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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년동안의 시간과 나의 다짐.
게시물ID : gomin_16169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qwer8989
추천 : 1
조회수 : 50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4/15 20:14:16
반말로 적겠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안보셔도 됩니다.
 
21일부터 다시 출근을 한다. 건설현장 사무실 경리로.
생각이 많다 요즘. 그래서 적어보는 이야기.
 
2014년 난 꿈많은 아이였다. 내꿈은 드라마 제작PD였다.
지방대 법대를 겨우 나온 나에게 이길은 어떻게 가야할지 몰랐고
난 서울행을 택했다.
2013년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하고도 취직은 쉽지 않았다. 처음 방송아카데미를 수료한 후에 그냥 취직될 줄 알았던 난 다시 좌절했고
수십번의 이력서 끝에 신생 조그마한 제작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 제작사인줄 알았다.
그냥 조그마한 신생 회사였다. 이것 저것 다하는.
들어가니 직원은 대표, 경리, 영화PD님, 드라마 감독님이 다였다.
사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경리랑 나 뿐이었다. 정확히 오피스를 다룰줄 아는 사람이 경리랑 나 였다.
내가 일을 배울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두달을 그냥 시키는건 다한거 같다. 물른 지금와서 생각하니 개판이었다. 결과물이.
그래도 그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들어간 첫날부터 11시까지 야근하면서 일을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2달이 흐르고 드디어 내 사수가 들어왔다. 나랑 띠동갑차이의 본부장님이었다.
난 그분에게 일하는 머리를 배웠다.
계속 야근이었다.
인턴월급 120만원에 4대보험 안되고, 연차 이런거 없고.
3개월 후에는 월급 140만원에 4대보험 없고 연차 없고, 격주 토요일 출근이었고, 점심은 각자 해결, 8시 반 까지 출근에 최근은 새벽 2시 빨리 간다 싶으면 9시 10시.
말뿐인 제작사였다. 실제로 하는 일은 없었다. 영화PD님이 영화 공동제작을 가지고 와도 대표선에서 거절하기 일쑤.
이런거 저런거 다하지만 실제로 성사되는 프로젝트는 없고. 난 제안서 쓰기 바빴다. 하루에 제안서 3개씩. 대표는 대충 만들라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대충은 대충이 아니었다.
본부장님이 들어오고 실제로 프로젝트들이 몇개 시작되고 야근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새벽 2시, 11시, 12시, 나의 귀가 시간들이었다.
원래 6시 퇴근이지만 뭐. 그런거 없었다. 우린 저녁을 안먹고 일했다. 저녁먹을 시간에 일찍 마치고 집에 갈려고, 그래서 그나마 10시 였다.
나도 내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고, 이땐 이게 정말 더럽게 하기 싫었다. 내가 하는 일은 대기업 사보 제작 총괄이었는데 난 사보만들려고
서울온게 아닌데 싶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반드시 하고 싶은거 할수 있는게 아닌데 그게 사회생활인데 그때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여차여차 이끌어 가다가 6개월째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일을 그만 뒀다. 아니 버티지 못했다. 이후에 멘탈이 너무 망가져서 스트레스 치료를 엄마 아빠 몰래 받았다.
치료 상담사가 내 업무량을 듣더니 '이정도면 업무과다인데요?'라고 했다.
막내사원으로써 온갖 잔심부름을 물른, 내프로젝트 관리, 그외, 던져주는 일들을 전부 다했으니깐. 하루에 와꾸잡는 기획서만 3개일때가 있었고.
못하면 짜증을 들었다. 새로 경리로 온 팀장님이 나보다 나이가 많으셔서 ,,,캐스팅 일하다 오신 분이셨는데 일이 힘들어 그만두고 회계자격증을 따서 신입경리로 들어오셨다. 난 캐스팅일을 배워보고 싶은 나머지
잘보일려고 그분 일도 많이 도왔다.. 그러니 나는 언제나 동동거렸고 일에 치였다. 그분이 해야 될 '손님 차 접대'도 어느순간 내차지였으니깐.
뭐 내가 하고 싶었던 드라마일은 웹드라마?? 만들때 잠시 서포트로 하긴 했었다.
 
