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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여행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34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로로
추천 : 15
조회수 : 1422회
댓글수 : 13개
등록시간 : 2016/01/13 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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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영화감상이나 글쓰기, 음주와 함께 몇 안되는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여행이다.
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찾게 된 취미들이다.
게임은 중학교때 보글보글 이후로 끊었고
스마트폰이 생기면서부터 사탕크러쉬나 애니빵 정도만 깔짝거리다
그마저도 예쁜 쓰레기 블랙베리로 바꾸면서 손을 뗐다
 
어릴때 우표수집도 해봤지만 그것도 잠시,
우표책은 지금 어디있는지도 모르게 잊혀갔다.
 
뜨게질도 해봤다. 하지만 넋놓고 뜨다보면 뜨게질 방향을 헷갈려
풀었다 떴다 반복하기를 수차례.
겨우 목도리 하나만 뜨고 더이상 뭔가를 뜨다간
목도리 대신 스트레스로 내 얼굴이 뜨든지, 세상을 뜨든지 둘중에 하나일것 같아 그만뒀다.
 
퍼즐맞추기를 해볼까해서 500피스짜리를 사서 일주일만에 맞추고
재미가 붙어 1000피스 짜리를 샀다가 2년만에 겨우 완성했지만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려 머리를 쥐어뜯다 때려치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때는 '그래 포켓볼을 쳐보자!!' 마음먹고
특별활동을 포켓볼반으로 가입했으나
당구장에 가서 요구르트만 먹다 끝났다.
 
이후 대학생이되어 사귀게 된 당구덕후 남자친구를 따라
일주일에 3일은 당구장에서 살았지만 별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구석 의자에 앉아 짜장면을 먹으며 남자친구가 점수를 뺄때마다
춘장을 휘날리며 환호성을 지르는게 다였다
그러다 내기 당구에서 이기는 날이면 누나 가슴에 삼천원쯤은 있는거라며
천원짜리 몇장을 건네받았고 그걸로 집에가는길 맥주 한캔 사먹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게 다였다.
 
혼자있는게 행복하고 조용한걸 즐기는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나섰다
 
화창한 봄이면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홍대 캠퍼스에 앉아 글을 쓰거나 
월드컵공원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배를 깔고누워
오징어를 씹으며 영화한편을 보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취미로 글을 쓰고 영화에 빠져살고 여행을 다녔던 것이.
 
그야말로 봄같던 나이 23살
그날도 화창한 봄이었다.
노트북 하나만 챙겨 홍대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그길로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향했다.
 
옷도 세면도구도 없었다.
가진거라곤 노트북과 알바비로 받은 몇푼 안되는 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뿐
 
용산역에 도착해 대충 시간표를 살피다 가장 빠른 표를 예매했다.
백양사역.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
 
그러다 목적지까지 가지않고
어딘지 모르는,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곳에서 중간에 내렸고,
그렇게 나의 첫번째 즉흥 여행이 시작됐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언제올꺼니?"
 
"오늘 못가. 지방 내려왔어."
 
"왜?"
 
"놀러."
 
"알았다."
 
첫날은 찜질방에서 잤다.
계란도 까먹고 찜질도 하고 노트북으로 글도 끄적거리다 하루가 지났다.
 
어디를 갈까. 그냥 집에 가자.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서울로 왔다.
하지만 날씨가 다시 내 발목을 붙잡았고
이번에는 청량리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강촌.
엄마에게 문자를 했다.
"오늘도 못가. 다른데 왔음."
"알"
 
그날은 하루종일 강촌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사람구경도 하고 핫도그도 사먹고 해장국도 사먹었다.
바이킹도 타보고 싶었는데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인지 운행을 안해서 타지 못했다.
 
거리에 있는 돌벽에는 '송이야 사랑해'라고 적혀있었다.
내 이름이다. 누구지?
또 남몰래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이런 집착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콧방구 한번 뀌고 맥주 한캔사들고 펜션으로 갔다.
 
