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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게시물ID : freeboard_8108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hroo
추천 : 0
조회수 : 2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4/30 23:39:53
지난 주말 토요일, 일요일 연달아 이틀동안 아내가 다치고 아들이 아프고 하여 응급실에 두 번 방문(?) 했었습니다.
둘 다 별 문제 아니어서 약 먹고 조금 시간이 있으면 나을 일로 끝났는데..
몇 시간 동안 치료 순서 기다리고, 약기다리는 동안 앞으로 한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응급실이든 입원실이든 나 좀 제발 봐달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큰소리할 것이 아닌 경우도 많지요.
흔히 우리가 진상짓(...)이라고 말하는 행동들이요...

처음 그 아주머니의 괴성을 들었을 때는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진짜 아프다는 고통의 소리가 아니라 '동네사람들 제발 내 말좀 들어봐요. 나 아프다고'라고 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한 마디로 어색하고 억지로 짜내는 듯한 '괴성'이었습니다.

처음 그 아주머니는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멀쩡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중간 '어억~'하는 괴성을 질러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여기 병원이라고오어어어억~' 뭐 그런...
그래서 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진상이거나 아니면 가짜환자? 아니면 보험사기? 뭐 그런....
그런데 아주머니가 있는 응급실 입구를 거의 다 지나갈 때 즈음 아주머니 옆에서 쭈구리고 앉아있는 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숙녀분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0.5초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분 표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비탄'

접수도 하고 한 숨 돌린 아내도 제가 아주머니를 처음 볼 때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아주머니 왜 저럴까? 보험사기인가?
그리고 저는 그 동안 관찰했던 것을 토대로 추측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 생각이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저 아주머니 옆에 몇 명이 있는데 다들 표정이 진짜 고통스러운 표정이다.
아주머니 보면 정상이 아닌 상태가 맞긴하다.
그런데 나는 혹시 저 아주머니 자제분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옆에 있는 아가씨와 청년 보면 자제분 또래인데 서먹한 것을 보니 아주머니 친척은 아니고 자제분 친구분들 인 것 같고...
특히 남자분은 자전거 복장에 자전거 신발(그... 툭 튀어나온 것이 두 개 있어서 페달에 붙이는 신발..)을 신고 불편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
혹시 자제분이 자전거 타다가 갑자기 잘못된 것 아닌가 싶다.
몇 명 더 왔다갔다 했는데 다들 복장이 상복이 아닌걸로 봐서는 갑작스러운 사고인 것 같다.
물론 내 추측이니 그냥 진상 아주머니일 수도 있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하진 말자... 주절주절...'

몇 십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주머니의 절규, 괴성은 계속되었고 그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올 때 마다 다른 사람들이 비탄에 빠진 표정으로,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자전거 복장을 한 청년이 처치실로 가서 자전거 헬멧을 들고 나왔습니다.
혹시... 아주머니 자제분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내가 무거운 목소리로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당신 이야기가 맞네..."

그리고는 아주머니 일행분이 들어간 응급실 옆 커튼으로 가려진 문을 알려줬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모신 곳이더군요.

공기가 이렇게 무겁긴 처음이었습니다.
진료 기다리느라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그 무거운 공기에 짓눌려 그저 들리는 상황, 보이는 상황을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며 신경쓰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자전거 복장의 청년이 그 곳에서 손에 뭘 들고 나왔습니다.
무슨 천 같은 것이었고 화장실에서 빨아서 다시 들어가더군요.
아마 닦아주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상기된 얼굴이지만 애써 침착하려 애쓰는 40~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30대로 보이는 여인이 같이 왔는데 접수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망 환자 찾으러 왔는데요."
그리고 그 방에 들어갔고, 그 두 분의 목소리로 생각되는 오열이 문 밖으로 터져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그 아주머니를 처음 오해했던 것에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그 '괴성'은 사실 '곡소리'였던 것이지요.
자식 잃은 어머니의 곡소리... 그것이었습니다..

그 날이 일요일이었고 사실 공교롭게도 하루 전 토요일 응급실 행에서도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접수를 하고 있는데 119응급차 소리가 들렸고 제 뒤에 한 중년 여성이 접수 줄을 섰습니다.
접수대 옆 문이 열리고 파란 천으로 머리까지 덮힌 이동식 침상이 들어왔고 순간 잠깐 놀랬습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접수를 마쳤는데 중년 여성분이 접수대에 이야기 하시더군요.

"장례식장을 이용하고 싶은데요.."

이번 주 내내 집으로 들어갈 때 즈음이면, 잠든 아이를 볼 때면 그 두 죽음이 생각나곤 합니다.
자식잃은 사람을 막대하는 누군가가 떠올라서 분노에 차기도 했고요..
그 사람들... 그 감정을... 알기나 할까요...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한 주 였네요.
다시 한 번 우리 가족과 제가 아는 모든 분들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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