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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경험기 7 - 인식의 변화
게시물ID : emigration_45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ecluder
추천 : 20
조회수 : 1500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5/09/18 07:01:36
최근에 여러모로 바쁘고, 좋은 아빠 좋은 남편으로 살기위해 오유에 눈팅만 했네요.

오늘은 이민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건강을 위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합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약 15년간을 항상 행복하다라는 말을 하고 살았습니다. 자기 최면을 걸듯이.
첨에 유학을 위해서 캐나다에 있을때 - 경제적으론 좀 팍팍하지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이곳에서 이민을 하고 일을 할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행복했고
졸업해서 일자리를 가졌을땐 - 이제 앞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할수 있을거란 생각에 행복했고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 우리 건강하고 우리아이 건강히 자라는 모습에 행복을 느꼈네요.
아니, 이렇게 최면을 걸었네요. 
사실, 우리는 첨에 와서 약 5년정도의 시간을 두고 계획을 세우고 맘속으로 기도를 했었던것 같네요.
대략, 1년후에 대학을 들어가고, 3년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해서 이민을 하고 애낳고 집사고... 이렇게 5년에서 7년간의 대략적인 계획을 항상 생각하면서 생활을 하니 차근차근 이루어져 가며 성취감도 느끼고, 가끔 문제가 생겼지만 곧 다른 좋은 방법으로 극복하기도 하면서...

이부분은 조금 주저스럽긴하지만, 제 스스로를 뒤돌아보면서 적어보자면... 저는 참 비관적이었고 염세적이었던 28년을 한국에서 보내왔었던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종특이라고는 감히 말할수 없지만, 어려서부터 경쟁을 통한 교육과 주위환경, 그리고 일본과 중국으로 인한 역사적인 피해의식과 무의미한 군대에서의 26개월이 시간낭비(전 나름 6사단 2연대에서 GOP근무하며 사단장표창도 받아가며 근무했습니다.- 혹, 군대드립으로 태클거실까봐서...ㅎㅎ)가 저를 그렇게 만든듯 싶습니다.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캐나다로 넘어와서 대학을 다니다보니, 친구사귀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느끼는 점이 있었네요. 다름아니라, 한국유학생들중에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리에서 배제를 했었는데 그 친구를 좋게 말하는 캐네디안들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너무 편협되게 그 친구를 생각하고 왕따를 시켰구나하는거죠 아니 스스로를 왕따시킨거같아요. 솔직히 뒤돌아보면 별것아닌 생각의 차이를 마치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흑백논리로 선을 그었는데, 이곳 백인친구들에게는 그 생각이나 가치관의 차이를 Wrong이 아닌 Difference로 생각하고 인정을 하는 모습에 느끼는점이 많았습니다. 물론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았고, 편협된 내 생각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걸 느끼면서 제 생각도 변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정하다보니, 지금은 친구들중에 게이도 있고 레즈도 있고 인종주의자도 있네요. ㅎㅎ 한번은 백인 게이친구에게 '너 남자만 보면 매력을 느껴?' 물었더니, 저에게 '넌 아무여자나 보면 하고 싶어?'라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넌 내 스타일아냐... 그냥 친구야' 하더군요. 제가 저의 못난 종특이라 생각했던 것중에 또 한 에피소드는, 울아들이 학교에서 같이 노는 Playmate이 레즈부부사이의 아들인데 아무렇지 않게 친하게 지내더군요. 저나 제 와이프는 조심스레 아들에게 환기를 시켰는데, 울아들이 '내 친구 XX는 엄마아빠 다 있어 근데 다 여자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것(다행히 울아들은 여자를 좋아해요...ㅎㅎ)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선입견을 갖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이곳에서도 교회에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운운하는데, 저희는 아들의 모습에 동의하며 스스로 논란의 범주에서 벗어날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 서로에게 이렇게 얘기했죠... 비록 우리 아들이 어떤 논란의 중심에 서거나 판단을 해서 사회의 지탄을 받더라도, 우리의 사랑스런 아들임은 변함이 없으니 끝까지 아들편에 서주자. 우린 가족이니까... 라고...

