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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부부의 결혼5년차 짧은 회고록
게시물ID : wedlock_87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탄미사일
추천 : 21
조회수 : 2138회
댓글수 : 27개
등록시간 : 2017/06/15 23: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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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23살 저와 25살 신랑과의 결혼5년차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엄마28살 아빠30살 이야기입니다) 
이글을 쓴 계기랄까 목적은 , 어린 나이에 결혼이야기를 쓰며 결혼이라는걸 온몸으로 겪는 결혼현실을 제 느낌을 어린나이에 결혼한 부부들께 공감도 나누고 제 시선에서 결혼 얘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전 무한긍정 마인드에 사실 신랑이 대학 조교때 결혼해서 월 120받고 생활할때도 너무너무 철없이 행복했어요 

조교 계약이 2년이니까 그후 퇴직급여였나요 고용노동부에 재취업될때까지 지원받는동안 천사같은 첫아이를 출산해서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요 .. 

아이아빠가 일은 안하고 월 백도 안되지만 정말 행복했고 아이도 있고 전 겁도 없었으니까요 .. 

애아빠는 현실주의자라 돈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마인드였지만 철없는 23살의 저는 무작정 너와 나 우리아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아이아빠가 중소기업에서 일할때도 제 행복도는 변하지 않았어요

23살의 철없는 엄마는 지금 4살 2살 두아이의 엄마가 되어 28살이 되었고 
23살이였던 철부지 여자친구를 25살의 책임감이 강한 남편이 절 책임져주었죠 

사실 저는 25살되면 절 책임질정도로 책임감이 강해지고 삶에 희망이 샘솓고 어른인줄 알았는데 

제가25살되어도 어른이 아닌 어린 엄마라는게 제가 신랑과 결혼한 나이가 되니 신랑에게 얼마나 큰짐인지 알게되서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사실 아이들 키울때 전 공부보다 유쾌한 아이 , 항상 밝은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쉽지 않네요.. ㅎ 

그 철없는 부인을 맞이하고 신랑이 첫아이 출산과 함께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어요 

사실 신랑은 대학교를 두번 다녔고 석사를 목표로 두었는데 저와 뱃속 천사를 위해 가장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 결혼 5년차의 행복은 신랑이 대학조교 일때와 첫아이 출산 후 중소기업 근무 할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물론 육아는 제머리털 셀프 숱치기 할정도로 힘들었어요 , 저의 행복은 결혼 만족도를 말하는거에요 ㅎㅎ) 

돈 170쯤 받았나 그랬어요 
모은돈도 없고 시댁에 얹혀 사는 입장이라 저의 히스테리때문에 무리하게 분가를 했던거같아요 
(시부모님 너무 좋으신 분들이세요 제가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같았던거같아요) 

홀벌이에 세식구 170.. 

아파트 관리비 각종 전기수도료 달에 30씩 , 차할부 40. 보험료 와 휴대폰요금 .. 

정작 밥을 먹을수 있는 식비는 20만원으로 생활해야했어요 

나와 신랑은 적게 먹어도 아이는 소고기 이유식 매번 만들어 먹이고 제 옷은 일년에 한번 .. ㅎㅎ 살까말까 ㅎㅎ 

그렇게 살았어요 

전 자존감이 엄청 높다 생각했는데 아이를 14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낼때까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바닥을 치고 있더라구요 
매 삶의 순간순간이 자살충동이였고 후회였어요 (아이낳은걸 후회하는게 아니라 본연의 저를 인정하지 않는.. 제 존재부정이였어요) 

우울증의 빨간불이 켜질쯤 아이를 원에 보내니 세상이 다시 너무 좋았어요 자존감도 회복되고 아르바이트를하며 가정에 도움도 되니 삶의 원동력이 되고 내인생쳇바퀴가 잘 돌아가는 느낌이였어요 

제가 아이에게 메여있던 이년의 기간이 절 좀먹고있었더라구요 
(여러분 아이 하나 키울때는 제 살을 깍아 아이를 키운다 라는  맘을 가지고 임신출산육아를 하시면 됩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집에서 안전과민증에 시달린 25살 엄마를 치유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신랑이 중소기업에 근무 2년동안 서로의 대화도 많아지고 행복했어요 ( 신랑 9시출 6시 칼퇴 주5일 을 꼭! 지켰어요 신기하게도) 

그때의 행복한 기억들, 
첫 아이 낳고의 신랑과의 궁상 맞겠지만 행복함 
 
그 기간동안에 행복의 기억들이 지금 가장 힘든시기의 부부 생활에 버팀목이 되고 있어요 

하나는 외로우니 둘은 낳자 싶어서 가진 둘째 . 

