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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그 후)산머루의 이복형제, 들마루 이야기
게시물ID : animal_1394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xingfu
추천 : 6
조회수 : 64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9/01 20: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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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머루에겐 일주일 먼저 태어난 이복형제가 있다. 동네 난봉꾼이었던 애프리푸들(미니어처 푸들종)을 부견으로 둔 산머루는 보더콜리 믹스 어미 배에서 태어났고, 이복형제인 들마루는 시추 엄마 밑에서 태어났다. 들마루는 시추 엄마와 2개월까지 같이 지내고 우리 옆집으로 분양을 왔다. 정확히 말하면 분양이 아니라, ......옆집 마당에 유기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니, 떠맡겨졌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들마루의 주인들은 들마루의 이름이 들마루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옆집 마당에 묶어두고 사라진 제 어미와 어미주인을 두고 들마루는 옆집 마당에서 몇 개월인가 크다가 지금은 산 밑 밭에 묶여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 옆집과 우리집은 밭도 나란히 있어 우리 밭에 가면 자연히 들마루도 볼 수 있었다. 항상 사람이 그리운 녀석은 낯선 나에게도 온갖 애교를 부린다. 순한 건 꼭 시추를 닮았고, 주인도 아닌 내가 붙인 이름에 또렷히 반응하며 꼬리 흔드는 총명함은 푸들을 닮았다. 


 ......그게 문제였다. 

 시추와 푸들을 정확 반쯤 닮은 시푸라는 것. 


 인간의 손에 개량되어 인간의 손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시푸, 들마루의 털은 시추의 특성상 한없이 풍성하고 길게 자랐는데 거기에 푸들의 모질이 섞여 끝도없이 꼬불댄다. 빗질 한 번 받지 못한 털은 자연히 엉망으로 엉켜들었고 피부에 달라붙어 털갑옷이 되었다. 눈썹으로 자라난 털은 덥수룩하게 내려와 눈을 찔렀고,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과 눈곱이 뭉쳐 눈 밑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항문 근처의 털은 죄다 엉켜 털에 똥이 얼기설기 달라붙어 덜렁댔다. 


 몇 번인가 지나치던 옆집 분들께 저 개 저렇게 두면 아마 피부병 걸릴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대번 인상을 지푸린다. 당연하다. 여긴 개는 한낫 가축이고 재산일 뿐인 시골이고 들마루는 귀찮게 떠넘겨진 존재인 것이다. 항상 사료값이 아까운 옆집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몰래 털을 다듬어 주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일까. 그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들마루의 온 몸이 엉킨 털로 뒤덮혀 대걸레 자루를 덮어쓴 것 같은 몰골로 악취를 풍기며 내게 와 살랑일 때마다, 나는 지난 봄 떠나보낸 내 새끼들이 떠올랐다. 분양보내면 이제 내 새끼가 아니라지, 궁금해도 하면 안된다지, 아무리 마음을 닫아보려해도, 푸들 곱슬머리를 꼭 닮았던 우리 곱단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우리 곱단이도 혹 저리 되어 있으면 어쩌나, 아무리 좋은 분이 데려가셨다지만 사람일 어찌 될지 모르는데 내가 보내 저리 살게 되면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하나 겁이 났다. 


 미용가위를 몰래 숨겨 가서 조금씩 들마루의 털을 다듬었다. 눈을 찌르던 두상 위의 털을 정리하자 똘망한 들마루의 눈이 나를 향해 반짝였다. 예쁜 눈이었다. 가끔 간식을 나눠주고, 시간 날 때마다 들러 들마루의 털을 조금씩 다듬어 주었다. 물론 역부족이었다. 시추의 털이 자라는 속도를 서툰 나의 가위질이 따라잡을 수 있을리 만무했다. 여름 내 조금씩 다듬어봐도 들마루의 털은 피부에 달라붙어 엉켜들기만 했다. 


 오늘은 큰 맘을 먹고 몰래 들마루를 납치해왔다. 산 밑 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들마루의 털을 다듬으려면 한 시간 만에 모기를 열 군데나 물리기가 일쑤인데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오래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 옆집 동향을 지켜보니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으신 것 같고, 우리 집 동향도 보니 별 일 없을 것 같아 길 건너 밭에 묶인 들마루를 납치해와 본격적인 도둑미용을 시작했다. 싹둑싹둑, 자를 곳은 자르고, 이미 피부화되어 잘라지지도 않는 곳은 피부가 다치지 않도록 조금씩 오려 도려냈다. 


 한참을 오려내고 잘라내고 낑낑대다 보니 드디어 크게 엉킨 털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잘려나간 들마루의 털이 들마루 크기만큼 쌓였다. 휴, 한숨을 쉬며 요리조리 살펴보니 이젠 진드기가 문제다. 밭에 방치되어 있다보니 진드기가 난리다. 방에 들어가 하나 남은 스팟온 제품을 가져와 들마루를 위해 아낌없이 뜯었다. 비오킬을 희석해서 뿌려주면 더 좋겠지만 자주 안 쓰다 보니 분사기가 고장나서 되질 않는다. 서툰 가위질을 잘 참아주고 얼굴까지 얌전히 내어준 들마루가 예뻐서 닭목도 하나 통째로 주고, 주니어용 사료 남은 것도 챙겨 포대째 들마루네 집 옆에 두고 왔다. 


 다시 밭으로 들마루를 데려다 주고 오는 길, 평생에 처음일 듯한 산책길에도 얌전하고 또 얌전한 들마루가 애닮다. 너무 착하고, 예쁘고, 그래서 더 안스러운 녀석, 산머루의 이복형아 들마루.


 가능한 한 가을이와 머루를 데리고 일주일에 세 번은 들마루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외롭지는 않게 해주려고 한다. 그러면 내가 보낸 우리 꼬물이들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지 않을까 바란다. 사랑은 돌고 도는 거라니까, 분명 그럴거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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