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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출발한 여행이었다. 숙소도 돌아올 티켓도 그리고 돈도 없이 달랑 부산가는 기차표 하나. 그것만을 가지고 부산으로 떠났다. 혹자는 이야기 했다. 관광을 하고 싶으면 여럿이 여행을 하고 싶으면 혼자 하라고. 여행을 떠났다.
보통 여행이나 관광을 가기 2주 전부터 준비를 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났다. 방학인데 집에만 있기 지친다는 이유 하나였다. 새벽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차에 타자마자 곧바로 잠들었다. 차창 풍경이라던 지 카트에서 사먹는 음료수 같은 것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목이 아프다는 사실 그 하나뿐이다.
잠에서 들깬 몸으로 비척이며 역 밖으로 나오고 느낀 첫 감정은 서울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서울역에 있는 건지 부산역에 있는 건지 일순 헷갈렸다. 그러나 이 감정은 역에만 해당되는 감성이었다. 역 밖으로 나오자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공사 중인 땅이었다. 처음으로 들리는 소리는 전도하는 할아저씨들의 목소리였다. 둘 다 나에겐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에 괜히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귀찮음을 하품과 함께 날리며 계단을 털레털레 내려오니 부산은 부산이구나 싶었다. 갈매기나 파도 이런 것은 없었지만 여러 조형물들과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무리,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여러 아이들, 그리고 관광버스 그제야 내가 서울을 빠져 나와 부산에 왔음을 실감했다.
내 첫 여행은 그런 곳에서 시작되었다.
지하철을 타려 하니 체크카드가 개찰구에 인식되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듣기론 지역마다 인식되는 티머니가 다르다고 했다. 이것도 그런 건가 싶었다. 민망함에 개찰구에서 서둘러 멀어졌다. 어쩐지 매표기계에 관광객이 북적인다 싶었다. 어디로 갈까 기계에 떠오른 역명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었기 때문에 멍하니 노선도를 바라보았다. 그때 서면이 보였다. 부산에 번화가 서울에 홍대와 비교된다는 서면의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서면을 가겠나 싶었다. 마침 배도 고픈 점심시간 때여서 식사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니터에 손가락을 얹어 서면을 클릭하고 돈을 투입해 표를 끊었다. 그리고 박장대소하였다. 서울에선 오래전 없어진 종이로 된 노란 지하철 표, 아버지가 철도청공무원이시기에 보다 더 익숙한 종이표. 나에게 더욱 추억진 종이가 내려왔다. 나는 웃음을 머금은 체 추억을 손에 들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부산의 지하철의 첫 느낌은 조용하다였다.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라던지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노랫소리도 모두 부드러웠다. 오죽하면 자리에 앉아 메모를 하다가 열차를 떠나 보내고 나서야 지하철이 왔음을 인지하였다. 다음열차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일어나 열차를 탑승하였다. 열차내 안내방송은 서울과 다른 게 없었다. 목소리마저 서울의 음성과 동일했다. 그러나 내가 탔던 기계가 노후화 돼서인지 어딘가 힘이 빠져있었다. 다행히 열차 안에는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서둘러 자리에 앉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어르신들만이 앉아계셨다. 순간 ‘어? 혹시 일본의 여성칸 같은 노인 칸에 내가 잘못탄건가?’ 싶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젊어 보이는 사람은 하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하나 말아야하나 안절부절 못하다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뭐라 한다면 그때 일어나면 되지뭐 라고 생각하고 메모지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너무나도 소심하여 역에 정차해 문이 열릴 때마다 나랑 동갑인 사람이 타지 않을까 미어캣마냥 고개를 삐죽 내밀고 둘러보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차에 탔다. 그제야 속으로 안도하고 서면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나쳤다. 정말…….안내음이 너무 작았다.
서면에 내렸다. 막상 내리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출구 안내표를 보다가 중부시장이라고 적힌 곳을 발견했다. 배가 꼬르륵 거리기에 장에서 기름에 구워지는 전이라든지 순대같은 시장음식이 고팠다. 날도 춥고 뜨끈한 어묵국물을 호로록 마시며 시장을 구경하는 맛이 있겠다 싶었다. 어느세 번화가인 서면을 보려던 목표는 사라지고 시장음식이 목적이 되었다.
중부시장은 컸다. 시간도 남겠다! 이리저리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발걸음을 마구 옮겼는데 너무 넓어 길을 잃었다. 가오리의 꼬리 부근에 뼈가 있음에 새삼 놀라고 사장 안에서 오토바이가 마구 돌아다닌다는것에 한번 더 놀랐다. 흔히 생각하는 시장의 활기라던지 호객행위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북적임,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흐름이 생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뒤에서 오는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시장 안에서 리어카를 끄시는 할아버님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며 시장을 구경했다. ‘이쪽으로 가면 먹을것이 있을 것 같아’ 하며 시장속 기름냄새를 줄곧 찾아다녔다. 그러나 내가 못찾은것인지 중부시장에는 먹거리가 없었다. 있다면 족발을 삶은 것 정도가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족발을 뜯어 먹으며 걸을만큼의 당당함은 없었다. 꼬르륵거리다 못해 아픈 배를 지니고 길을 걸었다.
예부터 부산음식이라 한다면 돼지국밥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밖을 돌아다녀 날씨도 몸도 추웠다. 네이버 지도를 키고 서면 돼지국밥을 검색했다. 가장 위에 나오는 집과 내가 있는 길의 거리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너무나 돌아다녔던지 내린 서면역이 아닌 부전역이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었다.
‘추운데......’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무 곳이나 가리키는 네이버 지도를 믿고 서면 역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그냥 그 복잡한 시장골목을 헤매다 발견하게 될 아무 돼지국밥집을 가기로 했다. 이곳저곳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딘가에 음식점이 있을것이란 기대를 위장에 채워 넣으며 버텼다. 그리고 외관이 깨끗하고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손님이 제법 있는 돼지국밥집을 발견했다. 세잎클로버 사이에 놓인 네잎클로버처럼 반가웠다. 무계획 여행속에서 행운을 발견했다. 이리저리 헤메인다면 어떠한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온 여행이기에 이런 헤메임 속에서 달가운 만남을 할 수 있었다.
출처 | 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