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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께 오늘 보낸 넋두리
게시물ID : wedlock_129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Green-Tea
추천 : 7
조회수 : 328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9/04/05 08: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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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글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계속 일을 하는 상황이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지내는 상황에 제대로 제 생각이 글로써 전해질 수 있는 지도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제가 스스로 제 화병에 걸릴 것 같아서 최대한 간략하게, 짧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같이 보시라고 이리 글을 보냅니다. 물론 이 글을 정리해서 보낸 들, 형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점은 감안하지만, 3자인 형수님인 입장에서는 어떤 상황인지는 최소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로 알리고자 하는 부분은, 세상에는 항상 무조건 적인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차라리 남으로 지내는 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은 가족이 존재), 형의 강압적인 성격, 그리고 형이 생각하는 자격지심 따윈 전혀 존재하지 않고, 저는 제 스스로 느끼는 본 분을 다 할 테니 제발 제게 터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 등이 있겠네요.

 

참고로, 저는 제 가족이라고 무조건 적으로 팔이 안으로 굽거나, 맘충 파파충 따위가 될 생각은 일체 없다는 입장입니다. 가족이라도 잘못한 부분은 반드시 가려야 하며,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되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형, 어머니와 제 관계는 시작부터 아주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형수님도 저희 형과 결혼을 하셨고, 좋든 싫든 저희 어머니와 저와 이어진 상황이시기에, 제가 느끼는 저희 가족의 치부는 자세히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스스로 아니라고 느끼는 것을 앞에서 맞습니다 하고 뒤에서 다르게 할 융통성 따위는 제게 없습니다. 제 어머니는, 평생을 아버지 뒷바라지, 저희 형제 뒷바라지를 하고 살아 오셨고, 남존여비사상이 강하게 박히신 분입니다. 14년이 되는 기나긴 유학을 보내준 부분, 고생하신 점, 모든 부분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제가 필요한 일이 생길 경우 아들로써의 도리와 의무는 당연하게 요구하지 않으셔도 자식 된 도리로써 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기본 인품이겠죠.

 

그 와 별개로, 형과의 관계는 어렸을 적부터 원만하게 지내온 적이 없는 점.

본인 친구들과 놀 때에 단 한번 챙겨준 적 없던 점, 형으로써 동생을 감싸준 일이 없는 점 (학교 내/). 어렸을 적, 국민학교 시절, 벽에 종이를 들게 하고 비비탄 총으로 쏜 적도 있고, 괴롭힘에 지쳐서 당시 제가 식칼을 들고 잠긴 방문에 찍은 정도로 동생으로써 제대로 취급 못 받고 자란 것 같습니다. 물 떠와라, 티비 채널 바꿔라, 컴퓨터 쓰게 나와라, 그러다가 반항하면 저는 바로 제 방으로 강제 추방이 되는 거죠. 게다가 제 친가 할아버지께서도 장남 장손을 귀하게 여기셨던 분이라, 어떠한 일에도 형은 옳고, 동생인 저는 당하기만 해도 그게 맞는 거라고 자란 사람입니다 한번은 본인이 씹던 껌을 심심하다고 제 머리에 붙여서, 제가 뭐라고 하니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목 발로 저를 때린 적이 있네요. 미국에서는 의견 차이가 난다고 들고 있던 삽으로 제 머리를 찍으려고 한 일이 있었고, 이에 기겁한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결국 형이랑 저랑 강제로 하숙집을 분리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본인이 쉬는 주말이나 방학에는 제 일과에 관계 없이 찾아와 제 물품과 제 장소를 쓰는 것은 기본, 돈까지 빌려가며 여러모로 대학 생활도 참으로 재미나게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소포로 물품을 보내주면 마음에 드는 물품은 당연히 본인 차지, 나머지는 제가 가지거나, 본인이 자기 있는 곳에 놀러 오라 해놓고 나서는 혼자만 밖으로 나돌아 다니거나 짜증 섞인 한 숨을 내쉬는 둥 도무지 이해 못할 행동도 참 여러 가지가 있었네요. 지금 잠깐만 생각해도 이 정도니, 일생을 살면서 크고 작게 느꼈을 행동 가지가 얼마나 더 있었을까 가늠이 안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모르겠네요, 그래 놓고 부모님은 항상 동생만 편애해왔다 생각할지. 저도 썩 그리 살갑고 다정한 좋은 동생은 절대 아니었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주변 사람이 이 형이 참 좋다라고 할만한 부분을 저는 평생에 걸쳐서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가족이고 넌 내 동생이니까 내가 챙긴다 라는 말을 듣게 될 때면 참으로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싫네요. 동생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역시 기본적인 동생으로써의 도리와 책임은 가족으로써 지겠지만, 그 이상 제게 왈가왈부하는 일은 제가 사양하는 부분인데, 이러한 평생에 걸친 갈등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그러면 안돼 라고 강요하는 것이 참 웃깁니다. 이 정도가 대략적인 제가 느끼는 형과 저의 관계입니다.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크기 유학 시절, 그리고 결혼 이후로 많이 틀어졌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위에 적었다시피, 저는 절대로 다정하고 살가운 성격은 못 됩니다.

