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소설가들을 위한 강좌를 한 번 해봅시다. 끝까지 할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 시작을 플롯과 스토리로 시작해볼게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강좌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저의 비루한 사견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강좌는 돈 주고도 못들어요. 그러니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따라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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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이 뭐고 스토리가 뭔지는 구글 찾아보시면 나오는데 그런건
별로 도움이 안되요. 머릿 속의 언어적 개념을
'시각화' 하는 연습을 틈틈이 하세요. 저는 소설을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시각화 했어요.
플롯은 하나 조형물이에요. 집이나 동상 같은거죠. 3차원의 조형물.
스토리는 플롯의 그림자에요. 즉 3차원의 조형물에 조명을 비추어 생기는 2차원의 그림자.
그럼 조명이 되는 광원은 뭘까요? 그게 바로
케릭터 입니다. 케릭터가 없으면 스토리는 없어요.
이 문장을 기억해두세요
'스토리는 케릭터가 플롯에 빛을 비추어 만들어 낸 그림자.'
너무 중요하니까 한 번 더 쓸게요.
'스토리는 케릭터가 플롯에 빛을 비추어 만들어 낸 그림자.'
기억하세요. 두 번 세 번 기억하세요.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그려지죠? 우리 초등학교때 간단한 실험도 해봤죠?
주전자 하나 놓고 광원의 위치를 바꿔가며 어떤 그림자가 생기는지.
같은 플롯이라도 케릭터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내요.
작가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플롯을 만들어내지만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림자에요. 그래서 작가의 고민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자만 보고' 3차원의 플롯을 만질 수 있게끔 만드는거죠. 그게 작가의 임무에요.
주전자의 그림자만 보여주면서 독자가 '아 이건 주전자가 아닐까?' 하고 답에 근접할 수 있게끔 해야해요.
다른 비유도 한 번 들어볼까요.
작가가 멋진 스웨터를 짰어요. 하지만 독자에게 선물 할 때는
실을 풀어서 줘야해요. 실에는 스웨터를 짰던 굴곡만 라면발처럼 꼬불꼬불하게 남아있죠.
풀어낸 실이 독자의 손아귀에서 짠 하고 스웨터로 다시 짜여져야해요. 과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소설은
어려워요. 훈련이 필요하죠.
초보 소설가들이 가장 많이 헤매는 이유는 케릭터를 만들어보지 못해서
자신의 플롯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못해봐서 그래요. 그래서
독자에게
'플롯의 그림자'를 보여주지 못하고
'플롯 자체를 설명' 해요. 이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초보 소설가가 빠지는 딜레마에요.
플롯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지루해요, 하지만
플롯의 그림자를 보면서 상상하는 것은 재미있어요.
메뉴얼과 소설의 차이에요.
단편소설의 플롯은 간단해요. 왜냐하면 많은 케릭터가 등장할 수 없기 때문에. 고작해야 하나 혹은 둘, 많으면 셋 정도.
장편 소설의 플롯은 복잡할 수 있어요. 케릭터가 많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는
플롯이 만들어내는 여러 개의 그림자를 비교 대조하면서
3차원에 존재하는 플롯의 원형을 추측하죠.
여기까지 조금 이해가 되셨나요. 그러면 계속 따라와보세요. 실제로 제가 플롯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릴게요.
저는 오늘 아침 1시간 정도 산책을 했어요. 그 산책 도중에 내가 상상한 것들은 대충 아래와 같아요.
*****
저는 고양이를 자주 사용해요. 그냥 제 취향이죠. 그저 제 모티브의 단골이에요.
고양이가 한마리 있어요. 내 품에 있어도 되고 길바닥을 헤매도 되요. 고양이. 고양이...나는 고양이를
옆집에 두어봤어요. 옆집. 아파트? 아니면 원룸으로 하죠. 원룸. 방음이 잘 안되는 원룸.
옆방에는 여자가 살아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자가 좋을까, 아니면 인사라도 몇번 해본 여자가 좋을까.
그 여자는 몇살일까, 혼자 살까, 아니면 가끔 남자를 데려올까. 몰라요. 대충 상상해보고 일단 접어요. 가능성은 많겠죠.
방음이 안되니까 고양이 소리가 들려요.
가끔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하겠죠. 나와 고양이. 남자와 고양이. 혹은 그저 사람과 고양이.
나는 여기서 잠깐 케릭터의 무게를 가늠해보기도 해요. 주인공인 '나'와 짐승인 고양이. 아무튼 여기까지는 그저 그래요.
그런 고양이가 어느날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왜일까요?
여기서부터 조금 재미있어져요. 이 이야기의 플롯에는 '사라짐'의 요소가 끼어들었어요.
사람짐과, 사라짐에 대한 호기심. 어느 날부터인가 옆 방에서 고양이 소리가 안들려요. 아,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평소에 옆방 여자는 아주 조용한 편이었다고 해두는게 좋을 것 같아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강조할 수 있으니까.
자 일단 이정도까지 상상하고 나면 이 이야기의 플롯은 어느 정도 두 구획으로 나눠져요.
주인공인 '나'와 옆방 여자, 그리고 고양이. 나는 상상해요. 여자와 고양이. 여자는 고양이를 어디서 데려왔을까요?
고양이의 소리가 사라지는 이유는 분명히 고양이를 데려오는 과정과 상관이 있을거에요. 아무튼 그래야 해요.
길에서 주워왔을까요? 아니면 훔쳐왔을까요? 아니면....혹시 그녀는....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밤마다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흉내내는 것일까요? 왜일까요? 아 재밌어요.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흉내내는 여자.
하지만 막막해요.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서. 일단 접어요. 옆방 여자에 대해서 그나마 조금 상상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주인공인 '나'에 대한 상상이 부족해요.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면 좋을까요? 내가 누구면 재미있을까요? 나는 왜 옆방의 소리에 호기심을 가질까요?
