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이틀 바빴네요.
오늘은 그냥 정보라기 보다는 저의 타국생활을 대략 얘기해보려 하네요. 요즘 친구들 말로는 핵노잼일지도 모르겠네요.
한국에서 살지 않으니 달라지는 생활패턴이 있어서 대략으로 적어볼게요. 사람들 사는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요즘 와이프랑 얘기하면서 ' 우리 좀 잼없게 사는거 아닐까?' 하고 묻는 말에 스스로 ' 그냥 고민없이 이렇게 가족이 같이 사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자' 며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1. 음주 가무.
한국에서 대학다닐때는 술 참 많이 마셨습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죠. 제가 와이프를 대학 1학년때만나서 결혼전까지 10년을 만났으니 데이트의 패턴이 일정했습니다. 영화보고 밥먹고 술마시고 집.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만, 와이프 안만날때는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등등. 집에 들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나닐때는 다 늙어서 굳은 머리로 따라가려니 힘들어서 일주일에 하루, 토요일에만 맥주 한잔씩 했었네요. 노래방등이 넘 비싸서 걍 맥주사서 집에서 먹었네요. 물론 고기값은 싸서, 고단백으로 안주삼아서.
가정이 생기고 나니, 와이프도 술을 못먹고 저도 안먹은지 5-6년이 지나니 술에 대한 항체가 없어졌나봅니다. 이젠 거의 연중행사로 먹게 되더군요. 1년에 한 세네번?? 크리스마스나 결혼기념일, 혹은 잼나는 한국영화를 기다렸다 보는 그 순간... 모 이런... 젊었을땐 주량을 말할수 없을정도로 먹었었는데, 이젠 맥주 한캔갖고도 알딸딸해져서... 이거참, 40나이에 늙었다고 할수도 없고... 젊었을때 술이 하나의 기쁨이 되었던 그 시기를 되돌아 보면, 하나의 즐거움은 없어진듯 싶네요.
2. 평생교육
캐나다와서 대학들갈때 과선택과정에서 와이프와 전 한가지 무식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 공학도, 와이프는 인문대였기때문에 적성등을 고려해서 무슨 과를 가서 공부해야하나 하고 고민했었죠. 그런데 결론은, ' 죽을듯이 열심히 하는것이 적성이다'. 그 당시 많은 유학생, 혹은 어학연수생 동생들이 학교추천해달라며 상담해 왔었습니다. 어디 학교가 좋아요? 어떤 선생이 좋아요? 무슨과가 좋아요? 등등.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했죠. ' 네가 열심히해서 선생님이 알려주는것을 잘 이해하면 그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고, 그런 학생이 많아지면 좋은 학교가 되는거고, 열심히하면서 흥미가 생기면 그게 적성이고 네가 좋아하는 과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수없게 얘기해줬던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우리는 그렇게 딴곳에 한눈 팔지 않고 졸업을 해서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전 누구든 나이에 상관없이 공부를 한다고 하면 참 좋아보입니다. 격려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갖게된 이유는 캐나다에서 대학 첫 전공시간에 늙수레한 두 남자가 같은 강의실에 들어온것을 보고 교수님인가 싶어서 인사를 했었죠, 그런데 학생들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의 두남자는 고등학교 졸업해서 일을 시작했고, 한 20년정도 일을 하다보니 관리자를 관리하는 직급이 됐고 학위가 필요해서 1학년부터 시작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분들과 참 공감하면서 잘 지냈었는데, 그게 우리 부부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공부를 해보자고...ㅎㅎ 지금은 모르겠지만, 우리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단한번의 기회밖엔 없고 그걸로 미래가 좌우되는 경향이었거든요. 방통대도 학벌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우린, 한달 수입의 10프로는 책을 삽니다. 읽든 읽지 않든. 그러다보니 이사할때 책짐이 무시무시합니다.ㅠㅠ 9살난 아들도 책짐 늘리는데 한몫을 하지요. 그렇다고 우리 아들은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책을 잘 보진 않아요.ㅠㅠ 와이프가 버틀란트 러셀에 꽂혀서 저와 함께 2014년을 시작하면서 철학을 공부해보자고 제안했고 동의해서 노력중입니다만... 저... 공대생이라서 진도가 잘 빠지진 않네요.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생각의 폭을 넓게 해주는 지침서가 되었네요. 러셀로 인해서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를 끊었고, 다양한 생각을 인정하면서 무슨일이든 쉽사리 단정을 짓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천재가 있었다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신채호 선생과 버틀란트 러셀을 동서양의 천재라 꼽습니다. 어쨎든, 우리는 저녁시간을 탁자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봅니다. 그리고, 요약해서 서로 들려주죠. 제 한국친구들한테 우리 이렇게 지내했더니, 미친놈들이라고 하더군요...
