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전역이라는 걸 한지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고깃집 알바를 하느라 이래저래 바빴으나, 이젠 그것 마저도 그만두니 백수와 다를 게 없는....잉여 중의 잉여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무료함을 못 견딘 난 집 근처 편의점에 전화를 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형식적이었다.
몇 살이세요?
-스물셋입니다.
알바 경험이 많으시네요. 편의점도 해보셨고... 얼마 동안 하실 수 있어요?
-주말 야간은 기간 상관 없이 계속 가능해요.
군대 다녀오셨죠?
-네 두 달 됐네요 벌써.
다음 주에 바로 투입할게요.
-네. 네?!
면접과 동시에 채용이 됐기에 얼떨떨했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투입되면 나야 좋은 셈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이 끝난 것 같아 편의점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날 불러 세웠다.
이력서 보니까 곧 생일이시네요.
-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생일날 근무라서 어떡해요?
-........?
그랬다.
지금 난 편의점 주말 야간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고, 내 생일은 다음 주 일요일 다시 말해 내 첫주였다.
그제야 친구 놈들의 카톡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음 주 일욜 시간 안 비우면 척살, 니 아들 일1베충, 니 딸 메갈 등등....
소름이 돋아났다.
이대로라면 내 미래의 아들, 딸들은 일1베충에 메갈리안이 되는 게 아닌가!
우리 집안 번식은 사촌들과 형놈에게 맡기자, 라고 생각하는 도중에 내 표정에서 어이 없음이 강하게 느껴졌는지 점장 누나는 싱긋 웃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점장 딸이었다만 편의상 점장 누나라고 칭함).
그럼 다다음주에 시작하기로 해요. 생일날 근무는 끔찍하잖아요?
-생명의 은인이시네요. 은혜 꼭 갚을게요.
.....네?
점장 누나의 배려 덕에 투입 시기가 조정된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근무 투입 주가 되었다.
편의점 투입 전, 교육은 필수였기에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점장 누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참 밝은 누나구나'라고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같이 손을 흔들었다.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되....었으나 난 배울 게 없었다.
입대 전에 1년 6개월간 GS에서 일한 내게 있어서 편의점 일은 야동을 보며 그곳을 세우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물론 편의점 상표야 달랐지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걸 마스터했는데, 점장 누나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와!! 교육 오늘 하루만 받고 끝내도 되겠어요!
-그런 것 같죠? 근데 제가 한참 동생인데 말 편하게 하세요.
그래! 그럴게!
-........
기다렸다는 듯 말을 놓는 점장 누나를 보며 살짝은 후회했지만,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며 '웃는 게 참 매력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서로 말이 많았는데, 점장 누나는 말을 놓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말문을 텄다.
난 배테랑 편돌이 마냥 계산을 했고, 누나는 자기가 할 일이 줄었다며 해맑게 좋아했다.
신기했다.
초면이나 다를 게 없는 사람 앞에서 내 얘기가 너무나 술술 나왔다.
점장 누나는 내 얘기에 웃으면서 '넌 참 인상이 좋은 것 같아'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게 생겼다,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표정이 없다, 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나로서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다.
교육은 벌써 끝난지 오래였지만, 난 집에 가지 않았고, 누나 또한 계속 같이 있자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6시간 동안 편의점 계산대에서 서로 떠들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이 잘 간 순간 중 하나였다).
점장 누나의 퇴근과 함께 내 교육도 끝이 났는데, 누나는 배고프지 않나며 근처 고깃집으로 날 끌고 들어갔다.
난 고기를 얼마 먹지 못했다.
사실 무진장 배가 고팠다.
그러나 간질거리는 심장 때문에 음식을 삼키는 게 힘들어 얼마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놔야 했다.
점장 누나는 맛없는 곳 데려와서 미안하다며 시무룩해 있었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속이 안 좋아 그런 거라며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누나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도 올래?
-1시간 후에 갈게요.
심장이 마구 뛰었다. 벌써부터 점장 누나를 볼 생각에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심장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평소에 잘 뿌리지도 않는 향수까지 뿌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누나는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린 전 날처럼 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말이 교육이지, 남들 눈에는 둘이서 꽁냥대는 걸로 밖에 안 보였을 거다.
서로 말만 꺼내면 자지러지고,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으니.
하지만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또다시 누나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
누나 집앞에서 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ㅇㅇ아. 여자친구 있어?
-.......네?
있어?
-없어요.
잘됐네.
-...그럼 누나는요?
없어.
없어, 그 한 마디가 어찌 그리 듣기 좋던지....
웃음을 애써 감추느라 꽤나 고생했다.
누나는 집으로 가다 말고 다시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나를 껴안았다.
너 향수 냄새 진짜 좋다.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
향수 뿌리길 잘했다.
내 취향과 정반대의 향수를 선물해준 친구 놈에게 무척이나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ㅈㅇ야 그때 욕한 거 미안했다. 내가 많이 아끼는 거 알지?)
혹시나 뛰는 심장 소리가 누나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분위기에 휩쓸린 나는 직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 누나 좋아해요.
알아. 나도 너 좋아.
-아니. 여자로요.
......?
내 마지막 말을 들은 누나는 당황하며 포옹을 풀고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여기 흑역사! 단 하나!를 외치는 아줌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릴 무렵, 카톡이 왔다.
'내일 답해줄게. 그래도 되지?'
'네. 당연히 되죠.'
'내일 봐... 잘 자고.'
'누나도요'
다음 날, 편의점에서 누나는 날 보자마자 향수 세 개를 건넸다.
어떤 게 좋냐는 물음에 난 두 번째 것을 택했고, 누나는 앞으로 그것만
뿌리겠다며 내 손을 잡았다.
이틀 간의 썸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아직까지 잘 사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