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분이 게시판에 쓰셨던 전한 삼걸 중에 한신의 어이없는 몰락에 대해서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뭐... 한신이 무슨 행동을 해서 그런 결과를 맞이했고,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다 아시리라 생각하고 부연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언젠가 그런, 이제는 거의 당연시 되는 어처구니 없는 한신의 정치력 무능에 대해서 저도 그러려니 하다가... 문득 한가지 음모론 같은 것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일단 그 음모론이 뭔지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그것을 떠올리게 된 몇가지 근거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합니다.
1. 괴통이 한신에게 독립을 권하는 내역은 극비에 해당하였을텐데 사마천은 그것을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상세하게 대사를 엄청난 장문으로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 사마천은 그 대담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2. 괴통은 한이 천하 통일을 한 이후 체포되었다가 당당하게 자신을 변론하고 석방되었다. 당시 개국 공신들을 팽하던 시기에 다른 일도 아닌 그런 모략을 세운 괴통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어떻게 사면될 수 있었을까?
3. 소하는 탈주하는 한신을 직접 달려가서 다시 불러왔다. 그런데, 당시에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는지 유방은 소하의 도주를 의심하였다. 천하를 손바닥 위에 가지고 놀던 소하가 왜 그런 사소한 통지도 없이 한신을 데리러 달려갔을까?
4. 그렇게 기용한 한신에 대해서 제거에 대해 가장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소하였다. 그래서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소하에 달렸다는 고사가 생기기도 했지만... 유방의 재가도 없이 여후와 함께 제거를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었나?
5. 초한쟁패 이전에 전국시대의 마지막 양상은 사실상 조와 진의 대립이었다. 진은 후방기지로서 촉의 확보를 통해 이미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고, 조는 북방의 대를 기반으로 한 군제 개혁을 통한 병력 확보를 통해 진과 대항했다. 간단히 말해서... 전국시대 최후의 패권 중심지는 진과 조였는데, 소하는 당시 진에 영역에 머물러 후방 지원을 하고 있었고, 한신은 조를 평정했다.
6. 소하는 전한 건국 이후 삼걸로 불리며 개국 1등 공신과 상부의 자리에 봉해졌다. 하지만... 유방은 그를 한신과 장량과 함께 묶어서 자신의 성공비결이라고 했는데... 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장량도 이후 경포와 팽월의 회유로 인해 전한 초기에 유씨가 아닌 왕이 벌이는 소요에 대해서 다소 입지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과 소하를 엮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비교 대상이 중간에 항우와 결별한 범증을 언급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심하게 무리수라는 것은 알지만... 문득 이런 음모론이 머리 속에서 떠오르더군요. 그건 바로...
'어쩌면, 소하는 한신과 은밀한 결탁을 하고, 실제로는 천하삼분의 음모의 중심은 소하가 아니었을까?'
네... 물론 제 정신이냐고 역정 내실 분들이 많은 거 압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망상이라는 전제하에서 위에 의문들을 이런 식으로 풀어보았습니다.
1. 괴통의 진술은 당연히 괴통 본인이 증언했다. 왜냐고? 괴통 본인이 사실은 한신의 측근이 아니라, 유방의 측근이었으니깐. 괴통은 유방의 지시를 받아 후방에서 음모를 꾸미는 소하의 무력을 배제하기 위해, 그의 사람이 유력한 한신에게 배신을 먼저 선수쳐서 논하게 한 것이다.
2. 당연히 유방의 지시를 받아 한신에게 먼저 배신을 유도했으니 처벌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니 역이기를 삶아죽이는 고육계, 실제로는 당사자의 합의가 없으니 버림수로 쓰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사면된 것이다.
3. 소하의 입장에서는 기밀리에 한신과 논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우 측에 있다가 유방 측으로 온 당시 직급이 낮은 한신은 유방 측이 북상하리라는 것을 몰랐고, 그래서 떠나려고 하자 자신의 무력을 담당할 한신의 이탈에 당황한 소하가 달려가서 그를 붙잡아오고, 그에게 이후 계획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직급을 올리라 권한 것이다.
4. 당연히, 한신이 어리버리하게 초왕에서 회음후로 전락하여 무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이 몰락하자,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기에 여후의 핑계를 댔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제거한 것이다.
5. 진과 조의 결탁하여 유방의 뒤를 치면 항우의 초와 대항하는 유방은 확실하게 몰락한다. 그래서, 소하는 한신에게 북방의 진격 및 관련 보급을 맡겼고, 조가 평정되자 진조 연계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제의 공격이 역이기를 죽이고 가속화되어 버렸고, 소하는 한신에게 브레이크를 걸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점은... 소하가 기반으로 삼아 보급을 하던 촉은 진의 여불위의 유배지이다.
6. 유방이 소하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성 메세지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이 그 이후로 동향에 소하와 같이 유방 측에 합류해서 실제 공이 크긴 하지만 다소 소하에 처지는 평을 받는 조참이 공신 순위 1위에 언급되다 기각되는가 하면, 유방의 사후 혜제와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당사자는 소규조수라는 말로 소하의 정책을 유지한다는 색깔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치적 라이벌이라 여겨지던 사람이 굳이 왜? 어쩌면 소하에게는 그런 미화가 사실은 비아냥으로 보이는 과실이 있지 않으면 그러기 힘들다.
뭐... 다시 한번 얘기해두지만 개인적인 망상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유방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저런 시나리오가 배후에 있었다면 섬뜩하기 이를때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한때 전한 삼걸이 사실은 유방의 공신이 아닌, 통수를 치려던 담합된 세력인데 그들 사이의 내분과 다소 처지는 평가를 받는 조참, 주발, 진평 등의 활약으로 그걸 막아냈다는 식의 팬픽을 써볼까 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