한참을 생각했어요. 이리 저리. 그러다가 문득, 훌쩍 건너뛰어봤어요.
주인공인 나는 실제 그 방의 주인이 아니다 라는 상상. 아 이 상상 재미있어요.
주인공이 어떤 우연한 계기로 그 방에 들어오게 되면 어떨까?
집을 나와 헤매다가 우연히 들어온 원룸 건물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아무 생각없이 돌려본 현관문이
덜컥 열리는 바람에 들어온 주인 없는 원룸.
주인공은 일단 잠을 자고, 일단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뒤져 먹고, 또 일단 배가 부르고 나니 나가려다가
또 어떤 계기로 인해 그 집에서 못나갔요. 허무맹랑하지만 재미있어요. 이야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다분해요. 좋아요.
구상 단계에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건 언제나 재미있는 모험이에요.
자, 일단 아주 허무맹랑하지만
이 이야기는
2개의 방과
2개의 미스터리로 시작할 가능성이 보여요.
첫번째 미스터리는 옆집 여자.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옆집 여자.
두번째 미스터리는 주인공이 들어온 빈 집. 그 빈 집에 살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주인공을 난처한 상황에 빠뜨려볼까요?
우연히 빈 원룸에 들어온 주인공은 디지털 도어락이 고장나는 바람에 집에 갇힌걸로 하면 어떨까요?
주인공은 휴대폰도 없어요. 자기 집도 아니니 창문 열고 살려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것도 괜찮을것 같아요.
케릭터에게 적당한 고난을 주면 이야기가 재밌어지거든요.
주인공은 남의 집이니 아주 조용히 먹고 자고 싸겠죠. 아마 화장실 물내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생각할거에요.
아아 이거 괜찮은데요. 주인공은 생전 처음 경험해봐요. 사람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소음을 내는지.
자신의 숨소리,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어요. 아 이것도 좋겠는데요. 뭔가 집중력이 있어보여요.
이제 또 옆집 여자를 생각해요. 고양이 울음소리 말고
또 다른 소리를 낸다면 뭐가 좋을까요? 섹스 하는 소리? 자위 하는 소리? 에로틱하긴 하지만 좀 유치해요. 너무 뻔하죠.
그럼 이건 어떨까요?
옆집 여자는 주인공이 들어온 방의 남자와 안면이 있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있는 방의 원래 주인이 며칠간 집을 비운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맘껏 소리를 내죠.
음음 좋아요. 허무맹랑하지만 나름 '이유'들이 생겨요. 논리성을 가지기 시작해요. 아 좋아요. 멋져요.
다시 훌쩍 건너 뛰어봐요. 나는 주인공이 '의지'를 가졌으면 해요. 아마 주인공은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그 집을 탈출하려고 할거에요. 어느 순간에는 필사적으로. 이런건 어떨까요?
천신만고끝에 주인공이 겨우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옆집 여자가 떡 하니 문앞에 있어요. 뭔가 극적인 장면일 수 있겠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전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극적인 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있어요.
아, 또 이런건 어떨까요?
주인공이 우연히 들어와 갇혀버린집. 원 주인은 며칠간 집을 비운다고 옆집 여자에게 말해두었어요.
주인공은 그 집에서 갇혀있으면서 원 주인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해요.
알고보니 그 집의 원래 주인은 유서를 남겨두고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것이었어요.
주인공은 그 남자가 죽지 않기를 바래요, 그리고 아무튼간에,
그 남자도 모르는 그 남자가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해요. 아 이거 좀 유치하고 신파 냄새가 풍기지만 나름 장점도 있어 보여요.
주인공의 삶과 얼굴 모르는 원룸의 원래 주인의 삶이 만날 수 있어요. 뭐 아무튼.
그러면 또 옆집 여자는? 아 잘 모르겠어요. 여자는 정말 잘 모르겠다니까요. 에혀.
저는 오늘 한시간 정도 산책을 하면서 이정도까지 상상하다가 배가 고파서 들어왔어요.
전체적으로 허무맹랑해요. 고양이에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고양이는 없어도 될듯해요. 항상 그래요.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죠.
고양이에서 시작하면 어느 순간 고양이는 사라져 버리는데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떡하니 나타나곤 해요.
플롯을 집짓기에 비유한다면 이정도까지의 상상은
땅바닥에 대충 금을 찍찍 그어두고 건축자재 몇개 구입해놓은 정도라고 볼 수 있어요. 케릭터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단계죠.
저는 보통 기초 단계의 상상은
메모를 잘 안해요. 기억의 어두운 부분속에 남겨두고 알아서 자라길 바래요. 그러다 까먹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는 상상이 한 편의 글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우 적어요. 그저 상상 자체가 재미있으니 해보기도 하는거죠.
가능하면 이걸 글로 쓰면 좋겠네요. 하지만 완성될 가능성은 적어요. 항상 그래왔으니까.
이 글을 보시는 초보 소설가분들, 한 번 상상해보세요.
다음주, 혹은 다다음주에 이 상상의 나래를 조금 더 펴볼게요. 그러면 서로의 상상을 비교해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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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셨나요?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허접하고 무모해요. 글로 적어놓은 것보다
산으로 가는 다른 엉뚱한 상상들이 훨씬 많아요. 일종의 여행이죠. 이러다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되요. 산은 좋아요. 산은 건강하고, 산은 항상 옳아요. 그냥 가보는 거에요.
이 상상은 잠시 그냥 놓아두고
다음 강좌에서는 기존의 플롯을 분석해볼게요. 영화는 플롯을 공부하기 좋은 매체에요.
영화 신세계의 플롯을 다음 시간에는 분석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