둘째임신때 가장 많이 싸웠어요 
사실 많은분들이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혼전 임신으로 일찍 결혼한 터라 둘째는 정말 신중히 고민하고 결정하고 합의하에 가졌어요 

세살터울은 중고등학교 같이 교복해주고 목돈이 많이들듯해서 두살터울 혹은 네살터울로 하자 결정했고 
많은 생각 끝에 2살터울로 신랑과 결정후 임신 전부터 신랑과 저는 엽산을 먹고 딸 낳는 갖은 방법을 동원 천사같은 딸을 출산했어요 

둘째 출산후 정말 몸이 아팠어요 

내 인생에 체질이 바뀔수도 있구나를 정말 절실히 실감했어요 

피부묘기증에 눈이침침해지고 잦은속쓰림 무릎이 심하게 아파서 물리치료도 많이 받으러가고 손목은 행주를 비틀지 못할정도로 망가졌어요 

 첫애 출산후 산후조리를 시댁에서 친정에서 번갈아 했고 
둘째는 아이아빠가 해주었어요 

산후조리원 너무 가고 싶었지만 월 170버는 신랑에게 이주에 300이 넘는 산후조리비를  부담가게 하고 싶지 않아 국가산후도우미와 신랑의 산후 도움으로 잘 했다 하는데 .. ㅎㅎ 

첫애였으 모를까 둘째를 그렇게 해서 그런가 1년이 지난 이후 급격히 이유모르게 아파서 약도 먹고 픽픽 쓰러지기도 했네요 

세벽에 무릎이 너무 아파서 울다가 깨고 밤세 주무르다가 지쳐서 자고 날 밝으면 병원가야지 하다가 병원비도 많이드니까 .. ㅎㅎ 
아시죠? 
우리 어머니들이 그랫던거처럼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 약먹음 괜찮아져 하고 있는 절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참 궁상 맞다 하실지 모르지만 그때의 저는 저 선택이 최선이였고 전 몸이 아프지만 신랑은 절 바라보며 마음이 참 많이아팠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신랑이 독한 마음을 먹고 대기업 문을 두드리고 1년 고비 끝에 입사를 했어요 

저는 중소기업도 괜찮다 우리 사랑하니까 괜찮다 했는데 아이아빠는 아니였나봐요 , 

너무 현실을 아는 공대생이라 그런지 .. 
이사회에서 살려면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 밖에 없다 생각을 했는지 

대기업 취업을 했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물론 지금이 그때보다 낫다 할수 없어요 
 
주2.3회 집사람은 이해할수없는 각종 이유모를 회식, 부서회식,파트 회식,팀회식,송별회식,환영회식,연말연시 회식,프로젝트 끝날때 회식, 매일 야근으로 더 대화할 시간도 없고 행복을 팔아 돈을 벌고 있지만 뉴스한켠에 나오는 어린나이에 아이를 버리고 임신한 엄마가 자살을 하고 서로를 폭행하고 철없는 엄마 아빠들이 나올때마다 

그래도 내가 저들에게 나도 이런 철부지였는데 이리 달라졌다 라는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어린엄마아빠라고 다들 개념없고 생각없고 현실을 볼지 모르고 책임감만 앞서는 부모가 아니라 

20살 30살 혼자 겪을 실패와 좌절 현실감각을 
내옆에서 지켜줄 사람과 혹은 가족들과 함께 견뎌낸다는거.. 

철이없어서 일찍 결혼한거보다 
2,30대에 겪을 현실의 고난앞에서 내 배우자와 내 자식들과 내가 같이 동행한다는걸로 생각해 주셨으면 .. 좋지 않을까 싶어서 글을 올려봤어요 

쉬운길, 어렵게 남들보다 덜떨어져서 제가 이런길을 걷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린나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어린나이에 결혼해서 애가 있다는 눈치와 조롱보다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일찍시작한 젊은 부부에게 박수치는 사회가 됬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써봤습니다 

제 글이 뭐 ㅎㅎ 변화가 되는 시발점이 아니라 그냥 제 글을 읽으신 한분이라도 어린부부가 장하구나 고생한다 라는 시선을 가져주셨음..하는 바람으로 글을 쓴거니 , 니가 모질라 이런길 선택해놓고 힘들다 빽빽거리지 말라는 조롱을 답글은 .. 두아이의 여린 가슴에 상처가 될수 있다는거 한번 알아주시고 조롱과 비하 댓글은 정중히.. 아주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 물론 걱정되서 쓰는 말과 글속에 조롱은 다른건 알아요 ㅎㅎ 걱정안하셔도 돼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모든 젊은 부부 젊은 엄마아빠님들 향후 20년 30년 후에는 
아 일찍 낳아 내가 죽기전에 아이와 함께할 시간들이 많아서 좋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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