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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미우나고우나 한이불 덮고 자야 한다는 말
게시물ID : wedlock_120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스카라라
추천 : 51
조회수 : 12337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8/04/11 14: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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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희 신랑이 지나가듯이 몇번 한 말인데요
자기 부모님의 한평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대요
시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세요(80대)
아직 두분 다 정정하신데 가끔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시고
아버님 삐지시고 어머님 잔소리하시고
자식들한테 두분이 서로 흉도 보시고
그러시면서도 어쨌든 항상 한이불 덮고 주무시고
금술이 막 좋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평생 서로 등맞대고 사시는 거
그게 참 좋아보였대요 나이가 들수록 저런 게 부부지...싶고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네요

저도 뭐 별생각없이 응응 하고 살았죠
그런데 요새는 문득문득
저 말이 자주 떠오르네요
부부는 미우나고우나 한이불 덮고 자야한다는 거
우리 부모님도 그랬으면 지금 뭔가 달랐을까? 싶은...
친정엄마아빠 사이가 안좋아요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는 중이고요
두분이 별거아닌 별거 하신지 십년 가까이 되어가요
근데 제 입장에서 보자면...
두분이 떨어져살기 시작하면서 그모든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요

부모님은 좋은분들이세요
적어도 자식들과 남들에게는요
다만 서로에게 아니었을 뿐이지...

아빠는 그시절 흔한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한 남편
엄마도 그시절 흔한 순종적인 아내
아빠는 돈벌고 엄마는 집안일하며 아이키우는 게
너무 당연한 걸로 시작된 결혼생활
친가가 워낙 남아선호사상도 심하고 가부장적이고...
엄마는 시집살이도 많이 겪었고
아빠는 손에 물한방울 묻혀본적 없는 사람이고

엄마가 해준 얘기중 기억나는 일화가
저 가졌을때 입덧이 너무 심해 십키로씩 빠지고 물도 제대로 못넘기는데
명절이라고 시골에 내려갔대요
그시절 며느리가 명절에 일도 못하고 누워만 있을 정도면 진짜...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지금같으면 입원했지
근데도 엄마가 누워있는 방에 파랑 도마랑 칼을 넣어주시더래요 시어미니가 이거라도 썰으라고...
근데 엄마가 도저히 칼을 들 힘이 없더래요
그래서 주저앉아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그걸 보고 시어머니가 유난이라고 야단친 이야기
뭐...그러고 태어난게 딸인 저라서 아들낳은 동서네하고 차별도 서럽게 당했다는 건 너무 뻔한 이야기...

아빠는...뭐...
엄마를 아끼긴 했는데(말로만ㅋ)
엄마가 입덧으로 웩웩할때 옆에서 아이고...아이고...안타까워만 하시고
밥은 물론 설거지한번 해본적 없으시대요
하루는 엄마가 도저히 밥할 기운이 없어서 아빠 아침에 출근하시는데
라면을 끓여드렸대요
아빠는 별말없이 라면을 후루룩 잡수시고 출근
근데 엄마가 일어나서 보니 다먹은 라면 그릇이랑 수저가 상에 고대로 있더라는...ㅋㅋ
설거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싱크대에 넣어주지도 않고 고대로 수저만 내려놓고 출근한게 그렇게 야속하더랍니다
이 얘기를 삼십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하십니다..

잠깐 이야기가 딴데로 샜네요...
어쨌든...어쩌면 그시절 우리네 엄마들이 흔히 그랬듯
저희 엄마도 본인의 설움과 본인의 희생이 당연한 줄 알고 사셨고...
그래서 부부사이도 좋았고 고부사이도 나쁘지 않았고
그리고 엄마 당신이 그랬듯 딸인 저에게도 그것을 당연하게 적용...
저에게 아빠와 남동생은
밥을 차려줘야 하는 존재...
빨래를 널줄 모르는 존재...청소도 할줄 모르는 존재...
아무튼...챙겨줘야 되는 귀찮은 존재들이 되었죠
아 물론 가족이니 사랑하긴 합니다ㅋ

어쩌면...이렇게 쭉 아빠는 바깥일 엄마는 집안일
이런 구조로 풍파없이 평탄하게 삶이 흘러가고
엄마도 한평생 집에서 내조하며 온실 속 화초같이 지내셨다면
큰딸 시집보내고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어서 서러웠던 것들 추억같이 꺼내보며
같이 나이먹은 남편한테 큰소리좀 치고...
그러고 아직 오손도손 살고 있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흔히 있는 이야기죠
아빠가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 폭삭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어렵게 마련한 집도 팔고 월세방으로 내몰린 가족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장일부터 시작한 어머니...

