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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으로 풀어본 전한 초기 사건에 대한 정치적 실체
게시물ID : history_261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리리리리맇
추천 : 0
조회수 : 7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5/27 09:48:09
전한 삼걸에 대한 음모론에 대해서 망상을 해보다 보니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한 초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걸 표면상에 드러난 사실과는 별개로 정치적 관점에서 음모론을 제기해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시는 분은 공감하시겠지만, 실제로 정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윤리, 도덕, 정의, 정상적인 인간관계와
무관한 철저한 계파 논리와 주도권 다툼, 그리고 권력욕으로 해석해야 답이 보이는 행보들이 많죠. 그걸전한 초기에 벌어진
상당히 요란했던 사건들을 토대로 한번 망상을 담은 음모론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역시나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접한 망상이겠지만일종의 창작의 일환이려니 하고 한번 봐주세요.
 
 
- 제나라 평정
한신의 제나라 평정은 유방의 입장에서 보면 의도된 모략. 전국 7웅의 상위권 국가였고, 악의와 항우가 두들겨도 안무너진 제나라가
곱게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언젠가 터질 내전의 연기에 불과함. 그래서, 역이기를 보내 제나라를
항복을 유도해 안심시킨 다음 한신에게는 괴철을 통해 공격을 결심하게 유도한 모략임. 유방의 입장에서는, 한신의 손에 제나라가
무너지면 제나라를 쉽게 손에 넣으면서, 명령 불복종과 역이기를 죽게 만든 한신을 음해할 여지가 생김. 한신이 진다고 해도 그건
한신의 독단으로 치부하고, 이면에서 강화를 재개하고 패전한 한신을 그 여죄를 물어 징계하면 됨. 어느 쪽이든 손해볼 것 없는 일
 
- 혜제 즉위
혜제가 적장자이기는 하지만 태자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에 대해 고조가 망설이다가 중신들의 지지를 보고선 마지막에 마음을
정리하게 되는데사실은 유방이 혜제를 불안하게 여긴 이유는 그가 진나라의 호해처럼 중신과 외척들의 손에 휘둘릴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임. 그말은 반대로 해석하자면, 중신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치단결하여 가장 만만하면서 여후의 적자라
정통성이 있는 혜제를 밀었음. 대외적으로는 이 책봉은 여후와 척부인의 정쟁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여후를 바지사장으로
내민 주발, 조참, 진평, 관영 등의 살아남은 중신들이 자기 의지대로 신권 강화를 위해 벌인 공작임. 척부인은 사실은 여후가 아니라
중신들에게 반대한 괘심죄로 유방의 사후 인간 돼지가 되버린 것임.
 
- 소규 조수
소하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된 조참은 업무 태만을 저지르면서, 그걸 지적하는 혜제에게 자신은 소하만 못하고 폐하는 선황만 못하니
그들이 만든걸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소규조수의 고사를 논함. 그런데사실은 조참은 그 말의 표면에 드러난 전관의 방침을
유지하자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면의 경고를 한 것임. 그가 혜제에게 말하고자 하는 진의는 유능하고 열심히 일한 공신도
의심당하고 숙청하는 분위기에서, 그보다 못한 후계자인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뮤능하고 게으르며 당신의 권좌를 유지만 해주면
그만인 신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돌려서 까면서, 유방처럼 탄압을 지속할 경우 자신이 그저 소하가 만든 것을 따르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중을 전한 것임.
 
- 목특 사절
혜제 시기에 목특은 여후에게 구혼의 뜻을 담은 모욕의 의사를 전한 적이 있음. 이 사건에 대해서 지나친 공신 숙청과 외척의 횡포로
약화된 한나라의 부실함에 대해서 비난을 많이 당했는데사실은 이건 여후가 의도한 사건일수도 있음. 고조의 사후 홀로 남은
황후에게 적성국에서 그런 모욕을 보낸 상황에서, 현대라면 무능한 여자 지도자 탓이라 욕할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모욕당한 황후를 중심으로 반 흉노에 대한 의견이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음. , 여후는 적국의 소요를 과하게 과장하며 자신을
중신으로 한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한 것임. 그 증거로서, 그에 분개해 흉노에 공세를 펴겠다는 번쾌의 주장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항우의 부하였던 계포가 반박하며 격하게 논파함. 실제 공세로 이어지고 싶진 않은 상황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한 번쾌의 말을 기존
공신들이 나서긴 부담스러워 비교적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는 계포에게 총대를 매게 하여 견제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상황임.
 
- 여씨 토벌
여후의 사후 공신들에 의해서 여씨 일족에 대한 신속한 토벌이 완료됨. 사가들은 이 과정에서 여씨 일족이 정치적 실책으로 평판을
잃었다는 식으로 외척의 세도를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이 거사는 여후의 배후에 있던 공신들이 권력의 연착을 위해서 저지른 행보.
왕릉은 당시 동료들에게 여씨의 세도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하였고, 동료들은 그것에 대해 더 큰 뜻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사실은 비난을 한 동료들, 조참, 주발, 관영, 진평 등이 실제로는 여후와 같은 파벌에 실질적인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그런 발언을 할 수 없었음. 하지만, 여후가 사망한 이후 더는 다른 여씨 일족을 자신의 파벌에 바지 사장으로 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쓸모가 없어진 여씨 일족을 자기들의 손으로 제거한 것임. 주발이 여씨를 토벌하고자 하는 자는 왼쪽 어께를
드러내라고 병사들에게 명했다는 일화에서 보듯이, 그들이 실질적인 군을 장악하고 있었고 얼마든지 제거가 가능한 상황이었음.
 
- 문제 즉위
여씨 토벌 이후 새로운 황제로 유방의 서장손이고 토벌에 공이 있는 유양이 아니라 4남인 유항이 즉위함. 그가 선택된 이유는 다름이
아닌 유항의 모친인 박씨가 원래 위왕 위표의 첩이었다가, 유방에게 끌려와 유방의 첩이 되어 유항을 낳았다는 점이 작용했음.
, 정통성이나 출생에 대해 시비가 걸릴 여지가 많으므로, 오히려 이전에 즉위했던 혜제나 두명의 소제처럼 중신들의 권력에 대해
강력한 견제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옹립한 것임. 그래서, 실제로 공신들의 횡포는 문제 이후 경제까지 이르러 그들 공신들과
새로운 관료인 조조와의 대립으로 이어졌고, 중신들은 그 와중에도 정쟁의 화살을 제후왕들에게 돌려 오초 7국의 난을 유발하고
제후왕을 평정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함. 실제로 오초 7국의 난의 지휘관은 주발의 아들인 주아부였음.
 
 
요약하자면실제로는 공신 숙청의 토사구팽으로 악명을 떨친 한고조의 행동은 충분히 그 당시의 중신들의 영향력이나 행보를 보면
그러지 않고서는 나라가 유지되지 못할 만큼 강력했고, 그걸 전한 3걸과 이성의 제후왕들만 겨우 진압하고 한고조가 세상을 뜨자
수면에 가라앉아 있어 보이는 위에 언급한 공신들은 여후를 표면에 세워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나중에 여후가 죽자 여씨들도
자기 손으로 치워버린 다음 문제와 경제로 이어지는 수십년간의 영광을 확보했다는 것이겠죠.
 
문득 다소 허망한 마무리를 보여준 전한 3걸과는 달리 위에 언급한 다소 초한지에서는 쩌리로 묘사되는 인물들그들도 틀림없이
한 제국을 세우고 대륙을 통일한 굇수들이고 그런 그들이 모략을 꾸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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