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도 형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강당 입구에서 벌어진 한바탕 소란.
얼떨결에 '유인물'을 받아든 학생도, 몸싸움 끝에 그것을 빼앗은 형사도 소란 자체보다 그것이 진정된 뒤의 상황에 더 당황했다.
8절 갱지에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햇빛에 비춰보고 물에 담가보고 불에 쬐어봐도 헛수고였다.
급히 다리미를 구해와 다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백지였다.
사실인지 유언비어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백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 정밀 분석까지 했다는 소문이 나중에 나돌기도 했으니... .
연세대 백지선언문 배포 사건. 긴급조치 9호 시대 연세대 학생운동의 내막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사건이다.
1977년 4월 19일 낮 12시 쯤 벌어진 일이다.
백지를 배포한 학생은 2~3학년생 4명이었다. 철학과 3학년 김철기, 물리학과 3학년 김성만, 경영학과 2학년 강성구, 토목과 2학년 우원식이었다.
이들은 즉각 현장에서 기관원들에 체포돼 교내 학생과를 거쳐 신촌역 앞 대현파출소로 압송됐다.
이들이 뿌린 것이 백지로 확인되자 경찰은 닭 쫓던 개 모양이 됐다.
무언가 주장을 한 근거가 없으니 꼬투리를 잡을 게 없었다. 집회를 한 것도 아니었고, 구호를 외친 것도 아니었다.
무소불위의 긴급조치 9호도 백지선언문 앞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학생들이 따졌다.
"백지를 돌린 이유가 있겠지."
"중간고사 기간이라 공부할 때 연습지로 사용하라는 건데... ."
학생들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이들을 조사하던 정보과 형사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잔소리 마. 죄목은... ."
그의 대답이 더 기발했다.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야!"
출처 |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8398&code=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