그러고 난 딱 1달만 쉬고 다시 홍보대행사를 가던지 어딜 가던지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 사이 갑상선 저하증과 갑상선 비대증을 앓던 나는 ' 미관상 안좋으니 수술을 하자' 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수술을 결심하고
원래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 '저 비대증 수술할래요, ' 라고 내 생각을 전했다. 어차피 갑상선 호르몬제는 평생 먹어야 되고 그럴 바에야 비대증 수술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병원에서는 로봇수술? 이 비싸지만 흉터도 없다고 로봇수술을
권했고, 서울행을 권유했다. 그리고 나와 엄마는 서울로 갔다. 의사를 만나고 ' 아직 젊으니 갑상선을 최대한 살리고 , 유두쪽으로 로봇을 넣어서 수술하자, 그리고 고주파 열치료 할수 있음 수술말고 고주파열치료를 하자' 라는 상담을 하고, CT를 찍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실로 향하고 검사를 하는데 의사가 말하더라. ' 음..갑상선이랑 주위 림프절에 석회질이 보인다. 석회질이 보이는 경우는 2가지다. 염증이거나 암이거나. 아무래도 미세침검사를 하자 수납해라'
난 해맑게 나갔다. '엄마 미세침 검사하제'
 
일주일 뒤 내가 받은 판단은 '갑상선 암'이었다. 양쪽 림프절까지 이미 전이가 되었고, 오른쪽은 침샘 바로 밑까지 갔다. 이정도면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 26살 가을이었다.
내가 한 말은 '아직 저 일도 해야되고 결혼도 해야되고..' 이거였다. 엄마가 불안하다고 같이 가자던 아빠는 ' 이거, ㅇㅇㅇ환자꺼 맞습니까?'
의사는 곧장 자기 스케줄을 확인했고, 스케줄이 안되자 나를 이비인후과로 토스 시켰다.
이비인후과에 가자 하는 말이 ' 이정도면 자각증상 있었을껀데?'
최대한 빠른 스케줄에 수술이 잡혔다. 판정받은지 딱 1달째 되는 날 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전날 솔직히 무서웠지만 내가 울고불면 엄마아빠가 더 슬프니깐 담담하게 굴었다.
'좀 후달리네잉~ 갔다올께!!!' 이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9시간 반동안 수술했다고 한다.
 
흉터가 없도록 로봇수술하자고 했던 나는  오른쪽 귀밑에서 목을 가로질러 왼쪽 귀밑까지 33센치 흉터가 생겼다.
보통은 접착제로 붙이고 나오는데 난 길어서 꿰매고 나왔다.
수술하고 이틀뒤부터 너무 아팠다. 그래서 기억이 딱히 없다. 림프절 수술하면 아프다더니 존나 아팟다 .그냥 진통제빨로 계속 잤던거 갔다.
어깨 위로는 움직이지도 못했으니깐.
 
배기관을 양쪽 어깨에 꼽고 나왔는데 한쪽은 나오는 액이 멈추질 않아서 일주일 후 다시 재수술을 했다. 2시간.
 
수술하고 딱 보름만에 퇴원해서 집에 올 수 있었다.
몸이 좀 회복되고, 흉터치료가 시작되었다. 한달이 되기 전부터 시작되어야 효과가 있다고 해서 수술하고 첫 외진때부터 시작했다.
지금도 흉터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난 중증환자로 분류되어 의료보험으로 병원비가 졸라 싸지만 흉터치료는 보험적용이 안된다. 그래서 돈을 들이 붓는다.
엄마 아빠는 항상 이야기 한다 돈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수술후 딱 한달쯤? 동위원소치료가 시작되었다. 보통 주사를 맞고 약을 끊고 두가지방법이 있지만
내 교수님은 약을 끊게 하셨다.
난 진짜 살면서 이때가 제일 힘들었던거 같다.
간호사가 '수술후 한달이 아직 안되셔서 약을 끊으실꺼라서 좀 많이 힘드실꺼에요.' 진짜 힘들더라.
딱 그냥 몸이 심한 몸살났을때 몸으로 한달을 지속한다.
불면증, 추위, 식욕부진, 밥맛은 없는데 살은 찐다. 두통, 근육통, 계속 잠이 온다. 온몸이 무기력하다.
이상태로 한달을 버텼다.  부작용이 몇가지 있는데 부작용이 다왔다. 나는.
식이교육을 받는데, 받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병원에서 먹었던 죽을 다 토했다. 난 한번도 술먹고 토한거 빼고는 토한적이 없다.
그리고 차단실 같은 곳에 들어가 2박3일을 있다가 나왔다.
 
