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교과의 진화생물학 파트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적응vs진화, 어느 쪽에 해당할까? 하고 구분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꼭 나오던 거 같아요. 저는 6~7차 교육과정만 봤는데 요즘도 그러는 모양이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문제 그만 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오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해외 진화생물학 교과서의 내용을 가져와서 설명할게요.

An adaptation is a characteristic that enhances the survival or reproduction of organisms that bear it, relative to alternative character states (especially the ancestral condition in the population in which the adaptation evolved). 

- 적응adaptation이란 생물이 지닌 특성 중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특성을 뜻하며, 특히 이전 세대와 비교해 달라진 특성을 얘기할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Natural selection is the only mechanism known to cause the evolution of adaptations, so many biologists would simply define an adaptation as a characteristic that has evolved by natural selection.

여기까지만 읽어도 벌써 어라?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미가 하나가 아닌 둘로 서술됐으니까요. 

(동명사의 용법에 여러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저는 문법 용어에 약한지라 문법에 강하신 분들 댓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적응이란 

1)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용도나 환경에 적합한 특성

2) 용도나 환경에 적합하도록 특성을 변화시키는 과정

두 가지 의미로 다 쓰이는 단어에요. 다시 말하자면, '적응적 특징/형질' 또한 '적응'이며, '적응적 변화' 또한 '적응'입니다.

여름에 갈색 털이던 토끼가 겨울에 흰 털로 털갈이를 하는 특징은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적응이며, 그 털갈이라는 과정 또한 적응입니다.

출처 란에 링크한 질문글에 올라온 '선인장의 잎이 가시로 변한 것은 진화인가요 적응인가요'라는 질문을 봅시다. 

선인장 잎의 형태가 증산작용을 줄이기에 적합한 가시 형태라는 특징은 '적응'이라는 정의에 합당합니다. 

그러면 그건 적응이 맞는 겁니다.

깔끔하게 적응을 찍고 넘어가자니 '그럼 진화의 사례엔 해당이 안 된다는 건가?' 하는 찜찜함이 남으실 겁니다. 이렇게 찜찜함이 남는다는 것 자체가 현재 고등학교 생물 교육의 문제점이겠죠. 당연히 진화의 사례에도 해당이 됩니다. 저 문제에서 '적응'이란 '진화적 적응'입니다. 모든 생물학적 특징은 넓은 의미의 진화("세대 변화에 따라 생물 집단의 유전적 구성이 달라지는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 문제는 적응엔 해당이 되고 진화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걸 고르라는 문제가 아니라, 둘 중 더 직접적으로 연관된 걸 고르라는 문제인 건데, 수험생의 입장에선 항상 정답을 선택하고 오답을 제낄 땐 오답이 '틀린' 이유를 골라야 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적응과 진화를 마치 서로 다른 개념의 대결구도처럼 오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