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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죽.관.
게시물ID : panic_763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세히
추천 : 12
조회수 : 2300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1/19 22:31:15
대낮이었다. 

분명히 해가 중천에 있을 것 으로 짐작되는 대낮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마치 늦은 오후 혹은 초저녁 같았다.  

처음이었다.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 예상 할 수도 없는 날이었다. 

낮이 밤같던 그 날, 누군가 멍하니 서 있는 내 팔을 잡고 세차례 정도 흔들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몸은 난간쪽으로 쏠려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사람이 날 살렸구나. 싶었다.  

그래서 밥을 사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대꾸없이 마른 얼굴을 떨굴 뿐이었지만 사실 나도 밥 생각은 없었다.

괜한 말을 했나 싶어 후회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영화 속 특수효과처럼 정말 한 순간에 뿅 하고 사라져버렸다.  

다시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매일매일 하루에 수십번도 더 그 사람이 생각났다. 


하루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났다. 

나이는 몇살일까? 기껐해야 나보다 조금 더 많아보였는데. 

어디 살까? 그런곳에서 만난걸 보니 그 곳을 자주 지나는 사람일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할까? 이 더위에도 날 선 정장을 입고 있던데. 

그리고... 왜 날 도와 줬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그냥 둔 나를. 

왜 하필 그 사람이였을까. 

왜 날 붙잡은걸까? .... 

언제쯤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어간다. 

날짜로는 45일. 1개월이 좀 지났다. 

그동안 단 한번도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오늘. 

이른 아침. 그 장소에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가 다시 보였다. 

햇살이 쏟아지는 다리 위에서 그는 굳은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옆에는 왠지 슬퍼보이는 꽃다발과 함께. 

꽃다발의 주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듯 했다. 

 무슨 생각인지 어느새 나는 그 꽃을 집어들었으나 그 사람의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웃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나서 다리 반대쪽으로 멀어져갔다. 

잡을 수 없었다. 

그 어깨가 너무 무겁게 내려와있어서. 

굳게 다문 입술이 눈물보다 더 슬퍼보여서.  

그 표정을 보니 차마 쫓아갈 수 없었다. 

아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고 죽을 거란건 알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가장 예쁜 유리병을 주워다 맑은 물을 가득 채우고 꽃을 꽃았다. 

이 꽃을 볼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이 나겠지. 

어쩌면 생각했다. 

이렇게 짧게라도 만나게 된게 참 다행이라고.  

나도 그 사람도 조금씩은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왠지 다시 만날 것 같다고.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고... 

서로를 의식하기 전에도 왠지 본 적이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믿었다. 

나 편하자고 그 사람 다시 보고 싶었다...  







이번엔 계절이 바뀌지 않았다. 

다가올 겨울은 매섭게 춥겠지만 이 가을은 너무 눈부셨다. 

정확히 4일뒤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는 항상 잘 갖춰진 정장을 입고 오는구나. 

그의 날 선 양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사람은 나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난간에 기대있던 그 사람이 갑자기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놀랐다. 


무척 놀랐다. 


가까스로 옷 끝을 잡은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은 그대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머리가 멍해지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날 선 양복을 입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지만 그보다 놀라운 감정이 먼저였다.  

말도 꺼내지 못하는 나를. 

굳어 있는 나를.. 

드디어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 팔을 들어 꼭 안아주며 이야기 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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