유학생활을 쭉 하면서 금전적인 부분에서 마찰이 아주 컸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주거 비용 제외, 생활비 40-50만원을 가지고 생활을 했습니다. 이 금액에 식비, 전화 비용 등, 모든 비용을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대학 3년차부터는 기본 주10-20시간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뛰면서, 제가 필요한 여행에 들어가는 돈, 친구들과 어울리는 돈 등 최대한 마련하려고 했고, 그 이외에 충당이 안 되는 부분을 부모님께는 따로 부탁했습니다. 이 와중에 항상 형이 난입하여 제 생활비를 가로채서 결국 그 몫도 항상 부모님께 따로 말해서 충당할 수밖에 없었죠. 절대 남들만큼 편안하고 풍족하게 살지는 않아도 최대한 부모님께 부담을 줄이려, 주립대, 아르바이트 등을 하고 그 뒤에 돌아오는 말은 결국 저는 돈 잡아 먹는 기계 라는 오명이었죠. 극과 극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주변 평균적인 유학생들의 순수 생활비용이 당시 평균 100-200만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전 지금 스스로도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최대한 부담을 적게 지으려 노력했다고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지속적인 금전적 스트레스와 압박으로, 2007년쯤 군입대 이야기를 부모님께 이야기 했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학업을 지속하게 되었고, 2009년경에는 이 부분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미군에 자원해서 연락을 끊으려고 입대 지원까지 해봤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로는, 정황상 어쩔 수가 없었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하여도 참으면서 다닐 수밖에 없었고요.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원래 먼저 잘 연락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형과 1차적으로 강제로 떨어뜨리게 되어서 제가 한인 그룹에서 떨어지게 된 점, 자연스럽게 부모님 나 교류 연락이 멀어지게 된 점, 대학교 진학 후 금전적이 부분에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질책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에 따라 연락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 부분은 서로 문제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가 없네요. 매번 연락이 될 때마다 너는 왜 그러니, 너는 왜 그 모양이니라고 결국은 이야기가 끝나는데 참 그게 십 년 넘게 반복에 되면 어떤 기분일지는 당사자밖에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게 일부분이기에 형에게 매번 나에게 형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고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선을 긋죠.