아빠가 빚쟁이들에게 쫓겨다닐동안
엄마는 정말 닥치는대로 일을 하셨어요
그러다가 어찌어찌 하는 일이 잘되서...천만다행이죠
조금씩 조금씩 빚도 갚고 집도 조금씩 넓혀가고
어찌어찌 저와 동생 학업도 마치고...
그럴동안 어느새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은 엄마였어요
아빠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지만 금전적인 보탬은 썩 되지 못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실질적인 가장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안일은 여자의 몫인 기가 막힌 현실.
엄마는 사회생활을 하며 집안일까지 다해내는 슈퍼우먼이었고
아빠는 나가는 날보다 집에 계신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빨래 한번 돌리신 적 없으셨죠.

저 역시 어리석었죠.
엄마가 집안일도 바깥일도 다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나는 딸이니까 엄마를 도와야해. 라는 마음으로 집안일을 도왔고
아빠와 남동생이 손도 까딱 안하는건 그저 그러려니 했어요.
엄마도 저도 아빠도 남동생도 다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고
누구하나 잘못됐다고 생각 못했던 당시 저희집 풍경이었어요.

여기까지 쓰고 보니 아빠가 무척 나쁜 사람 같은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빠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자식들도 아꼈거든요.
다만 집안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뿐이지.
본인의 업은 돈을 많이 벌어 집안을 일으키는 것 뿐이다! 라고 생각하셨을 뿐이지.
근데 돈을 못버셨을 뿐이지...(안습)
일생 여자문제, 술문제, 도박문제 한번 일으키신 적 없고
본인의 행복을 위해 가족을 등한시한 적도 없으세요.
돈많이 벌어 가족들 풍족하게 해주는게 일생의 목표인 분이셨고...
단한번도 자식들에게 금전적으로 바라는 것 없으셨고
지금도 하나라도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신 분...
근데 돈을 못버셨을 뿐...(이쯤되니 눙무리ㅠㅠ)

아무튼...드디어 이 글을 쓰게 된...
애초의 본론까지 왔네요...;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가다보니...너무 길어진 감이 있지만...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그냥 어떤 애기엄마의 넋두리라고 생각해주세요...^^;
각설하고...
십여년전...제가 이십대 중반일 때...
아빠가 집을 나가시게 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고...돈을 벌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신 거죠
그때까지도 엄마아빠 사이는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어요
엄마는 여전히 가장으로서 돈벌고 집안살림하고 아빠도 돈벌기위해 노력하고
한번씩 싸우시기도 하셨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엄마가 말없이 밥상을 차리고 아빠는 말없이 밥그릇을 비우시고
다시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가는 일상
엄마는 단한번도 자식들에게 아빠 원망을 하신 적도 없어요

아빠가 지방으로 내려가신 후...엄마와 저의 단촐한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남동생은 이미 친구랑 사네 여자랑 동거하네 어쩌네 하며 집에는 어쩌다 한달에 한번? 정도 오는 손님된지 오래였구요
그렇게 엄마와 저 둘이서 생활한지 어느정도 됐을까...
저는...어느샌가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
아니...위화감이라기 보다는...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묘한 편안함...? 묘한...만족감...?
삶의 질이 한단계 올라간 것 같은...정신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상태...
그렇습니다...
집에 남자들이 완전히 없어지니...세상 편할수가 없는 거임...ㅠㅠ
(아빠 미안...ㅋㅋ)

집에 아빠가 계실 때는...
거실 소파는 항상 아빠 차지...
주말에도 때되면 엄마든 나든 밥상 차려내야 함...설거지도 우리 몫...
빨래도 두배...청소도 두배...
밤늦게까지 아빠가 안주무시고 거실에서 크흠크흠 헛기침소리가 들려오면...
새벽에 라면 끓여먹고 싶어도 눈치보여 못나감...
ㅋㅋ쓰고 보니 되게 별거 없지만...
이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이 시작된 겁니다...
제가 이정도인데 엄마는 어땠을까요

직장에서 늦게 끝나도 집에서 저녁차려달라고 기다리는 남편 없어
드라마 못보게 소파에서 리모콘 차지하고 앉아있는 남편 없어
엄마는 점점...친구분들 직장동료분들과 술자리가 잦아졌고ㅋㅋ
금요일 밤이면 엄마도 저도 각자의 술자리에서 새벽까지 퍼마시고
토요일 점심까지 곯아떨어져있다가...
거실에서 만나 둘이 짬뽕시켜먹고 다시 오후 내내 자는...
눈치주는 사람도 신경쓰일 사람도 없는 진정한 주말의 휴식을 즐겼죠ㅋ

애초에 엄마랑 저는 서로 부딪힐 일도 없고
배고프면 배고픈 사람이 밥차려먹고
빨래는 눈에 띄는 사람이 먼저 함
엄마는 워낙 깔끔하신 성격이라 청소를 열심히 하시는 편인데
어지르는 인간들(남자들ㅋㅋ)이 없으니 너무 좋다며 대만족-.-

