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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 11
게시물ID : mystery_11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르페시
추천 : 3
조회수 : 13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31 21:11:58

[고대문명 미스터리]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11편 

 


불길함의 상징 화성.

이너넷엔 이런 쥐괴물’ 화성인 그림도

있더라는놓칠 수 없는 아이템

 

 

아마도 이 글을 계속 읽어온 열분들은 은연중에 화성은 나쁜 넘행성 Z는 좋은 넘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을 거다그 이유는 우원이 행성 Z를 대재앙 전의 지구문명과 연관짓고 식민/혼혈 문명의 바탕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덕분에 화성은 지구/ Z 연합군과 태양계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숙적으로 그려졌다.

 

머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갔으니 사실이라고 치자하지만그래서 대재앙 후에도 인류는 항상 행성 Z와만 관계했던 걸까물론 Z인은 달에 진주했기 때문에 가깝게 있고 화성인들은 이아페투스에 있었으니 열라 멀리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설정이다또 이들이 대재앙 직후에는 굳이 지구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점도 나름대로 설명했었다.

 

그러나 수천 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까지 그 상황이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거다달이나 이아페투스가 아무리 크고 잘 만들어진 우주기지라 한들 결국 인공물이다진짜 흙과 돌과 풀과 물로 만들어진 행성의 생명력생태계 시스템이나 자정능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었을 리 없다시간이 지나고 인구가 늘어나고 그 속에서의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리소스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게다가 태양빛이 충만한 표면이 아닌 구조물 내부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생물의 자연스러운 서식 조건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달과 이아페투스 표면에 존재하는 기계문명의 흔적을 좀 더 살펴보고 넘어가자아래는 달 표면에서 찍힌 탑 내지 성의 사진이다.

 

 

 

 

이런 구조물은 달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아래의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하나의 탑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거다달 표면 곡률과 비교할 때 높이는 수 킬로미터로 추정된다이런 것을 자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기자의 피라미드도 그냥 산이다

 

 

 

 

밑은 위와 유사한 (어쩌면 동일한탑의 사진이다디테일이 보이지 않도록 NASA 에 의해 미리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거대한 탑이 아이페투스 표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태양계 규모의 교신을 위한 안테나였을까…?

 

 


 
 

암튼이렇게 삭막한 인공행성에 살던 그들은 결국 지구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옛 고향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움을 갖춘 푸른 행성… 태양계에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살아있는 별이제 그런 지구의 자원을 활용하고 그 속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가는 것은 언젠가는 바닥날 우주기지의 자원과 그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대재앙 수천 년 후 이집트와 그 모태의 문명에 영향을 준 자들은 행성Z인이었을까 화성인이었을까이를 밝혀낼 어떤 단서라도 남아 있는 것일까.

 

초고대 문명의 기원에 대해 그래험 핸콕로버트 보벌리처드 호글랜드 등은 화성에 이집트 기자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있고화성의 인면암’ 또한 스핑크스의 얼굴과 닮았기에 이집트 문명은 화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하지만 결론과 무관하게 우원은 그런 식의 근거들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남아있는 외계 유적과 지구상의 유적과의 외견상의 유사함과 소위 성스러운 기하학(Sacred Geometry)’ 이라고 불리는 지형 지물간의 위치나 각도들이다이 각도들이 지구상의 고대 유적지들과 배치 면에서 일치한다는 주장인 거다그러나 이는 일견 그럴싸하지만 자연이 만든 우연일 여지도 높다.

 

예컨대 구 안에 정사면체를 채워넣었을 때 구와 정사면체의 밑면이 만나는 지점은 북위와 남위 19.5도다.이 각은 소위 성스러운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며 이스라엘 국기의 도안이자 유태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 도 이를 의미한다고 한다(모세의 비밀스러운 지식이 떠오르는 부분)

 

  

 

 

 

 

그러나 19.5도에 성스러운 비밀이 있고 없고를 떠나아래와 같이 울퉁불퉁한 지형에 직선을 덧입히고 많은 숫자들(이 경우는 이 지형이 존재하는 화성의 위도)와 다양한 수학 공식을 대입한 후 그 속에서 19.5도를 찾는 작업은 좀 문제가 있다이런 식으로는 연구자가 보고 싶은’ 숫자라면 뭐든지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경우도아주 특별하고 자연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위의 탑 사진들이 그 경우외에는 광선과 낮은 해상도가 만들어낸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70년대 바이킹에 의해 촬영된 인면암.

당시의 해상도와 기술로는 마치 인간의

얼굴같이 보였다.

 

 

 

글로벌 서베이어가 90년대 말에 촬영한 인면암.

