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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양치기 소년
게시물ID : readers_185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챠챠브
추천 : 2
조회수 : 3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2/15 05:56:14
한 소년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소년은 마을에서 소문난 말썽꾸러기였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가 열 여섯 살이나 되어도 언제나 문제만 일으킨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 시골 마을에서는 열 여섯 살이 되면 마을의 일을 도와야 했다. 그래서 마을 회관에서 이 문제로 회의가 열렸다. '이 소년에게 일을 맡기면 위험하므로 안된다' 는 반대파와 '아무리 그래도 마을의 전통을 깰 순 없으니 어떤 일이라도 시켜야 한다'는 찬성파의 격렬한 논쟁 끝에 이 말썽꾸러기에게 마을에서 제일 쉬운 일인 양 돌보기가 할당되었다.

제일 쉽고 따분한 일을 할당받은 소년은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힘든 일을 하게 된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소년의 아버지 또한 매우 실망하여 매일같이 소년을 혼내기만 했다. 하지만 소년은 이번이야말로 어른들에게 인정받을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어찌됐든 마냥 어린아이 취급만 받다가 처음으로 마을을 위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소년은 어른들을 조금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말썽쟁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한 명의 일꾼으로써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리 간단한 일이어도 꼼꼼하게 따져가며 일일히 확인했다. 양들이 도망가지 않는 지, 독성 있는 풀을 잘못 먹지 않을 지, 힘 센 수컷 양이 다른 양들 대신 연한 풀을 독차지 하지 않을 지, 병든 양이 없는 지 등등... 쉬는 날도 없었고, 밤에 잘때까지도 양들만 걱정하다 잠들기 일쑤였다. 이윽고 소년은 모든 양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줬고, 어느덧 양의 엉덩이만 봐도 이름을 알아맞힐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풀밭에 양들을 풀어놓고 감시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소년의 귀에 낮은 소리로 희미하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 소리였다. 당황한 소년은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들만 보일 뿐, 늑대같은 맹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찾다가 잘못들었나 싶어 도로 양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늑대 울음소리가 크고 확실하게 들려왔다. 

소년은 겁에 질렸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늑대가 근처에서 마을의 양들을 노리고 있다. 만일 늑대가 나타나서 양들을 모두 잡아먹는다면? 나는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에서 제일 쉬운 일도 못하고 매일 장난만 치는 쓸모 없는 녀석'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건 절대 안될 일이다. 그런데 늑대들이 몇 마리나 있을까? 늑대들은 혼자서는 잘 다니지 않으니까 두세 마리정도 왔을까? 아니, 양이 이렇게 많으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오지 않았을까? 왜 내가 늑대가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나 혼자 이 많은 양들을 지킬 수 있을까? 마을에서 별로 멀지 않으니까 소리지르면 마을 사람들이 도와줄러 올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생각을 다 하던 소년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을 쪽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들이 양떼를 잡아먹으려 한다!"

잠시 후에 마을 사람들이 온갖 무기들을 들고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어디?"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는 늑대는커녕 평화롭게 풀을 먹고 있는 양들만 보였다. 

"저기, 그러니까... 보진 못했는데 울음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왔어요. 분명 근처에 숨어서 양을 노리고 있다구요."

소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주변을 샅샅히 뒤졌다. 하지만 늑대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늑대는 없더구나. 이 주변 늑대가 숨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봤단다. 너 잘못들은 모양이구나."

늑대가 없다는 말을 듣고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신나서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어리둥절해져서 소년에게 웃는 이유를 물었다. 소년이 대답했다.

"늑대가 없으면 양은 무사한 거잖아요! 하하하하하하!"

어른들은 소년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갔다.

한 시간쯤 후, 소년의 귀에 다시 늑대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년의 예상대로 이번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최소한 대여섯 마리가 마치 합창을 하듯 시끄럽게 울부짖었다. 
큰 일이다. 늑대들이 순식간에 마을의 양들을 모두 해치울지도 모른다. 영리한 늑대들은 마을사람들을 피해서 잘 숨어있었고, 바보같은 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풀만 뜯고 있다. 양들을 모두 잡아먹힌다면 난 다시 마을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야 한다. 늑대에게 내가 잡아먹히는 것 보다 훨씬 더 끔직한 일이다. 터져오는 늑대 울음속에서 자꾸만 늑대들이 양을 잡아 고기를 물어뜯고 내장을 파헤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거의 패닉상태에 빠진 소년은 또다시 마을쪽에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또다시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엔 진짜였어요!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하지만 역시 어디에도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늑대가 없다는 말을 들은 소년은 전처럼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얘야, 이렇게 자꾸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 아녜요! 제가 똑똑히 들었단 말이에요! 하지만 양들은 무사해요, 세어봤는데 '양돌이'부터 '세미'까지 전부 다 있어요! 잘 된 일이에요!"

웃음을 겨우 참아낸 소년이 말했다. 어른들은 슬슬 화가 났지만 마을로 돌아갔다. 
또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달려간 어른들 중 한 사람이 사냥총을 장전하며 물었다.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거다, 이 놈. 늑대 어딨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년이 손가락을 들어 작은 언덕을 가리켰다.

"저..저기요! 저기 언덕 위에 있잖아요! 어서 쏴버려요 아저씨!"

마을 사람들은 소년이 파들파들 떨면서 가리키는 언덕을 쳐다봤다가 다시 일제히 소년을 쳐다봤다.

"왜..왜 그래요! 저기 집채만한 녀석이 있잖아요! 저 놈이 양들을 다 잡아먹기 전에 없애야 해요! 어서요!"

"얘야, 하지만 저긴..."

"도대체 뭣 때문에 망설여요! 빨리 저걸 잡아야 된다구요!"

어른들은 그저 소년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안그러면 우리 양 다 죽는다니까요! 나 말썽쟁이 되기 싫어요!"

소년은 혼자 어른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언덕을 다시 한번 돌아보더니 돌연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어른들은 쓰러진 소년 주변에서 한동안 자기들끼리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잠시 후 보안관이 소년을 업었고, 농부 한 명이 양들을 모아 마을 목장으로 데려갔다. 늙은 사냥꾼 한 명이 혹시나 해서 언덕쪽을 살펴봤지만 곧 빈 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어른들은 혀를 차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마을로 돌아갔다.
 
언덕 위에는 양들이 뜯다 남은 풀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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