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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베에서 개고기 관련 글을 보고.
게시물ID : animal_1203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카라라
추천 : 6
조회수 : 81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3/13 01:39:38

문득 어릴 적 일이 생각나서 써요.
베오베에 있는 개고기 글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만
개고기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아빠 회사 기숙사에서
온가족이 같이 살았어요.
회사에는 아빠 연세의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저를 많이 귀여워해주셨어요.
어느날 그 중 한 아저씨가 저를 부르더니
작고 누렇고 까만 강아지를 보여주며
저한테 니가 이름도 지어주고 밥도 주고
잘 키워보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아저씨 아니 그새끼는
싸이코패스가 분명했어요.
키워서 잡아먹을 강아지를 데려와선
딸같은 애한테 돌보라고 주다니.

전 신이 났고 몇날며칠을 고민해서
강아지에게 멍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멍구는 회사 식당 옆에 집이 생겼고
밥도 주고 학교갔다 돌아오면 넓은 회사 부지 내
마당을 뛰어다니며 함께 놀았어요.

멍구는 정말 빨리 자랐어요. 작고 작았던 강아지가
어느새 네발로 서 있으면 머리가 내 허리에
닿을 만큼이요.
멍구가 커지고 나서 왠지 멍구와 전처럼 잘
놀지 못하게 되었고(이상하게 그때쯤 기억이
희미해요) 멍구가 목줄도 안한채 그 집채만한
몸집으로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서 날 쳐다보던게
생각나요.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ㅇㅇ야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라고 하시길래 처음엔 헉 엄마가 내 일기장을 봤나? 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그런데 엄마가 "아저씨들이... 복날이라고... 멍구를..." 이라고 말했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충격이었어요.
처음엔 아무말도 못하다가 회사 식당 옆에 커다란 칼과 도마가 놓여져 있는 걸 봤고 비명을 지르다가 동생과 함께 쓰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몇시간을 울었어요.

엄마는 처음에는 달래다가 나중에는 제가 너무 우니까 화를 내셨어요.

그리고 저는 아무도 없는 회사 식당에 들어가서
가스렌지에 엄청나게 큰 솥이 올려져 있는 걸 봤고
그걸 열어봤어요. 거무튀튀한 고기덩어리들이
들어있었어요.

그걸 모조리 싱크대에 부어버리고 싶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도 화가 나요.

왜 좀 더 멍구와 놀아주지 못했을까? 왜 나한테 처음 멍구를 데려다준 그 사이코패스 새끼가 나중에 내 얼굴을 보면서 씩 웃었을 때 한대 후려갈기지 못했을까?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던 내가 너무 미웠고
어른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동안 시달렸어요. 내가 죽으면 그들이 멍구를 죽여서 먹은걸 후회하겠지? 이런 생각들이요.

멍구를 죽여서 먹은 회사아저씨들 중에 분명 내 아버지도 있었을 것이 틀림없음에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동안 괴로워했고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저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취향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일 뿐,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진 적도 없고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물론 저는 아직도 멍구를 죽여서 먹은 그 아저씨들을 혐오해요. 그들이 키우던 개를 죽여서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개를 저에게 키우게 했고 그 개에게 제가 정을 듬뿍 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했기 때문이에요. (정말 미친 사람들 아닌가요...?)

아무튼... 그렇게 성인이 되고 이십대 초반 무렵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복날 점심시간,
사장님은 물건을 사러 저를 데리고 나갔다가
복날이니 특식을 해먹자며 시장에서 손질된 개고기를 사셨어요.
사장님은 좋은 분이었고,  주방 이모는 내가 개고기는 조리해본적이 없는데... 하고 걱정하시며 육개장 느낌이 나는 탕을 끓이셨어요.
내 몫의 개고기탕을 앞에 두고 물론 제일 먼저 멍구 생각이 났어요. 하지만 사장님께서 특별히 직원들을 생각해서 준비해주신 음식이고 내가 개고기 자체에 혐오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인생 첫 개고기를 맛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그 개고기탕에서 어릴 적 키우던 멍구 냄새가 났어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꾹 참고 국물을 한 입 떠먹었는데 멍구 냄새가 정말 생생하게 심하게 났어요. 결국 먹을 수 없었고 솔직하게 "어릴 때 키우던 개냄새가 난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주방 이모는 내가 개고기 조리를 처음해봐서 그렇다며 미안해하셨어요. 하지만 저를 제외하고 다른 분들은 모두 맛있게 드셨기 때문에 괜시리 제가 민감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 이후로 아직도 개고기는 안먹고 살아요.
왜 개고기를 먹지 않느냐? 라고 누가 물어보면
"처음 먹어본 개고기에서 어릴 때 키우던 개냄새가 나서 그 이후로 안먹게 되었다" 라고 대답하는데
열이면 열 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잘하는 집에서 먹으면 냄새 하나도 안나고 정말 맛있다"ㅎㅎ

그냥 제가 이 긴 글을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는요...
첫번째. 저에게 개고기라는 존재는 무조건 멍구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문득 멍구가 보고 싶은 마음에...
두번째. 개고기 먹고 안먹고 동물사랑 이런 거 다 떠나서 진짜 저런 싸이코패스같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거. 나한테 평생 멍구 트라우마를 만들어준 거지같은 어른들. 너무 어려서 그때는 그냥 아저씨들한테 인사도 안하고 대답도 안하는게 최선의 복수였던 거 같아요. 하지만 만일 지금 어디선가 나한테 멍구를 안겨주며 함박웃음 짓던 그 미친 새끼를 만난다면, 진심 뺨을 갈기며 침을 뱉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마치 어제처럼, 그리고 멍구를 떠올릴때마다 이 분노는 참 생생하기만 하네요. 제 나이가 벌써 서른인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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