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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16) / 진정한 휴식을 일깨워준 돌로레스 공원
게시물ID : travel_273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48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3/14 04: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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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휴식을 일깨워준 돌로레스 공원
 

돌로레스 공원은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 이르렀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주변 도로는 이미 승용차들로 빼곡해서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다. 겨우 그것도 우연하게 공원 앞 고등학교 정문 쪽에 자리 한 칸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게 웬 횡재냐 하는 마음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그곳에 주차를 하고 공원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리자 여전히 더운 바람이 훅 달려들었다.
공원의 풍경을 매우 낯설었다. 소풍인가 하는 명화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공원 풍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이런 광경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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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야트막한 언덕에 잔디를 심어놓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마치 야구경기장의 외야 쪽 스탠드 같은 느낌도 들었다. 위쪽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간단한 놀이기구가 있기는 했으나 우리 식의 어린이들만을 위한 아기자기한 놀이기구가 아니고 어른들도 함께 모험심도 기르고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공원의 입구라 할 중심부 제일 위쪽에 동상이 하나 서 있는 것이 거의 설치물의 전부였다. 그런 곳을 제외하면 공원은 별 특징이 없는 그저 푸른 잔디뿐이었다. 동상의 주인은 멕시코 인이었다. 미국 서부에 멕시코 인이? 지금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인을 월담이나 하는 파렴치한으로 보던데.
동상 뒤편에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미국 서부가 서부 개척시대 이전에는 멕시코의 지배를 받았었다. 그때 이곳을 통치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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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제외하고는 공원이라기보다는 그저 너른 언덕배기 잔디밭 같은 곳이었다. 우리 식의 공원은 호수나 연못이 한가운데쯤 있고, 그 둘레로 작은 오솔길이 있게 마련이다. 어디 그 뿐이랴, 오솔길은 그저 걷기가 심심하므로 중간 중간에 지압 길도 있고, 오솔길 주변에는 아기자기하게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사계절 푸르름과 함께 화사한 꽃길을 연출한다. 오솔길 중간 중간에는 다정한 연인들이 잠시 쉬어가라는 긴 의자도 있고, 더러는 나이든 이들이 건강을 위해 간단한 운동을 하라는 시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의 공원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저 푸른 잔디뿐이었다. 그런데도 사람은 더 들어설 틈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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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또는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돗자리를 펴고 이야기를 하며 엎드려 있거나 누워있었다. 남자들은 모두가 웃옷을 훌렁 벗고 있었고, 여자들은 최대의 염치를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오일을 맨살에 바르며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빼곡해도 어디 하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하는 놀이는 나무 사이에 매달아놓은 줄을 타고 놀거나 원반을 던지고 받는 것과 같은 놀이가 거의 전부였다. 아들 녀석의 설명으로는 바깥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불법이란다. 우리는 의례히 바깥나들이를 하면 술은 거의 필수품이다. 우리는 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취중에 일어난 일은 별 문제를 삼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한 잔 마시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느냐는 것이 우리의 괴이쩍은 음주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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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접이식 텐트를 치고 그 아래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일광욕을 즐기러 왔으므로 강열한 햇살에 그대로 몸을 맡긴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차에 어디선가 공원 순찰차가 언덕을 올라 그들 곁으로 다가와서는 텐트를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강풍이 불편 그 텐트로 인해 주변의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관리인은 정중하게 철거를 요구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순간 그 다음 그들의 행동이 궁금했다. 우리 같으면,
, 갔다. 그냥 둬. 짜식들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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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대충 이렇게 하고는 버티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데 말이다. 미국은 법이 추상같은 곳이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법치국가였다. 그들은 관리인이 간 뒤로 말없이 모두 일어나 그늘막이 텐트를 철거하고 다시 돗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워갔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도 막상 그 장면을 보자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준법정신이고 질서의식일 것이다.
