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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사이다 <파이트 클럽> 리뷰 <스포o>
게시물ID : movie_403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별이되자★
추천 : 4
조회수 : 145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2/16 00: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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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영화리뷰 해보겠습니다.
 
 <파이트 클럽>을 감명깊게 봤는데요, 뭐 여러가지로 감정이입을 해서 봤기 때문에 이건 명작이야 라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분명 10대 시절 보았다면 스펙트럼이 짧아서 내용의 반절도 이해못했겠지만 말이죠.
 
 각설하고,
 
 이 영화의 궁극의 메시지는 <혁명>처럼 보이는 <혁명 아닌 혁명=테러리스트의 탄생> 뭐 이런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저편에 현대사회를 풍자한 블랙 코미디가... 쿨럭.
 
 파이트 클럽은 뭔가 삐뚤어지고 비틀린 사고방식을 가진 타일러 더든과 주먹다짐으로 친구가 된 주인공(에드워드 노튼 분)의 이야기 입니다.
 
 미국 소비문화에 관한 풍자도 있고, 점점 변질되어 가는 남성상에 대한 불안심리를 그리고 있다...라고 위키캐스트가 말하고 있군요.
 
 시종일관 프레임을 지배하는 잔혹성과 폭력성은 현재 세대가 이 시대가 갖고 있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는 것. 흠. <맞는 말인듯>
 
 
 이 영화가 어딘가 혁명을 빙자한 냄새를 풍기는 건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문화의 가장 하층계급민이 채무서가 가득 저장되어있는 금귱권 빌딩들을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연쇄적으로 폭발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무려 사이다를 1.5리터 째로 원샷한 그 짜릿한 한방. 사실 그 장면이 다시 보고 싶어서 자꾸만 이 영화를 한번 더 찾게 되더군요.
 
 머글인 저를 비롯한 순딩순딩한 사람들의 비틀린 욕망에다가 제대로 불을 지펴주는 영화랄까요.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사실 윤리적으로 100%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혁명의 명분이 되지 못한 테러가 됩니다. 구원의 메시아적 메시지는 더더욱 아닐테지요.
 
 하지만 그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고 나면 영화 속에서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심봉사가 눈을 떴다고나 할까요.
 
 우선 저는 소비문화에 쩔어 있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했습니다. 모두가 그렇겠지요. 집순이인 저에게 한가지 로망이 있다면 주인공처럼 집안에다
 
 이케아 가구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방불케하는 공간을 꾸미고 싶습니다. 직장상사에게 신나게 쪼달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저는
 
 그 가구들과 '안녕'을 자위할 겁니다. 뭐 그것이 잘못된 로망은 아니지만, 그것에 약물처럼 의존하는 것은 분명 틀린 행동입니다.
 
 하지만 소비문화의 광고주들은 의존하는 소비자들에게 인간적인 제재를 가하긴 커녕 더욱 더 부추기기만 하죠. 광고주들에게 소비자는
 
 돈주머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이때 쯤 타일러 더든을 만나게 됩니다. 소비문화 제도권 밖에서 주인공을 비웃는 그를 말이지요.
 
 
 여러모로 타일러 더든과 함께 하는 생활은 원시시대의 생활로 퇴보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다만 시대가 달라서 그런지 수렵이나 채집 이런게
 
 아니라, 원자재 값이 전혀 들지 않는 비누를 가공하는 방법으로 돈을 법니다. 원자재는 지방이기 때문에 그들은 미용클리닉 빌딩 뒤에
 
 버려진 지방을 줍고 다닙니다. 이 지방은 지방 흡입 수술을 받은 여인들의 것이지요;; 그 비누를 다시 미용 백화점에 되파는 식.
 
 이것이 이 영화의 블랙 코미디 입니다. 신박한 발상이긴하나, 저는 절대로 따라하고 싶지 않군요.
 
 
 소비문화에 쩔어있는 주인공은 [모임] 중독자이기도 합니다. 이건 좀 슬픈 이야기이지만, 주인공이 살아가는 인생의 바닥이 저랑
 
 다를 것이 없는터라 어쩔 수 없이 공감이 가는게 꼭 기분이 뭣같습니다. 온갖 질병과 싸우며 죽음을 앞둔 비극적인 사람들의 불치병 모임에
 
 참석하는 하는 까닭은 주인공이 불면증에 시달리기 때문이지요. 잠들지 못한다-라는 불면증은 현대인들의 고질병이기도 하지요.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서 늘 불행한 주인공. 매일 밤새워 TV나 봅니다.
 
 그러한 불행을 극복하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주인공은 자신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어 행복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쓰고나니 기분이 더 우울해지네요. 모두들 잠은 꼭 주무셔야 합니다.
 
 
 이러한 불행의 박자들이 스타카토로 치고 들어오며 주인공의 목을 틀어 쥡니다. 거의 질식할 정도이지요.
 
 하지만 타일러 더든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함을 가진 마초적인 남자입니다. 불면증이라는 정신적인 고통 보다
 
 차라리 육체적인 고통을 택하는 남자입니다.
 
 누가 그러던가요? 살아있다는 건 불행과 고통의 연속이라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타일러의 강함은, 왜인지 잔혹성과 폭력성을
 
 상징하는 시대의 그림자가 됩니다.
 
 저는 감독님을 비롯한 원작가 척 팔라닉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게 최선이냐고. 확실하냐고.
 
 폭력은 물론 테러는 더더욱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 정신 만큼은 파이트 클럽의 리더가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타일러 더든과 주인공의 주먹다짐은 어느새 그 구역의 유행처럼 번져나가 고작 주먹구구에 불과한 그들의 싸움을 스포츠로 만들어 놓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다만 비공식에다가 비밀의 회원냄새가 가득 풍기는 그런 룰을 가진 스포츠이지요.
 
 그 클럽의 회원이 되려면 룰을 지켜야 합니다. 첫번 규칙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둘째 규칙도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이제 파이트 클럽에서 싸우는 방법을 터득한 회원들은 테러리스트의 자질을 모두 갖추게 된 셈입니다. 회원들은 마지막에 빌딩을 폭발시키는 일에
 
 가담을 하지요. 모두 훌륭한 테러리스트 입니다. 죽음을 두려워 않는.
 
 
 약간의 증오는 글을 쓸 적에 좋은 기폭제가 된다는 말이 이 영화를 보면 너무나 잘 이해가 갑니다. 출판사에서 번번히 원고를 거절 당한 척 팔라닉은
 
 반항+증오+블랙유머를 적절히 조합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박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저는 <파이트 클럽>을 통해서 제 마음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살아있다는' 욕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비문화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그 어떤 것을요.  
 
 소비문화에 지친 여러분, 오늘 밤 <파이트 클럽> 한 편 때려보지 않겠습니까? ^^ (마침)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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