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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미국을 엿보다(52) / 시민의식 : ③ 도시는 묵언수행 중
게시물ID : travel_27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2막인생
추천 : 0
조회수 : 5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9/07/12 18: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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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식 : 도시는 묵언수행 중

볼더 사람들은 늘 느리게 살았다. 느림으로 부딪힘이 적었다. 어쩌다 부딪힘이 발생하면 우리처럼 핏발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안함을 나타낸다.
“I’m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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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간단한 말로 양해를 구하거나 상대편을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짓는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그건 우리 속담이다그런 우리 속담이 먼 곳에서 제구실을 하는 것을 보다니 뜨악하다. 서로 부딪치면 인상부터 쓰고 보는 것이 우리네 일상사가 부끄럽다. 그런 눈으로 볼더를 보면 그야말로 이상하고도 신기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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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느리게 생활함으로 시간을 보챌 필요가 없다서두를 일이 없으므로 큰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 큰소리가 없으므로 조용하다. 도시가 조용하다. 가끔씩 페트롤 카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도시의 정적을 깨는 유일한 소리일 정도였다. 그것에 더 보탠다면 도로 위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이거나
사실 조용함은 타인에 배려다.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울면 아이들을 잘 훈육하지 못한 그의 부모에게 측은지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가정교육을 소홀히 함은 그 부모가 스스로 교양 없음을 실토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 사회생활에서 배려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최소한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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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비친 볼더는 지금 분명 묵언 수행 중인 도시 같았다.
공원에 가면 곳곳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햇볕을 즐기며 음식을 나누어먹기도 하고 놀이를 하기도 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런데 그들의 놀이라는 것도 대체로 정적인 것들이다. 부모는 두런두런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들어 있고 아이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를 지르거나 심한 장난으로 난장판을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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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보면 놀이가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다. 우리는 늘 놀이라는 것은 역동적이지 않은가. 어른들이 조용함으로 아이들도 조용하다. 볼더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어른들의 묵언수행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듯 했다.
볼더 계곡에는 늘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벗어젖힌 싱그러운 젊음이 계곡에 가득했다. 젊은이들이 여름을 식히며 하는 놀이는 대부분 일광욕을 즐기거나 모험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튜브나 카약으로 급류타기를 즐기는 정도였다. 아니면 풀밭에서 원반던지기를 하거나 줄타기 놀이 또는 구멍에 모래주머니 던져 넣기 같은 것 정도였다. 어떤 놀이를 하더라도 누구도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젊은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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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타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놀이와 사뭇 달랐다. 우리는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다. 그래선지 놀이도 격렬해야 성에 찬다. 모래판에서 축구를 즐기기도 하고, 친구를 살짝 괴롭기도 하고 게임도 보다 과격한 것을 즐긴다. 그러나 볼더에서 본 젊은이들의 놀이는 대체로 정적이었다. 그저 그들의 주된 놀이는 일광욕인 듯 했다. 그러다가 혹 갈증이 생기면 음료수로 목을 축인다. 우리에겐 흔한 술이 볼더에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깥에서 술을 마시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까닭이다. 외국인들이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팝에 들어가면 여권을 제시해야 하는 곳이다 그게 번거로워 나도 혼자 선술집을 가본 적이 없다. 더구나 일반 마트에서는 아예 술을 팔지 않는다. 술만 전문으로 파는 마트가 별도로 있다. 그곳엔 세상의 모든 술이 다 있는 듯 했다. 저절로 청소년들이 술을 가까이할 수 없도록 사회가 시스템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술로 인해 사회가 시끄러울 수가 없다.
볼더의 젊은이들은 그저 조용했다. 그렇다고 자기표현을 절제하고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소리는 배려를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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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더의 중심가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특히 주말이면 더욱 그랬다. 중심가는 네 블록으로 이어지는데 블록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일찌감치 자동차 통행이 금지된 보행자들만의 것이었다. 중간 중간에는 잠시 앉아서 쉴 곳도 만들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거리의 악사들이 멋진 선율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거리는 조용했다. 말소리는 그저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정도여서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는 일은 없었다. 서로 마주치면 환한 미소로 서로를 배려했다. 아마도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소리만 없다면 거리는 정적으로 가득할 뻔했겠다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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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에는 도로를 내다보는 자리에 맥주 한 잔을 놓고 하염없이 거리의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의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곳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도무지 심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도시가 무언수행중이다. 이를 깨는 것은 몰염치이고 가정교육의 방치로 치부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겐 불가능할까? 내가 사는 세상은 북적거리고 흥청거리고 귀가 따갑고 빵빵거리고 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내가 사는 세상과 이곳 볼더와의 차이는 꼭 하나, 배려하는 마음의 유무 또는 정도 차이인 것 같았다.
볼더는 그야말로 묵언 수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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