우리는 법이 있어도 안 지키면 그만이다. 안 지키고 안 걸리면 되는 사회이다. 그러니 눈치를 보게 되고 숨어서 하게 된다. 그러다 발각이 나면 일단 우기고 본다. 아니면 큰 목소리를 내거나. 그건 사회 지도층이라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다 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만난 적도 없고 그런 사람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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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입증하는 건 온전히 검사들의 몫이다. 목소리 큰 자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검사는 그 손을 치우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검사도 그들 모두에 대해 손을 치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손을 치워야 할 사람을 명확히 선별한다. 그러니 일단 숨기고 보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해서든지 권력을 잡거나 적어도 그 언저리 어디쯤에 있으려고 애쓴다. 법은 집행하는 자들이나 판단하는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때로 객관성을 잃고 권력의 치맛자락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므로 법이 어떻게 되어 있든 늘 이기려 애쓰는 것이다. 그 마저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자가 권력의 언저리에 서게 되면 최후의 경우 <인권>이라는 외피가 보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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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귀에 걸면 귀고리 같은 말. 우리는 별별 일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인권(人權)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반 명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인권은 엄밀히 말해 사권(私權)에 가깝다. 말하자면 우기기라는 말이다. 사권은 개인의 권리이다. 법치국가는 사권 또는 사익보다는 공익이 우선되어야 한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반대쪽 극점에서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 같다. 가끔 미국 경찰관들이 시민들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경우를 보도를 통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런 경우는 극단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은 그들의 법 집행은 엄정하다. 누구라도 법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영국의 수상이 회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과속을 했다고 교통위반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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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감히 과속 단속을 할 심장 강한 경찰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국의 수상에 비해 우리의 국회의원이 시쳇말로 더 끗발이 세서 그럴까? 몰염치가 통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그른 것은 그른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우리는 흔히 하는 말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건 선거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그 말은 선거 현수막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 무리에는 애완견들이 사람 수만큼 많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듯했다. 거리를 지날 때도 개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안고 다니고 업고 다니는 그런 장난감 같은 작은 개가 아니었다. 모두가 사냥개처럼 덩치가 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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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처음에는 그 옆을 지나기도 조심스러웠다. 이곳 사람들은 혼자 산책을 하면 심심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모두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다니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우리가 개를 애완견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장난감 가지고 놀듯 하거나 갓난아기 대하듯이 한다면 이들에게는 진정한 동반자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개들은 어디에서도 짖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들의 말로는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럴 듯한 설명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온화했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는 애완견 역시 사람을 닮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옆에서 애완견들도 주인을 따라 오롯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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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은 맑은 하늘에 태양이 뜨기만 하면 에너지를 충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강한 햇살이 부족한 멜라닌 보충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유색인종들은 강한 햇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드는 생각이 흑인 또는 유색인종과 백인은 그 출발이 정말 같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만약 같다면 언제부터 서로 피부색이 달라졌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가 그 출발이라고 하는데 흑인과 백인도 같은 조상이라면 말이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가 지구상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것이라면 그 인류가 북극 지역 가까이 이르러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피부색이 변했다는 말이 된다. 그럴까? 확신할 수 없는 일설은 흑인은 아프리카가 기원이고, 백인은 코카서스인종이 그 기원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북쪽 추운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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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들은 태생부터 백인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흑인과 백인은 인종이 서로 다른, 말하자면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가 온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셈이다. 정말 그럴까? 만약 흑인과 백인의 출생의 비밀이 서로 다르다면 우리 같은 황색 피부색 인종 역시 또 다른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가능할 텐데 그것은 또 어찌 되는가? 어떻든 이 부분은 나중에라도 자료를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의학적 소견에 의하면 일광욕은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한다. 즉 피부암이 그것인데 백인들이 피부암에 잘 걸린다는 것은 그 때문인 모양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과유불급!
오늘 공원에서 본 그들은 출생 기원이 어떻든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같이 따가운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우리와 사뭇 다른 여가 문화의 충격을 받았다.
그곳 언덕에서 우리도 그들처럼 잔디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파릇한 잔디에서 올라오는 푸른 기운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강한 햇살 아래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시원한 그늘 아래 온몸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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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습니다. 조회수가 100을 넘기면 글을 하나씩 올리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었지요.  지금은 베트남에 있는 탓에 조금 늦었습니다. 보시는 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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