특이한 사각 해자 구조는 보이지만인간의 얼굴

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한눈에도 무리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대표적인 예왼쪽 흐릿한 화성표면의 지형에

선을 그리고 색을 넣어 이집트 공주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런 불충분한 물증들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적문헌적인 증거들인데이런 점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술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명확한 사실 중 하나는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옛 지명 엘 카이라(El Kahira)‘가 바로 화성이라는 의미란 점이다왜 이집트의 수도 이름이 굳이 화성이 되어야 했는지는 반드시 거기 따른 역사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세종시를 아무 이유도 없이 목성시로 부를 수는 없는 일 아니냐머 수원을 삼성시로 바꾸자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또 한가지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아래와 같은 언명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로마 제국의 아버지가 다름아닌 화성이라고 공언한다

(The Roman people profess that their father and the father of their empire was none other than Mars)

 

 - 초기 로마의 역사(The Early History of Rome). T. Livius .

 

 

리비우스는 BC 59년에 태어나 AD 17에 죽었으니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를 살았고 유명한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보다 한세기 정도 이른 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로마의 전성기를 살아가던 지식인인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황당한 말을 내뱉을 리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는 문명적으로 연장선상 하에 있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화성을 죽음의 별’ 이라고 불렀다이건 어쩌면 이집트인들이 화성의 불행한 역사를 직접 전해 들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은 아닐까한편 그리스와 로마에서 화성은 항상 전쟁의 신이었고(고대의 전쟁은 지금과 같은 참혹함과 잔인함의 이미지 외에 영웅적인 풍모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빌로니아에서는 네르갈이라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왕위대한 영웅큰 집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이렇게 보면 전쟁의 신 마르스는 불길한 재앙과도 결부되지만이를 극복하고 운명을 대적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이건 철저하게 부정적이라고 할 사악함같은 느낌과는 좀 다른 것이다.

 

이 맥락에서는 이제 고대 이집트에 잊혀진 기술과 지식을 전수한 이들은 오히려 행성 Z 보다는 화성인들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재앙 이전 인류와 보다 긴밀하게 관계한 것은 Z 였다그러나 대재앙 후 이집트인들에게 먼저 접촉한 것은 화성인들이었던 거다.

 

왜일까그것은 행성 Z인들에 비해 화성인들은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거대한 달을 보유하고 있는 Z인들은 생활에 더 나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그 속에서 농사도 짓고 뭐든 할 수 있었다그러나 화성인들은 춥고 먼 토성 궤도에 작고 고장난 자폭머신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모성인 화성이 남아있긴 했지만 초토화된 표면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거칠기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지구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멸망의 충격을 어느 정도 추스리고화성의 지하에 기지도 하나씩 건설해 가면서 수천 년간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도 조금씩 지구에 가까워졌을 거다그리고는 결국 을 자처하며 이집트의 초고대 문명을 세우고기술과 건축술을 전수하고파라오의 절대왕정을 지원하고모세와 교류하고그에게 강력한 무기를 줘서 유태인들을 빼내오도록 한다그런 것을 보면 화성인들은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다소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인류는 행성 Z와 교류하고 있었는데 대재앙 후라고 해서 쉽사리 화성인들과 교류하는 게 가능했을까예컨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기초는 이미 대재앙 전 Z의 문명적 영향하에 만들어졌다고도 우원 스스로 기술했었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의 기초는 대재앙 직전인 기원전 10,500년경의 오리온좌에 맞춰져 있고이것은 행성Z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그러나 피라미드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기원전 2500년경이다그렇다면 Z인이 만들어놓은 기단 위에 화성인의 기술과 영향을 통해 피라미드를 마저 세웠단 말인가?

 

이것의 논리적인 답은 하나 밖에 없다그것은 행성 Z와 화성의 문명이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바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역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던한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문명이었던 거다지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자).

 

그럼 행성인들은 지구에 무관심했던 걸까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이제 지난 10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Battesimo di Cristo' by Aert de Gelder (1710)

18세기에 그려진 예수의 세례장면에 

UFO가 등장하고 있다. 


 

모세로 대변되는 경직되고 잔인하고 엄중한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유대에 한 젊은이에 의해 변화의 단초가 던져졌다. 

 

그는 모세가 만든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었고, 모세만큼이나 베일에 가린 삶을 산 인물이었다. 10대 초반부터 죽기 3년 전인 서른 살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고일설에 따르면 중동과 인도 지역 등을 다니며 배움을 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성장한 유태교의 세계관과는 크게 다른 어떤 것을 갖고 돌아왔다경직되고 보수적인 율법으로 묶여있던 시절에 혁명적이라고도 할 사랑과 용서라는 급진적 개념을 들고서 말이다.

 

물론 비슷한 관점을 설파한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다그러나 그의 가장 큰 차이는 말과 가르침만이 아니라, 모세의 것을 능가하는 기적’또한 갖고 돌아왔다는 점이다그 기적의 성격도 모세의 경우와는 반대였다모세의 기적이 파괴와 죽음(전쟁화성)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의 기적은 치유와 부활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상반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이 불가사의한 기적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 성향이 향후 끊임없이 충돌하며 세계 역사를 실제로 끌고 왔다는 점.

 

그렇다. 모세와 예수의 '신'은 실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비근한 기술과 능력을 가졌으되 가치관을 달리하는 두 신적 존재.

 

예수는 모세와 화성의 가치관이 지배해가는 지구 문명의 방향을 바꾸가기 위해 나타난 행성 Z의 제자였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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