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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44) / 로키산을 오르다
게시물ID : travel_27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59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6/21 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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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로키산을 오르다
 
오늘 볼더의 기온은 섭씨 35.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이 대략 해발 1600미터. 중학교 시절 배웠던 높이에 기온이 비례한다는 말은 어떻게 되는 건지. 100미터에 0.6도가 떨어진다고 했는데. 이곳이 해발 1600미터면 해수면과 비교해서 10도 가까이가 올라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지금 해수면 쪽은 45도 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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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짧은 과학 지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다만 이곳이 산지이고 미국의 남쪽 바다와는 수만리도 더 떨어진 곳이라 바닷가의 습한 공기가 유입될 일은 없어보여서 건조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 듯하다. 그러나 기온이 그리도 높은 것은 아무래도 아리송할 뿐이다. 어떻든 그 더위를 식힐 겸(?)해서 우리는 오늘 로키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로키산 정상은 3600미터란다. 여기와 2000미터가 차이가 남으로 12도 정도가 낮을 것이다. 중학교 때 배운 과학 지식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말이다.
로키 산. Rocky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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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산을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평원을 달려야 한다. 평원의 끝 로키 산을 오르기 전 마지막 마을에 들러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동네였지만 로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쉼텨 구실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한 음식점 앞에 이르러 아들이 내게 묻는다.
아빠, 저 집 간판이 뭔지 알아?“
간판들은 모두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 중 한 음식점의 상호가 ‘oppa’였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오빠’.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야말로 우리말로 반갑게 맞는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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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여주인은 동양인이 들어오면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음식점을 둘러보며 앉을 자리를 찾았다. 그때 그 여주인이 묻는다. 우리의 흔한 음식점과 같이.
몇 분이세요?“
달랑 네 사람이 서 있으면 그걸 굳이 물어봐야할까? 이곳저곳 빈 자리도 상당한데. 미국의 식당들은 이 경우 그렇게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객 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자리를 권한 후 첫 마디는 대체로 음료수 드시겠습니까?”
와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이어서 메뉴판을 개인별로 올려준다. 그리고 음식을 모두 먹을 때까지 테이블 단위로 웨이터가 고정으로 서빙을 한다. 아마도 그런 것이 미국의 팁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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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이 곳은 미국 속의 아주 작은 한국이다. 반찬이 무한 리필되는 반면에 식사 중간에 끼어들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법은 없다. 그저 다 먹고 자리를 뜨기만을 기다렸다 정해진 요금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한 심사의 내면에는 내가 당신들을 언제 어디서 봤다고 하는 다분히 계산적인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각박해졌을까 싶은 생각이 순간 들었다. 모든 것이 한국식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식은 참으로 삭막하다. 다만 무한 리필로 반찬을 주문해도 말없이 더 내주는 인심만큼은 세계 최고일 듯싶다. 물론 계산값은 그런 것들이 이미 모두 포함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은 건 우리는 그 계산 값에 무한 리필 값뿐만 아니라 팁이며, 세금까지 고스란히 얹혀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그 동안 몇날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지금은 한국식이 오히려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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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은 산 이름 그대로 돌산이다. 로키산은 정상을 통과해서 산 너머로 2차선 길이 구불거리며 뚫려있었다. 아마도 150여 년 전 일확천금을 꿈꾸던 자들이 모진 날씨를 이겨내며 서부로 가기 위해 이 산을 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길은 정상 근처를 지나는데 아마도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 듯 했다. 산이 험한 탓에 길을 가팔랐고 눈 아래는 그야말로 천길 나락이어서 아슬아슬한 기분을 만끽하며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에 이르는 길 곳곳 전망이 좋은 곳은 전망대를 겸한 간이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은 멀리 로키 산의 만년설을 감상하고 있었다. 얼마간 오르다보니 중간쯤에는 제법 큰 쉼터가 있었는데 그곳은 만년설에 이르기 직전에 있었다. 로키 산을 오르는 도중 유일하게 그곳 쉼터에 화장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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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차를 세우고 그곳에 줄을 섰다. 그런데 그 줄이 남녀의 구분이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면사포 폭포에서 본 그것과 똑 같았다. 미국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보다는 남녀 간의 공평함이 우선인 모양이었다. 함께 섞여서 줄을 서니 아니도 불평을 할 일이 없다. 우리는 야외 행사를 할 경우 설치되는 임시 화장실에도 남녀가 언제나 유별했다. 수년전부터는 여자 화장실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해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는 여자 화장실 수를 대폭 늘렸다. 그러나 미국처럼 발상의 전환을 하면 그런 고려는 별 의미가 없게 될 것이고 예산의 절감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수년전 서유럽을 여행할 때 알프스의 만년설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도 한 여름이었다. 차창 밖은 더위로 이글거리는데 알프스의 산머리에는 눈이 가득해서 참으로 신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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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년설을 책을 통해서 접했을 뿐 실제로 멀리서나마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다가 몽블랑 산 정상의 설경을 감상하기 위해 맞은편 산으로 케이블 카를 타고 올랐을 때 운 좋게도 만년설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다. 그때 우리가 만져본 만년설은 사실 만년설이라 이름 하기도 부끄러운 정도였다. 그저 응달진 산비탈에 눈이 텃밭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올려다보는 로키 산의 만년설은 그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그것과는 규모가 다르다. 그때는 만년설을 지나쳤다면 지금은 그 만년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오르는 길은 온통 침엽수림이거나 키가 10센티미터도 안 될 것 같은 나지막한 풀 또는 나무들로 빼곡했다. 처음엔 돌산이니 나무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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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를 올라가니 이곳이 툰드라 지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이 역시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바로 온대와 한 대 사이에 끼인 띠 같은 지역, 그 툰드라 지역이란다.
한 대 지방의 초입이므로 식물은 침엽수림이거나 아니면 온통 바닥에 잔뜩 붙어 있는 풀들만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그저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것이고 실제로 툰드라 지역을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오르고 있는 지역이 그렇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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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은 온통 침엽수림과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처럼 푸른빛만 가득 깔려있는 경사가 날카로운 산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치악산이나 월악산과 같은 악산임이 분명했다. 침엽수 아래 푸른빛 풀들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언뜻 산이 온통 헐벗은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 산머리 이곳저곳 만년설이 잔설로 남아있었다. 산허리를 돌아들 때마다 만년설이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는 만년설이 녹아내린 듯 산허리를 타고 가파르게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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