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나희덕, ‘땅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