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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반드시 막연한 공포의 근원인 것은 아닙니다
게시물ID : science_5162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니사이클
추천 : 3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6/25 07:13:05
인공자궁과 관련한 논란을 살펴보다가 굳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미 댓글로 두 번씩 설명했던 이야기지만, 새벽이라 피드백 주는 사람도 없고, 약간 주제를 바꿔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에 글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공자궁은 절대로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지에 의한 막연한 공포에서 나온 발언은 아닙니다.
 
 
우리가 '무지'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막연한 공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지식 수준은 측정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제현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복잡성의 수준 역시 재현한다는 뜻입니다. 복잡성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사항들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복잡성의 수준을 간접적으로 측정, 유추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제현해야 할 시스템의 복잡성의 크기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최신의 과학 모델에 근거한 복잡성의 크기를 빼면, 그것은 우리가 그 시스템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부분의 크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지의 크기) = (실제 시스템의 복잡성의 크기) - (적용 가능한 모델의 복잡성의 크기)
 
 
자궁을 재현하여 인공자궁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당면한 문제에서 잠시만 눈을 돌려 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이러한 논증이 어떻게 가능한지 "유추"해봅시다.
 
어떤 고도로 발달한 외계의 문명이 있어서, 인공지구를 제작할 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인공지구를 제작하는 목적은, 실제의 지구에서 인류라는 지성을 가진 종이 나타났던 그 진화적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여 또다시 인류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그게 될까요, 안될까요?
 
직접 해보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절대로 안 될거라고 말했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플라밍고의 미소"(현암사)라는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책을 안 가지고 있어서 어느 에세이였는지 인용하기가 어렵네요.)
 
모르니까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시겠나요?
 
"무지의 크기"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겁니다.
"실제 시스템의 복잡성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적용 가능한 모델의 복잡성의 크기"를 그만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단언할 수가 있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복잡성의 크기가 엄청나고 시간적으로도 엄청납니다.
소행성이 떨어져서 공룡이 멸종하는 것까지 계산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간적 복잡성을 계산할 수 있어야 되는지,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태양계만큼은 커야겠죠.
시간적으로는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45억년 정도의 복잡성은 필요하겠죠.
복잡성의 규모와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안 해봐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시공간 속의 역사를 재현할 수 있는 문명이라면 자신들 역시 45억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야겠죠.
 
정확히 뭘 모르는지는 몰라도, 얼마나 모르는지는 유추할 수도 있고 근사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모르는지를 안다면, 무작정 시도했을 때 성공할 확률도 안다는 뜻입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시간의 화살축을 거꾸로 되돌려 45억년 전으로 되돌아가서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때, 인류라는 종이 그대로 나타날 확률이 거의 0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류와 다른 형태의 지성체가 나타날 확률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 그러면 인공자궁 이야기를 해볼까요.
 
 
글을 잘 쓸 자신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결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공 자궁을 만들 때,
"실제 시스템의 복잡성의 크기"를 계산하고자 한다면, 그 실제 시스템에는 산모와 자궁, 태아가 모두 포함됩니다. 태아와 산모가 자궁을 통해 상호작용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반면 "적용가능한 모델의 복잡성의 크기"를 계산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인공자궁은 포함되는데 태아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긴단히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그 태아를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인공자궁을 제작하기 위해 가정해야 할 발생학적으로 이상적인 태아 모델이 있다고 합시다. 모델이 아무리 복잡해도 실제 태아만큼 복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델의 복잡성은 상대적으로 0이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도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인공자궁을 실제의 자궁과 최대한 유사한 환경으로 만드는 건 가능해보일지 몰라도, 겉보기에만 그렇습니다.
태아와 산모의 상호 작용을 인공자궁을 통해 재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태아 자체가 무한히 복잡한 시스템이며, 실제의 자궁은 그 무한한 복잡성을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수억년에 걸쳐 진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임신한 어미가 어느날은 갑자기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하고 어느날은 딸기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태아에게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인지하고 요구하는 그런 상호작용 시스템은 재현이 불가능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그걸 "현재의 과학 기술"로 재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무지로 인해 과학 기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과학 기술이 가진 분명한 한계에 의해 무지의 영역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수록 무지의 영역은 더욱 크게 평가될 것이고, 환원론적 관점이 아니라 전체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을수록 무지의 영역은 또 더욱 크게 평가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무지해서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지의 영역을 추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인간의 생명과 관계된 문제이고, 따라서 무지의 영역이 엄청나게 작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대충 추산을 해도, 진화적 산물을 재현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다른 사례로부터 유추할 수 있고, 전체론적 시스템의 복잡성이 얼마나 되는지 생태계 속에서 다른 예제를 찾아낼 수 있으면 왠만큼 정확한 추산을 한 겁니다. 뭘 모르는지는 모르겠어도 모르는 게 많다 싶으면 하지 말아야 된다는 간단한 논리입니다. 모르는 걸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만큼 재현불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거든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은 가망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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