일하면서 느끼고 바뀌었던 것중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는 참 비관적인 사람이었기에 무슨일을 추진할때 항상 Opposite side를 먼저 언급합니다. 그때, 제 보스가 이런말을 하더군요. '넌 항상 15%나 되는 우려스런 부분이 있다라고 말한다'. 첨엔 무슨말인지 몰랐죠. '가능성이 몇프로나 되어야 넌 능동적으로 도전하려고 하느냐? 난 같은 주제를 가지고 85%의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해볼만하다고 말할것 같다.' 그 보스는 식사를 하면서 저에게 멘토가 되어주기도 했는데, 가령 식사를 하다가, '프로젝트를 하건 공부를 하건 넌 좋다와 안좋다의 단어밖엔 모르는것 같아. 우리는 좋다, 조금 더 좋다 조금 덜 좋다, 조금 안좋다, 아주 안좋다등등 여러가지 의견이 있으니 다 잘 들어보고 결정할때는 0% 와 100%의 근사치를 찾으라' '작은 부분으로 80%를 0%라고 결정하지 말고, 20%를 100%로 결정하지 말라' 하더군요. 음... 한국말로 옮겨놓으니 좀 말이 안되나? 모 알아서 들으세요..ㅎㅎ 좌우간, 그 보스의 말은 15%의 우려스런부분을 마치 100%의 우려로 생각해서 결정하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작하면 더 좋은 부분으로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하다는 변명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거였어요.
우습게도 이런 작은 생각의 변화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할수 있었네요.

울 아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않습니다. 성적표의 점수는 나름 잘 받아오긴하지만, 울 와이프 항상 격려를 잘해줍니다.(예전에 한국TV에서 봤다면서...) 대신에 비교를 해댑니다. 남하고가 아니라 작년의 울아들, 재작년의 울아들 그리고 오늘의 울아들의 모습을 가지고 격려와 꾸중을 합니다. 그랬더니, 울아들 지난 6월 학기 끝났을때 성적표를 한손에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 엄마, 나 영어 수학 과학 점수가 작년의 점수보다 낮아, 근데 사회는 더 높아. 걱정마 대신에 난 작년보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이만큼 건강하게 자랐고, 낮은점수를 향상시키도록 할게.' 작년에 울와이프가 했던 격려의 말을 그대로 카피해서 읊어대는데 할말이 없었네요. 어느정도 큰 아들과 놀아주기는 참 힘듭니다. 몸으로 놀아줘야하자나요... 퇴근후 시간이 넘 길어요, 특히나 주말엔...(좀 젊어서 애를 낳을걸하는 후회를..ㅠㅠ) 아들덕분에 스타워즈와 Marvel영화를 완관하고 그 자세한 뒷얘기까지도 섭렵하고 있습니다. 울아들 가끔 제다이중 누가 가장센지를 가지고 저와 심층있는 토론하기를 좋아하거든요...ㅠㅠ 지난주에 좀 바빠서 아들하고 많이 놀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울아들 왈' 아빠 지난주엔 100점이었는데, 이번주엔 75점이야.. 담주엔 100점 되도록 노력해요...' 이젠 가끔 아들이 하는 말이 제 가슴이 뜨끔하게 만들어서 대견하기도 하네요.

말이 또 길어졌지만, 이민을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생각하시던 편협된 생각에 갇혀있으면 이곳에서도 생활이 윤택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도 배우겠다는 생각, 또 옳은가싶은것은 습득하겠단 생각을 가지시면 이곳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할수 있을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썼네요. 사람들에게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능력들이 있어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성취하겠다는 기도를(종교든 아니든) 한다면 이루어진다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출처는 모름.. 걍 누가 말한것 같은데 격한 동감을 해서 기억함.) 그래서 종교를 떠나서 기도는 힘이 있다는...
물론, 한편으로는 제 글이 예전의 제가 봤다면 회색인간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네요.ㅎㅎ 
한번더 강조하자면, 이민을 오실때 우려되는 부분이 물론 있겠지만, 먼저 생각하시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시고 결정하세요.
우리 가족이 행복함을 느끼고, 아들이 편협되지 않는 생각으로 건강히 잘 자라는 하나만으로 15년전 있었던 불편함과 힘들었던 점은 모두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한번 주제넘은 얘기로 글을 올리네요.. 다들 건강하고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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