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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살에 50번째 나라에서 쓴 글
게시물ID : travel_277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슐라르(가입:2020-04-25 방문:17)
추천 : 5
조회수 : 153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20/04/25 17: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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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홀로 50번째 나라 - 중간정리



  홀로 첫 여행을 떠난 베트남, 도착하자마자 교통사고가 났다. 오토바이와 부딪혀 피가 나는 다리와 찢어진 가방을 여민 후 주저앉아 울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했을 때 나는 내가 50번째 나라는커녕 그 여행에서 몸성히 돌아오리란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실수투성이었다. 출발 전, 비행기표를 어떻게 예매하는지도 몰라 바보같이 두 장이나 사버려 남은 빈자리에 오기가 발동, 기어이 가방을 놓고 갔으며 현지어는 물론 영어로도 소통불가. 로밍은커녕 sim카드에 대한 개념도 없어 결국 하노이에 있는 한국 찜질방에 가서 길을 묻고 가이드북을 얻었다. 얼마나 경황이 없어 보였으면 우연히 만난 한국분이 괜찮으니 자기네 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을까.



  결국 택시를 타고 밤늦게 도착한 누추한 호스텔에서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 잘 곳은 있구나. 내일까지는 살았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뭘 할 수 있는지,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언어 다른 외딴곳에 나는 철저히 던져졌고 그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또 왜 와이파이는 느린 건지. 초조했다. 잠도 오지 않아 맥주라도 먹어야겠다고, 내가 그래도 다 큰 성인인데 맥주는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암시로 벌벌 떠는 마음을 다독이며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로 나갔다. 가까운 거리의 슈퍼였지만 바보같이 그 사이에 방에 도둑이 들지 않을까, 가다가 도둑맞지 않을까 등 온갖 생각을 하며 멍청하게 또 이것저것 단단히 경계하며 나갔다. 하지만 슈퍼로 가는 길, 작은 앉은뱅이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먹고 있는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에 유혹당해 그대로 나는 주저앉아 엉성한 손짓 발짓으로 저것들을 달라고 표현했고 홀린 듯 그것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을 때, 그때쯤인 것 같다. 여행이란 것이 시작되었던 게.



  그렇게 나는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많이 다니니 삶이 송두리 째 낭만 덩어리일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일상은 정말 팍팍하기 그지없었다. 투잡은 기본, 학기 중에 노가다와 아르바이트를 놓아본 적 없다. 여행 자금 마련을 위해 먹는 것, 옷을 사는 것과 같은 꼭 필요한 소비에도 벌벌 떨었으며 편리와 보상, 사치에 관련한 모든 소비를 무작정 줄이며 돈을 아꼈다. 동시에 학생이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에서 먹고 자며 치열하게 공부했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벅찼다. 지하철 한 정거장 길이의 졸음을 참지 못해 역을 3번이나 놓친 적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벅찬 일상을 버틸 수 있게 만든 강한 원동력이나 거창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의 목적이 여행은 맞았지만 그것이 이유라기에는 무척 애매했다. 떠나서 미친 듯이 놀아야지보단 싱겁게도 나는 그저 저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싶다는 막연한 호기심 하나뿐이었다. 관련한 꿈도 없고 방향도 없었다. 여행이 나에게 뭘 해주리라는 기대는 더욱 없었다. 그저 그것들이 진짜 존재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으며 하나를 보니 둘을 보고 싶었고 다음 셋, 여섯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았고 그렇게 나는 여행을 다녔다. 좋은 여행이든 나쁜 여행이든, 타이트한 여행이든 널널한 여행이든 구분 짓지 않고 다녔다. 운 좋게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이 변화했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다. 분명 고추장을 싸가지고 다니던 인간은 전갈, 악어, 캥거루, 낙타 등의 음식을 가리지 않게 되었고 가방 때문에 문 밖에 나서던 것을 고민하던 인간은 자신의 물건을 훔치려고 했던 소매치기를 붙잡고 그저 가려고 한 장소의 길을 묻고 놓아주기도, 이상한 곳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과감히 뛰어내리기도, 하늘로 총을 쏴대는 중동 사람들 사이에서 탄피 찾기 바쁜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바뀐 모습들이 아니라 사실 발견이었다. 다양한 상황이었지만 모든 것은 나였다. 떠나기 전엔 상상도 못 할 생경한 모습들이었지만 실제로 모든 것은 나였다.



  여행을 선택한 젊은 나의 결정은 예상 그대로 내 삶을 조여 온다. 다르면 도태된다고 생각하는 나라, 젊음과 희생이 마치 같은 뜻인 것 마냥 사용하는 나라에서 나는 여전히 살고 있으며 학자금 상환 대신 여행을 선택했기에 시쳇말로 졸업 후 빚더미에 나앉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선택을 후회한 적 없다. 여행을 가도 세월은 가고 여행을 가지 않아도 세월은 간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분명히 여행을 가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다녀봐서 아는 말인데 말로 하는 여행보다 발로 하는 여행이 백배 낫다. 여행이 단 하나의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여행 포함 대부분의 여행 역시 사서 하는 고생이 다반사일 것이며 엉성하고 지질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 모르는 20대의 시기에 여행은 굉장히 매력적인 보기항목 중 하나이며 설사 그것이 틀렸더라도 틀릴만한 가치가 있는 오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일단 가보시라.



  여행 총-정리는 아니다. 아직 내 삶에 여행이 많이 남아있길 바란다. 그리고 분명 그럴 것이다. 50개의 나라, 누군가에게는 많은 국가이고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하며 누군가는 코웃음 칠 경험들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 나라의 숫자, SNS 이전에 그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리얼한 세상을 경험했고 그걸 미친 듯이 즐겼다. 죽어도 좋은 건 절대 아니었지만 만약 죽는다면 이런 곳에서 삶을 끝내도 근사하겠다고 생각할 만한 곳들에서 지극하게 행복했다. 좋을까 싶은건 좋았고 괜찮을까 싶은 것도 괜찮았다.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젊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본 지구의 부분들은 정말 끝-내주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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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왜 이런글을 썼는지는 모르겠다만(아마 술먹고...)
오랜만에 글을 다시보니 옛날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용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든....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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