딱구.




아이돌 시절의 개또랑이.







베티펌입니당ㅋㅋ 글도 맛깔나고 고양이도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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