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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와우 이야기 - 7 -
게시물ID : wow_35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회피탱
추천 : 3
조회수 : 55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6/09 12: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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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마 두 번 정도 더 쓰면 끝나겠네요.
이후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PvP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공대를 탈퇴한 후 실업자가 된 나는 비슷한 시기에 탈퇴했던 길드원들과 함께 골팟을 꾸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골팟이 당연해진 시점이지만 불성 초, 중기에는 누구나 돈이 없었고 레이드에서 사용하는 비약, 영약도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골팟이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포인트도 없었던 막공에서는 오로지 주사위 하나에 운명을 맡겨야했다.
주사위 팟을 한 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테지만 주사위는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었고
정말 운이 없는 사람은 막공을 4주 동안 다니고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던 것이 불성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일퀘 반복과 나그란드에서 상주하는 짱개 매크로들의 존재로
서서히 골드 비축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바로 그 타이밍에 길드원들을 주축으로 하는 골팟을 돌리기 시작했다.
공대장은 길드의 큰형님이자 만레벨 캐릭터를 8개 보유하고 마지막 만렙을 달려가고 있던 '소주'형님이 맡았고
나는 암사, 도적, 법사를 주축으로 한 주력 딜러 중 하나로 골팟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만 마그테리돈이나 그룰 같은 경우 아이템 하나에 200골 정도, 하이잘 수준이어야 500 단위가 되었고 검은 사원도 고작 1000 단위였다.
때문에 골드팟이라고는 해도 대단한 돈을 버는 경우는 드물었고 1인당 200, 300골드를 벌면 많이 받았다고 할 수준에 그쳤다.
다만 푼돈이라고 해도 주당 3~4회 정도를 뛰면 모이는 돈이 쏠쏠했기에 꽤 부지런하게 참여하곤 했다.

이렇게 골팟을 뛰면서도 한가로움을 주체하지 못하던 나는 당시 주력으로 사용하던 암사로 힐스나 가덤에서
필드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PvP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PvP에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기 보다는 암사를 주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지만...)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영상을 보게 되었고 이것이 나를 냉법의 길로 끌어들였다.




솔직히 법사를 만렙까지 키웠지만 스턴을 점멸로 풀 수 있는지는 이 영상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영상 하나로 나는 법사를 파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알터렉 룰방으로 기본 PvP셋도 모두 맞추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PvP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상들을 보면서 그걸 흉내내곤 했고 당시 만 20살, 지금과는 달리 피지컬도 좋았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우리나라의 PvP 고수들보다 해외 영상들을 주로 봤기 때문에 길드원들에게 영상을 추천해도 '누구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영고생착이 얼마나 사기인지, 그런 영고생착도 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noone의 영상도 충격적이었고
이걸 보고 관통셋을 올린 내 냉법은 PvP의 명소였던 오그리마 앞마당에서 어설프게 영고생착을 흉내낸 흑마들은 쉽게 이길 수 있었고
2천점대의 흑마들과 아슬아슬한 승부를 벌이면서 서버 내에서 거의 유일한 영고생착 잡는 법사로 나름 알려지기도 했다.

다만 당시 냉법이 워낙 사기였던 점이 더 컸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전장만 가도 1:3~4 정도도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었고 특히 사냥꾼 같은 경우에는 지금은 삭제됐지만 [데드존]이라고 불렸던
근접, 원거리 공격이 모두 불가능한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냉법에게는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투기장은 관심이 없어서 점먹 외에는 하는 경우가 없었고 그렇게 6개월 간 냉법으로 재미를 보고는 나는 군대를 가게 되었다.


- 7 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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