방에 들어와 영화를 한편봤고, 글도 한편 썼다.
 
다음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문득 중요한 문제가 생각났다.
삼일째 속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것.
속옷을 빨아널고 벌거벗은채 침대에 누웠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뭔가 불안하지만 자유로웠다.
탈옥수의 심정을 체험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돼서 춘천으로 향했다.
남이섬으로가면 겨울연가같은 로맨스가 펼쳐질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로맨스는 개뿔.
남이섬은 배용준 입간판과 사진을 찍는 일본아줌마들로 가득했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숲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타조가 보였다.
무서웠다.
과자를 흩날리다 내 앞에 모여든 비둘기떼만큼이나 무서웠다.
그 길로 다시 남이섬을 빠져나왔다.
 
이왕 춘천에 온거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춘천 시내에 도착하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은 올꺼니?"
"아니."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30만원 남짓.
아직은 부자다.
갑자기 뭔가 사치를 하고 싶어졌다.
옷이나 악세사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뭘할까 고민하다가
위장에게 사치를 선물해주기로 했다.
 
조금 헤매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일식집 간판.
당차게 문을 열고 들어가 물었다.
"1인분도 되나요?"
"원래는 안되는데...음...들어오세요. 해드릴게요."
 
점원언니를 따라 다다미방에 들어갔다.
멋졌다.
 
그때 처음 먹어본 우메보시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쉬어터진 맛.
입에 넣자마자 추녀대회라도 참가한듯 온 얼굴을 찌푸렸다.
 
뒤이어 음식을 내놓던 점원언니가 엣훙풋푹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거 매실장아찌인데 되게 아이셔에요. 조금씩 드셔야될텐데."
 
빨리 말해주지.
뒤이어 나오는 코스요리에 소주도 한병 깠다.
천상의 맛이었다.
 
점원언니는 요리를 내어올때마다 한마디씩 물었다.
 
"근데 왜 혼자오셨어요?"
"혼자 여행을 와서요."
 
"왜 혼자 여행오셨어요?"
"혼자니까요.."
 
점원언니의 눈동자는 촉촉히 젖어들었고, 나는 소주와 함께 눈물을 삼켰다.
 
언니는 친절했다.
서비스로 일본과자도 하나 주셨다.
 
다 먹고 나오기 전 냅킨에 짤막한 감사의 메모를  남겼다.
"존맛."
 
PC방에 들러 잘곳을 검색했다.
통나무펜션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지만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오늘 자고 가려고 하는데요. 여자 혼자구요."
"아...혼자요? 왜 혼자오셨을까. 음...어...혼자 오시는 손님은 안받아서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은 아줌마는 약간 당황한듯했다.
그즈음 숙박시설에서 자살하는 뉴스가 나와서 그랬을까.
그 후에 전화한 또 다른 펜션에서도 뺀찌를 먹었다.
나이트클럽인줄?!
 
세번째 시도.
앞선 펜션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저 혼잔데요. 오늘 묵으려고 하는데 방 있나요?"
 
주인아저씨는 매우 친절했다.
"그럼요. 갑자기 여행오셨나보다. 세면도구는 갖고 오셨어요? 여기 새거 남는거 있으니 그냥오셔도 돼요."
 
그길로 택시를 타고 펜션으로 향했다.
어둑해져서 도착한 펜션은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조금있으면 근처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가 닫는다며 살것이 있으며 얼른 사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슈퍼로 향했다.
맥주 여섯캔과 마른 오징어 하나를 샀다.
 
오징어를 으적으적 씹으며 컴퓨터에 저장된 잔잔한 노래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
핵맛.
 
그렇게 밤이 깊었고, 다음날 펜션 아저씨의 친절한 배웅에 나의 첫번째 즉흥여행은 완벽히 마무리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급히 검색하고 갔던터라 펜션 이름도 위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만큼 행복한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
다시 간다면 그때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출처 그때 추억으로 몽롱해진 나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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