3. 여가생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정권 당시의 아버지를 가졌었던 제 어린시절에 아버지란 존재는 같이 놀아주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 아버지는 외아들인 저와 많은 시간을 놀아주셨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아들과 휴일에는 미친듯이 놀아줍니다만(아들도 평일엔 조금 바빠요), 체력의 급저하가 가져오는 부작용은 항상 따릅니다. 집에 있을땐, 같이 겜 한시간해주고, 백야드에서 물총놀이하고 샤워하고, 테니스, 탁구, 야구캣치볼, 자전거 타기 등등을 번갈아가면서 시전해줍니다. 체력이 항상 딸려서 후회합니다. '애는 20대에 키워야돼'... 덕분에 울아들은 저녁8시부터 담날 7시까정 기절합니다. 저도 물론... 아참, 우리가족들은 서로 스킨쉽이 유달리 많습니다. 아들도 하루에 수십번 엄마아빠 안아주고 뽀뽀해줍니다. 스윗하지요. 집에 없는 날은 드라이브 갑니다. 캐나다 살때는 밴프국립공원이 1시간거리라서 시간날때마다 갔었고, 그당시엔 좋은걸 잘 못느꼈었는데, 지금은 참 좋았었구나 하고 추억합니다. 여기서는 걍 드라이브를 많이 하네요, 정해논 도시로 가서 밥묵고 구경하고 온다든지... 1년에 2주를 휴가로 쓰는데(전 3주입니다.), 주로 아들 여름방학을 기해서 붙여씁니다. 멀어서 못갔던 곳으로 가는거죠.. 경비는 주로 세금환급금으로 갔다가 옵니다. 올해는 시애틀과 밴쿠버를 갔었네요.
4. 친목
아들과 비슷한또래의 부모들과 만납니다. 저희는 한국분들과는 많은 교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백인들 사회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아들친구들은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이민자자녀와 백인 친구 이렇습니다. 주로 애들 봐주기 품앗이를 해주죠. 한두집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하루 혹은 하룻밤을 데리고 있어주기때문에 그럴경우엔 우리부부가 데이트를 즐기죠. 외식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가끔 몇몇 집이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얘기주제가 대부분 아이들입니다. 공통사가 좀 적어서리... 그래도 한 몇년간 한류덕분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으로 공통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덕분에 주말에 한시간씩 세식구가 같이 한국방송봅니다. 복면가왕이랑 톡투유. 아들 친구부모중 몇몇이 복면가왕을 어떻게 아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만...
5. 사교육
이건 생활은 아닌데, 아이를 가진 집에선 생각을 해봐야하니 함 적어봅니다. 울아들 모 배우나 싶은데... 수영, 리딩, 테니스, 피아노 이렇게 네가지를 배우는 군요. 평일에는 학교끝나고 열심히 배우러 댕깁니다. 다 합하면 한달에 한 700불정도 드는것 같네요. 그래서 우리집은 은행잔고가 +- 0입니다. ㅎㅎ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좋겠지만, 우리는 걍 나둡니다. 지가 하든 말든. 공부는 본인이 필요로 할때를 느껴야 할것이고 그런 필요성을 느껴야 열심히 할거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엄마는 우리 아들커서 의사됐으면 좋겠다. 아빠는 파일럿됐으면 좋겠다. 근데, 울 아들은 소방관 되고 싶답니다. 화가도 되고 싶답니다.(그림은 맨날 졸라맨하고 앵그리버드로 그리면서...)
또, 모가 있을까요... 생각해봐도 참 재미없게 지내는 것 같긴 합니다만, 우리 가족들은 걍 스스로 만족하고 살려고 합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친한친구들과 친목회처럼 서로 만나고 같이 휴가도 가고 참 좋았을텐데... 하면서요. 다른 이민자분들도 비슷하게 사시나요?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미국이나 캐나다나 어떤 나라도 더 이상 American Dream을 쉽게 실현시켜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욕심을 버리면 소소하게 행복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낼수 있네요. 예를 들면,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고, 서로 대화하는 즐거움이 있고, 맛있는 요리를 해서 같이 잘 먹고, 같이 여행하고 추억을 만들고... 다들 어디에 있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하시는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건강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