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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전이 아쉬운 이유
게시물ID : fifa2010_17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
추천 : 1
조회수 : 40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6/18 11:20:16
솔직히 한국식 축구에서 수비란 골 근처에서 공격수를 막는걸 말하는게 아니잖아요.

상대 최후방에서 중간 허리까지의 선수들이 자기네 공격수한테 패스하는 것 자체를 잘라먹어버리는, 그래서 그 순간 바로 역공을 가하는게 바로 한국의 '압박'축구고 바로 그걸로 개개인의 기량차이가 현격한 강팀들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아르헨티나 공격진이 뭐 어찌 막아보려 한다고 막힐 레벨들도 아니고, 그나마도 한두명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전체가 다 무시무시한 괴물급인데 10명이 다 들어와 수비한다고 해봤자 1:1로 털리는 것 밖에 더 될까요...

박지성이나 다른 공격수들이 뛸 기회가 없었던게, 다들 수비하러 들어가고 없으니 간간히 공을 잡아봤자 줄 곳이 없어서 우왕좌왕... 오히려 본의 아니게 아르헨티나에게 '압박축구'를 우리가 당하는 꼴이 났으니 말 다했죠 뭐.. 상대의 장점을 잔뜩 살려주고, 우리의 장점은 살리긴 커녕 오히려 상대가 우리 장점 흉내내서 우릴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어차피 아르헨티나 상대로 승리를 기대했다기 보다는 한국식 축구로 최선을 다해 잘 싸우고, 그렇게 싸워서 좋은 결과를 맞는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설령 진다해도 모든걸 쏟아부었더라면 잘싸웠다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어젠 좀 많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전반전 30분 정도가 너무 아까워요. 왜 뜬금없이 수비축구따윌 하다가 스스로 망해버린 걸까요... 북한하는거 보고 흉내내고 싶었던 걸까요? 북한식 9백이 허감독 눈엔 그리 쉽게 보였을까요? 축구 문외한인 내가 봐도 북한 수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움직였는지, 연습을 얼마나 했을지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수비가 아닌 공격이 주특기인 우리 선수들한테 대충 다 들어와서 막으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르헨티나를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은 잘 싸웠던것 같습니다. 후반전 초중반까지의 경기는 물론 여전히 열세에 놓이긴 했어도 주눅들지 않고 정말 잘 밀어붙였죠. 2골을 아쉽게 더 내주긴 했지만 그건 이미 전반전의 괴악한 전술로 수비조직력이 망가진 상태에서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세계최강 공격수들을 막는 것 자체가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러기에 후반 돌입할때 수비수 교체를 제대로 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남일 말고 차두리를 넣어 우리에게 익숙하고, 꾸준히 연습해왔으며, 그리스전에서 대성공을 거뒀던 그 '압박축구'를 되살리기 위해서 말이죠) 다만 아쉬운건 왜, 대체 왜 전반 초반부터 우리도 체력이 빵빵했던 그때부터 우리식 축구를 구사하지 않았던거냐 하는 부분입니다.

아르헨티나랑 싸워서 지면 뭐 어때요? 누가 욕합니까, 상대가 세계 최강인데. 2002년 이후 얻은 한국축구의 최대 교훈이 뭡니까? 강팀과 붙을땐 위축되어 수비위주로 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몰아붙여야 한다, 최전방에서 최후방 사이 어디에서건 체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상대 패스를 끊어먹는 플레이를 하면 강팀과도 얼마든지 대등하게 붙어 볼 수 있다, 이거 아니었습니까? 가뜩이나 그리스전에서 그것을 성공시켜 보이며 기세가 오른 한국의 젊은 선수들에게 어째서 어이없는 10백 전술로 기를 꺾어놓는 걸까요...

한국축구는 전장의 기병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열세에 처하더라도 과감하게 적진 한복판으로 달려들어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의 허리를 끊고 뒷통수를 치고 적진을 뒤흔들어놓는 기병들 말이죠. 이런 기병들에게 '오늘은 적이 워낙에 세가 강한 대군이니 모두 말에서 내려 방패나 손에 쥐고 성 안에 들어앉아 있어라'라는 이해 못할 명령을 내린 것이 바로 어제의 결정적 패인이라고 봅니다.

적이 아무리 강성한 대군이라 해도, 그래서 우리 성을 순식간에 함락시킬 정도의 막강한 군대라 해도, 한국식 축구는 기병대입니다. 공격이 곧 최고의 수비란 각오로 성에서 뛰쳐나와 상대 대군의 허리를 끊어먹는게 한국 축구입니다. 그래서 적이 우리 성에 도달하지 못하게 괴롭혀주는게 한국 축구입니다.

어제 진건 별로 억울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기는걸 기대하기엔 무리인 상대였으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억울하고 아쉬운건 최고의 능력을 지닌 기병대에게, 그것도 젊은 열정과 지난 승리의 자신감으로 한껏 기세가 오른 기병대에게 말에서 내려 방패 쥐고 수성전이나 펼치라는 어이없는 작전을 짠 덕분에 세계 최강 공격축구에게 우리식 축구의, 한국축구의 모든 역량을 가지고 온 몸을 던져 도전해볼 기회조차 잃었다는게 아쉬운 겁니다.

나이지리아의 전력으로 봐선 16강 진출의 승산이 없지는 않아보입니다만, 만에하나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16강 토너먼트로 진출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쉬운상대/어려운상대' 골라먹을 여유따윈 없이, 한경기 한경기 세계 최고의 상대들과 혈전을 벌여야 할겁니다. 저도 물론 16강을 기원하지만 부디 허정무 감독이 그 시점에 가서도 '강팀이니까 우린 처음부터 겁먹고 시작합시다' 따위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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