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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교수의 ‘위안부는 일본군 성노예가 아니며 자원봉사활동’이라는 주장이 알려져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일제 식민지 지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많은 회사, 공장 등이 만들어지고 전화, 전기, 철도 등 문명의 이기가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제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근대 국가로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이미 대한제국 시기에 전화, 전기, 철도 등을 도입하고, 근대적인 회사, 공장 등의 설립을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즉 우리 스스로도 충분히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오히려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남북이 분단되어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회사, 공장, 철도 등 주요 시설들이 초토화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즉 경제적, 물질적 측면의 근대화 역시 사실은 해방 이후에야 이루어진 것이죠.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위안부, 징용 등을 강제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안부는 일본군 성노예가 아니며 자원봉사활동’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식민지는 쉽게 말해 노예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아프리카 노예들이 미국에 끌려와 노예 생활을 하면서 문명화된 인간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 즉 고대 국가 단계에 정체되어 있던 조선이라는 미개한 나라를 근대화된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문명화된 근대 국가로 발전시켰다는 주장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입니다. 일제 식민 사관의 대표적 이론인 정체성론에 뿌리를 둔 이론인 것이죠.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격에 비유하면 이 주장의 모순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노예 인간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민지 경험을 통해 근대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곧 ‘노예 경험을 통해 문명화된 인간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죠. 그리고 이 주장은 다시 ‘일본군 위안부는 자원봉사활동’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나라를 강제로 지배하는 ‘식민지’라는 범죄를 ‘근대화’라는 발전적, 긍정적 개념의 용어와 같이 쓴다는 건 의도적인 이름 짓기입니다. 일본군 위안소의 세계적인 공식 용어는 ‘rape center(강간 센터)'입니다. 일본군의 2차 대전 중 작태는 명백히 ’강간‘이었다는 뜻이죠. 즉 일본 우익세력이나 친일파들의 주장처럼 일본군 성노예를 자발적인 매춘부, 자원봉사자 등으로 부르는 것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