 

결혼 후 이야기입니다. 제 집사람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이었고, 그 상황에 미국에서 혼인 신고만 올리는 상황에, 자식을 물건으로 보시는 어머님은 예단 예물의 형식과, 본인 돈으로 교육시켜 대학원을 졸업한 아들 vs 앞으로 그런 자식 돈으로 교육을 배울 예비 신부의 탐욕에 과한 말도 서슴지 않던 분입니다. 아무리 아들이지만 이건 확실히 선을 긋고 이야기를 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아마도 제 졸업 시기에 맞춰서 부모님은 여태까지 키워서 약사로 지낼 아들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기대감도 있었다고 자신합니다. 그 상황이 오기 전에 갑자기 결혼을 이야기하니, 그 보상심리가 자연스레 신부측으로 전가가 되었을 테고요. 하지만 저희 부부는 애초부터 예단 예물, 또는 금전적인 교류도 할 생각이 없었을 뿐더러, 처갓집에서는 당연하게 신부의 대학원 학비는 대어줄 계획이 없었고, 저희 부부 스스로 해결해가야 할 일이었기에, 그 모든 것이 증발이 되어버렸죠. 크게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자면, 제게 직접적으로 처갓집 험담 밑, 금전요구, 집사람 문제 언급, 손익을 따지는 발언을 서슴지 않게 실제로 했습니다. 또 당시 제가 약대에서 의대로 진학을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당시 의대로 진학하게 해주는 석사 학위에서 제게 합격 통지서를 보내줬던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학생 당시 신분으로는 제가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던 상황이었고, 이 일을 어머님께 이야기하자마자 하신다는 말씀이, “네 처갓집이 학비 반을 대주면 내가 반을 내주겠지만 그게 아니면 난 못 준다, 결혼을 했는데 왜 네 학비를 고스란히 내 돈으로 내야 하느냐라고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게다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분이라 위에서 언급한대로, 말 그대로 며느리가 못생기고 가진 것도 변변치 않은 집이라 손해다 라고 상시 언급을 하시고 제게 메시지를 글로 적어 보내시는 분입니다. 위에 말한 대로, 저는 옳고 그름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아무리 어머니라도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기에, 저는 항상 싸우고, 그걸 지켜보는 형은 항상 같이 어머니 편에서 제 욕을 하는 일이 지난 몇 년간의 반복이었습니다. 항상 저 말을 들으면, 저도 반박을 항상 하게 되고, 그러면 형은 어머니께 무슨 행동이냐며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적으로 어머니를 감쌉니다. 위에 말했다시피 전 선이 있고, 가족이라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과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다릅니다. 형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는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따르지는 못한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도 굽힐 생각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또 하나의 일과를 들어보면, 제 결혼식이 있었던 하와이, 제가 하와이에 거주 하지도 않고 데스티네이션 웨딩, 즉 결혼 및 여행 겸으로 장소를 정했고, 수요일부터 1주일 머무른다는 계획을 하고 갔습니다. 또한 현지에서 식장 및 여러 가지 일을 현지에서 만나서 다시 조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요일 결혼식을 위해서는 정말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미리 집사람이랑 상의를 해서 수요일에 처갓집이랑 시간을 보내고, 우리 쪽이 친척이 많이 오니 목요일에 결혼식 조율하고, 시댁 쪽이랑 시간 보내고 밤에 친구들 맞이하고, 금요일에 다같이 식장에서 만나면 되겠다 하고 진행을 하려고 하니, 저희 어머님께서 아들인 집인데 왜 처갓댁이랑 시간을 보내느냐, 수요일은 무조건 우리에게 와라 라고 노발대발 하셔서 결국 수요일에 시댁, 목요일 결혼 조율, 처갓집, 친구들과 정리하고 금요일에 식장으로 다시 변경을 했었습니다. 결국 예정대로 수요일에 시댁과 시간을 보내고 목요일에 오전에 식 조율 뒤 처가랑 시간을 보내던 중에 어머니께 이모부네가 왔으니 당장 이쪽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아들 집안을 언급하며 무조건 넘어 오라는데, 전화로 대판 싸우고 무시했습니다. 금요일 날 식이 오후 6시였지만, 같은 날 메이크업 촬영 및 준비를 해야 하는 관계로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라 오후에 도착한 친구들을 데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형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하는 말이 욕설과 함께 당장 오라는 소리네요? 기가 차서 저도 할말 하고 욕설만 들으면서 전화 끊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원한다고 무조건 결혼은 성당에서 하라고 본인이 강요해서 하와이에서까지 성당에서 식 올리게 하고는 본인은 모른답니다. 덕분에 집 사람만 데리고 성당 부부 연수, 신부님과 면담 등 불편한 일은 다 했는데 참 황당할 노릇입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 사촌 누나가 있는데, 매번 형이 만날 때마다 시애틀 어학연수가 좋다고 가보라고 권유를 해줘서 모든 서류부터 거주 및 살림도구까지 제가 혼자 다 떠넘기고 끝에는 혼자 욕을 다 얻어먹은 일도 있었네요. 잘해주면 기본 못해주면 욕 먹는 게 딱 좋은 상황이죠. 형이 일은 다 저질러 놓고 결국 뒷일은 혼자 책임을 지는.

