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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24) / 몬테레이만의 바다로 나가다
게시물ID : travel_274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5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4/18 23: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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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몬테레이만의 바다로 나가다
 
오늘 볼 고래는 혹등고래ㅡ
그 크기가 상당한 고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몬테레이만의 한가운데에 이르러서도 고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가마우지만 일렁이는 물결을 타고 부지런히 자맥질을 하면서 제 뱃속을 채우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한 마리도 못 보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듯 바다사자가 가끔씩 우리 배 옆을 신나게 스쳐 지났다. 꿩 대신 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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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만의 맞은편에 다다를 때까지 바다는 그저 저 혼자 신이나 넘실대기만 할 뿐이었다.
무료하게 일렁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슬슬 배가 뒤틀려오는 듯 했다. 배에 오르기 전에 일찌감치 멀미를 예방하는 약을 처방했지만 그래도 배가 편치 않아 당황스러웠다. 뱃멀미에 관한 호된 기억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지구별 교장협의회에서 백령도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기로 계획이 되었었다. 협의회는 학교를 돌아가며 개최를 했기 때문에 일부러 백령도의 초등학교도 차례에 넣은 것이다. 이참에 회의를 빌미로 백령도를 한 번씩 다녀오자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백령도를 방문하기로 한 날, 날씨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으나 바람이 조금 센 듯했다.
 
                                        백령도 여객선.jpg
                                       <백령도 여객선, 인터넷 자료>
 
그러나 바다에 관해 별로 지식이 없었던 나는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 멀미약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그 이전 몇 차례 백령도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해무로 인해 여행이 무산되곤 했기 때문에 날씨가 좋기만을 빌며 집을 나선 것이다. 부두에 이르니 함께 가는 교장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마침내 배가 출항할 시간이 되었는데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모양이었다. 먼 바다에 안개가 끼어서 출항이 지연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늘도 또 허탕인가 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대기실에서 날이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승선을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우리는 차례로 배에 올랐다. 배의 객실은 이내 사람들로 가득했다. 배의 한가운데 자리는 백령도로 전입을 가는 해병대 신병들로 가득했다. 배는 출항했고 우리는 즐거웠다. 그런데 배가 얼마쯤 나아가자 물결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배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하늘이 보이다 바다 속이 보이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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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는 뱃전을 세차게 때렸고, 배 안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몸이 쏠렸다. 경험이 많은 이들은 일찌감치 배 앞바닥에 누워 뒹굴고 있었으나 의자에 앉아있던 우리들은 의자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해병대 산병들도 이런 바다가 처음인지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해병대의 늠름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침내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더니 결국 모두들 배 바닥을 겨우 기어 다니는 듯 했다. 백령도 사람들만은 그런 일에 익숙한 듯 저희들끼리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더 가다보니 나도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마침내 극점에 이른 기분이었다. 내가 아침에 뭘 먹었지? 나도 확인을 해봐야 하나?
더러 보이던 섬들이 시야에서 모두 사라질 쯤 배는 더욱 일렁였고, 나는 그 큰 배가 바다에서 토끼뜀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인내의 극점에 이르렀을 즈음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재 파고가 4m여서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함으로 연안부두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먼 바다로 나오니 파도가 더 거세 진 것이다. ‘, 살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결국 백령도 여행은 시늉만 하고 실패했다. 그런 좋지 않은 기억이 몬테레이 앞바다에서 되살아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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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우지와 바다사자 덕분에 그나마 무료함을 달래고 있던 중 관광객 한 사람이 바다 한 쪽을 가리키며 탄성을 질렀다. 모두들 그리로 눈길이 쏠리고 배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시선을 가리키는 곳으로 돌리자 먼 곳 바다 위에 분수처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다소 먼 탓에 고래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래는 보지 못했어도 난생 처음으로 고래 등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 만으로도 다소 흥분이 되었다. 그저 내가 내뱉은 말은,
, 우와! 우와! 우와!“
같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말 비슷한 탄성이 전부였다. 이러다 진짜 고래를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원.
다시 바다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잠잠해지고 잔잔한 파도로 바다 표면은 하얀 고기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배는 미끄러지듯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선장은 모니터로 바다 밑을 주시하며 고래가 몰려 있는 곳으로 갔으나 고래는 여전히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길 꺼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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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먼 곳에서 바다 위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배위의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그쪽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배가 크기 망정이지 조그만 배 같으면 기우뚱 중심을 잃을 것도 같았다. 그러다 문득 세월호가 생각이 났다. 수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가고 지난 두 해 동안 온갖 음모가 들끓었던 배다. 음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기되었다. 거기에 체제 불만세력들이 온갖 언어적 술책을 동원해서 기름을 부어댔다. 결국 무능력한 정부는 무너져 내렸다. 마침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기우뚱하며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는 새로운 정부는 들어서자 말자 마치 해방군처럼 종횡으로 나라를 헤집고 다녔다. 과거의 모든 것은 날 것으로 파헤쳐지고 새로운 잣대가 만들어졌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는 말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나라다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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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과거를 부정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도 역사이므로 서로 용서하자고 했다. 그는 앞선 정부 사람들에 의해 무려 27년이나 교도소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와신상담을 수도 없이 했을 그 시간에도 그는 태연했던 모양이다. 용서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얘들아, 고맙다.“
세월호로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그 말에 이 정부의 모든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도 열망하던 일들을 결국 우리가 너희들로 인해 큰 힘들이지 않고 해냈구나. 그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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