이후 여행도 다니고, 놀고, 하면서 부서진 멘탈과 몸을 회복해갔다.
그러다가 문득 뭐라도 해야 겠다 싶어서 영어학원도 다녀보고, 국비교육으로 컴퓨터 학원도 다녔다.
물른1달에 한번, 2달에 한번, 3달에 한번 식으로 병원에 왔다 갔다 했다. 서울로.
 
작년 봄에는 또 생리통으로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로 산부인과에 가니 잘 모르겠다고 해서 '그럼 서울에 병원 다니니깐 서울갈께요'
해서 서울로 갔다. 서울에 가니 이쪽 병원 'ㅇㅇㅇ교수를 찾아가라' 해서 서울에서 떼어주는 진단서 들고 찾아가니
왼쪽 난소에 혹이 뭐 어떻다고 하더라. 잘 기억이 안난다.
 
중간에 작년 여름에 또 유방에 탈이 생겨 맘모톰으로 혹을 10개인가 떼냈다. 의사가 하는 말이 난 유방암발생률이 남들보다 3배가 높단다.
유전자 변이 검사를 하고 또 치료를 하면 시간도 돈도 노력도 많이 들고 불임률도 높아진다고 그냥 방법이 없단다.
꾸준히 부지런히 검사하고 발견하는 족족 떼야 된단다.
 
생각해보니 내 갑상선도 내 대학시절로 올라간다.
대학시절 문득 목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 와서 '엄마 나 목을 누가 누르는거 같애' 라고 하니깐
엄마가 놀라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갑상선 저하증으로 인한 비대증이었다. 갑성선 저하증이니 호르몬을 더 만들어 낼려고 갑상선이 커지는 거였다.
물른 수술하고 나서 보니, 감상선 안에도 암이 몇개있었고, 림프절에도 암이 여러개, 부갑상선도 색깔이 안좋아서 이식수술하고 였지만.
 
뭐 그때도 암이 있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열받은 아빠는 의료소송을 고민하셨지만 이길 방법이 없는지라 그냥 포기했다.
 
그렇게 난 꼬박 1년 반을 놀았다. 그중 1년을 아팟고.
그리고 21일, 아빠 소개로 받은 건설사무소에 출근한다. 1년 계약직 경리로.
물른 내꿈과는 멀다. 아주.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더 놀수는 없다.
 
올해 1월 2차 동위원소 치료가 끝나고 2월 '1년후에 봅시다'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저 일 다시 할려고 하는데 해도 되죠?' 라고 물었다
'당연하지' 라는 대답을 듣고는 미친듯이 이력서를 넣었고,
여기저기 면접도 봤으나 떨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아픈곳이 많고 하니깐 그냥 집에서 다니라고 하는데 글쎄, 난 아직 철이 없는지 꿈을 쫒고 싶다.
돌이켜 보면 후회도 된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난 노는 시간이 많았으니깐.
치열하게 살지 못했으니깐.
 
다짐한다. 1년동안 놀지 않을꺼다.
운동해서 그동안 쪘던 살도 뺄꺼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할꺼다. 공부도 열심히 할꺼다. 책도 많이 읽을꺼다
9to6 니깐. 중간에도 일없으면 공부해도 된다고 했으니깐. 자기계발 할꺼다.
그리고 다시 도전할꺼다.
그땐 나이가 많아서 안될려나?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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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이 많아져서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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