저는 공치사를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바라면서 해주는 일도 없고, 누가 공치사하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저희 형은 내로남불과 공치사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제가 미국에, 형이 한국에 거주하게 된 일은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생활이 맞는 거고, 형은 본인이 원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사는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생각도 없으며, 더 친밀한 관계로 부모님께 모든 재산을 물려 받던, 할머님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던 일이던, 저는 단 한치도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없습니다. 저는 이미 제 스스로 충분히 받았음을 느끼고, 더 이상의 부모님의 원조도 형의 도움도 바라지 않습니다. 추가로 여기서야 처음 하는 이야기지만, 제가 제 친조카를 위해 금액을 보낸 일이나, 형에게 해밀턴 시계를 사준 일이나, 구두를 사준 일 등 몇 번은 안되지만, 단 한번도 이런 일에 대해서 생색을 내거나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무엇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부탁한 일이 아주 손에 꼽히고, 공치사가 아주 심하신 분입니다. 결국은 몇 년은 더 지난 이야기도 다시 되새기면서 제게 갖은 소리를 다 하시니까요. 저희 형이 오지랖이 아주 지나치다는 것은 형수님도 이미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본인이 해주지도 않으면서 해줄 것처럼 앞에서 현혹시키는 일도 좋은 일이 아니죠. 위에 사촌 누나 일은 본인이 발생시키고 모든 책임을 제제 전가했던 것처럼요. 제가 이 일이 지긋지긋하여, 오죽하면 제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도 없으니 제발 놔달라고 사정을 할까요. 정말로 저는 이 두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부탁할 일이 없을뿐더러 그 이상 바라는 것 다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 단 1원 안 줘도 진짜 상관이 없으니 제발 저를 가만히 놔뒀으면 하는 것, 딱 그거 하나 바랍니다. 정말 매번 하느님을 거들먹거리며 본인은 이제 다 내려놓았으니 라며 말을 잇는 어머니를 보면 참 기가 찹니다. 이런 일을 가지고 제게 자격지심이 있다면서 그렇게 살지 말라고 반 강제적으로 욕설과 비방을 하는 형, 대체 제가 뭘 더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납득이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닌 일을 맞다 라고 맞장구 쳐주거나,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아들이나 동생은 못될 겁니다. 이 글을 읽는다 한들 형은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죠. 이해를 할 일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매번 정도를 넘어 제게 형식적인 방식을 고집하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형이랑 어머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가만히 있다는 게 백 번 낫다는 저, 대체 누가 선을 넘고 있다는 건지 대체 모르겠네요. 그냥 저희 집안에 넋두리였습니다. 퇴근하고 잠을 자려다가 몇 시간째 설쳐서 제대로 내용이 정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보시기에 조금이라도 제 생각을 이해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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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 입니다. 

오늘도 결국은 집이랑 대판 싸우고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형수님께 글을 보내고

여러분의 조언 및 질책도 들을겸 공유하고자 올리게 되네요

긴 글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써서 오타도 많은점 그리고 긴 글 읽어주신 점 미리 양해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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