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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23: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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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가 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총선도 치루고 별의별일이 많았지만 요새처럼 무기력함을 느낀 적은 없다. 다들 알다시피 당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지도부로서 그동안 이 사안과 관련해서 포스팅을 한 적은 없다. 나의 입장은 상무위를 통해, 회의 결과를 통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몇마디 해야겠다.
1.
어제 전국위가 있었다. 전국위 하루 전 조성주 위원을 비롯한 10여명의 위원들이 특별결의문을 발의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전에 발의한 안으로 과연 어떤 대의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을 왜 발의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발의한 위원들이 이미 과반수 표를 확보해서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통과가 되었다. 좀 더 숙의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전국위에서 논의하자고 했던 심대표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꼭 이런 상황에서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했나는 의문이다. 당내 여성주의에 대한 논쟁으로 당이 두 쪽으로 쪼개져 서로를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러한 것이 올바른 것이었나. 누군가는 본인의 신념을 위해서, 누군가는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좀 더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왜 고려하지 못했나. 왜 다른 사람들에게 여지를 주지 못하나.
이번 사태를 이유로 600명 가량이 탈당했고, 그 중 이삼십대가 70%이다. 이삼십대의 당원 비중이 40%인 것을 감안해보면 청년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여 탈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당수는 메갈리아에 반대하다는 탈당 사유를 명시했다. 상무위에서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장시간의 토론 끝에 '무분별한, 극단적 미러링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낸 것이었다. 그 후 심상정대표는 상무위 모두 발언에서 정의당은 '여성주의 정당'임을 천명하였다. 상황을 수습해가면서 당의 기조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대처가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중을 기해 당의 합의점을 만들어가려고 했다.
2.
이번 결의안으로 다시 탈당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도부이자 전국위의 일원으로 이 상황을 책임지고 수습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전국위원들 모두가 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대표발의한 전국위원은 더 무겁게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늘 과감한 타협을 강조하던 그가 어제는 왜 타협하지 않았을까. 표 숫자 계산을 마치고 나서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서였을까. 약자일 때는 타협을 강조하고, 자신이 이긴다고 확신할 때는 타협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민주주의론인가. 어제 전국위는 신임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인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그는 젠더 TF 위원을 맡았다. TF 활동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하던 중, '극단적인 미러링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상무위의 입장 발표가 있었고 그는 젠더 TF를 사퇴했다. 그의 태도에서 당을 먼저 생각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는 전국위 하루 전 특별결의문을 발의한다. 모든 문제의식에 동의 하나 좀 더 시간을 갖자는 심상정 대표의 간절한 호소에 그가 '의장님, 빨리 표결하세요'로 답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
3. 정의당에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다. 특정 사안을 두고 의견이 갈리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있었다. 의견이 다르다고 배제하거나 힘으로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패권주의로 망가져버린 통합진보당에서의 교훈이었다. 난 그런 우리당이 너무 좋았다. 이런 당에서라면 소위 운동권이 아닌 나도 활동할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즐겁게 활동하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부대표까지 맡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어느새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낙인찍고, 조롱하고 가르치려 하는 문화가 팽배하다. 같은 정의당원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온데간데없다. 이 사태까지 온 것에 지도부로서 참담한 심정이다. 마치 폐허 위에 서있는 기분이다.
남은 임기동안 정파보다 당을 우선했던, 활동가보다 당원을 우선했던, 패권 담합보다 타협 조정을 우선했던 정의당의 아름다운 문화를 바로 되살리는데 있는 힘을 다할 예정이다. 과연 얼마만큼 되살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