그렇게...
두여자는...이십몇년 만에 처음맛보는 자유(?)에 심취해
점점 남편&아빠를 등한시하게 되고...
처음엔 일이주에 한번은 꼭 아빠가 계시는 곳으로 주말마다 내려가
반찬도 해가고 빨래감도 갖고오고(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를 안하심-.-;)
얼굴보고 그랬는데...
점점 귀찮아짐
한달에 한번 정도로 뜸해지다가
정신차려보니...어느새 안내려감
그냥 아빠가 어쩌다 한번 올라오심ㅋ
(쓰다보니 그시절의 아빠에게 너무 죄송...아빠 미안-.-)
 
그렇게 벌써 십여년째......
저는 그사이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고
결과적으로 아빠는 아직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고
지방에 자리를 잡고 겨우 안정권에 들어선 사업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

아빠가 나가계신 초반 5년 정도는
엄마도 저도 각자의 유흥을 원없이 즐긴(?) 유일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참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챙겨줘야 되는 사람 없다는 거,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살 수 있다는 거
너무 자유롭고 좋더라구요ㅠ
진짜...엄마랑 완전 룸메이트처럼 지냄
어떤 때는 각자 생일도 안챙기고 축하해~ 이러고 지나감
각자의 친구들이랑 생일잔치하느라ㅋㅋㅋㅋ
(결혼하고 정신차려서...엄마생신때마다 생신상 거하게 차려드립니당-.-;)

그냥...요즘 엄마 말을 들어보면 그래요
직장에서 인정받고 다니지, 익맥수완 좋아서 친구도 많지, 때되면 해외여행 국내여행 친구들하고 실컷 다니지
뭐하러 아빠랑 다시 합치냐구요 뭐하러 다시 수발들고 사냐고
반면...아빠는 세상 억울하고 분통해하십니다(...)
본인은 한평생 엄마만 바라보고 가정을 위해 헌신해왔는데
이제 겨우 좀 먹고 살만해졌으니 다시 엄마랑 같이 살면서
엄마가 직장도 그만두고 아빠한테 생활비 받아쓰면서
일하느라 바쁜 아빠도 좀 챙기고 옆에서 힘이 되어줬음 좋겠다고...

저는 뭐...중간에서 황희정승 놀이 하고 있죠
엄마말을 듣고는 허허 엄마 말이 맞네
아빠 하소연 듣고는 허허 아빠맘도 이해하네
근데 진짜 솔직히 심정적으로는 엄마편이긴 합니다-.-;
제가 엄마라도 아빠랑 다시 안살아요ㅋㅋㅋㅋ
(아빠 미안ㅠ)

오늘도 다다음주에 회사언니들이랑 회사에서 보내주는 어디 해외여행 간다고 들떠있는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일 그때 아빠가 돈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엄마가 아빠없는 자유(?)를 계속 모르고 살았더라면...
그냥 계속 당연한줄 알고 살았겠죠
불편한지 모르고...힘든지 모르고...부당한지? 모르고...ㅎㅎ
그냥 계속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이 한이불 덮고 살았더라면...
그랬다면...달랐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랬다한들 그게 과연 엄마에게 좋은 일이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이글에 다 적을 수 없는 서로의 오해와 원망과 갈등이 많아요
경제적인 문제는 말할것도 없고요ㅋ
자식들이 장성하도록 부부로 지낸 두사람의 이야기가
어찌 몇가지 팩트로 다 정리가 되겠나요
그냥...요새 자꾸 마음에 짐처럼 걸리는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들을
어디 한풀이 하듯이 적어내려가 봤어요ㅋ

만일 엄마가 이대로 계속 이혼을 강행하신다면...
저는 아빠에겐 너무 죄송하지만 말리지 못할 것 같아요
아빠도 돈벌어보겠다고 가족들도 없는 타지에서 홀로
얼마나 외로이 고생하셨을까요.
자유와 방종에 취해 아빠 챙길 생각도 한번 못했던 못난 딸자식이었죠ㅠ
그냥...이제부터라도 제가 살뜰히 아빠 좀 돌보고 챙기고 하려고요

아빠는 여전히 속상해하시고 마음아파 하세요...
그런 아빠한테 제가 독한맘 먹고 한마디 했었네요
젊어서 엄마 고생 실컷 시켰으니 이제는 그냥 재밌게 혼자살게 놔두시라고...
아빠는 그저 가족들 다시 뭉쳐 살 날만 보고 달려왔다 한탄하시며
인생 실패했다 하시죠...
아빠도 그냥...엄마없이 본인의 행복을 찾으시길 바라는건 너무 제 욕심일까요ㅋ

긴글 마무리하려니 정리가 안되네요ㅋ
주절주절...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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