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있는 사람을 접할 때면, 늘 스스로의 중요성 강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게시글은 그것과 다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의학적 이야기를 섞고 있기 때문에 돌팔이 처방과도 같습니다.
제목에 낚여서 못 볼것을 본 사람들에게 이 게시물을 추천하지 않으며,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을 추천합니다.
검증과 전문성이 없는 글이자, 개인이 상상한 기록물이니 비관심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흔히 통제되는 삶을 자신한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것이, 모두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 때가 있다. 또한 조언자는 흔히 눈에 보이는 고통에 몸부림 치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고통은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타인의 마음에 쉽게 상처 입힌다.
여기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고도 나도모르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움직이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하고, 건강과 생명등등 모든 것을 잃어 버리지만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위에 제시된 사람과 자신의 차이를 되돌아 보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어디에 속할까. 그나마 위안이라면 당사자의 속도 모르고 대부분 비난할수 있는 위치라서 대부분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의 대 다수가 위의 양쪽 끝을 달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는 돌아가는 것일 것이다.
그 양끝을 달리는 사람들중에 해야할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고생하는 것들중에 말로써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동시에 행동이나 운동에서도 그것들은 흔히 통용이 되고 있다.
의외로 사람은 생각하면서 실시간 판단하고 사는 것 같으나, 건강하지 못할 수록 게임의 자동사냥 마냥 움직인다. 다른 점이라면 생존을 위해서 순간 순간 지시가 가능하고 신체의 반응에 따라서 바꿀 수 있지만, 점점 생각하는 폭이나 시간이 짧아진다.
앞서 말했듯이 반사신경에 점점 몸을 맡기는 것이고, 흔히 사람을 인식할 때 통제 받지 않는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에 거부감이 들 뿐이다.
동시에 몸에 문제가 많을 수록 외부로 부터 받아들이는 정보가 적어지고, 내부의 문제에 생각은 점점 짧아지게 된다. 한마디로 생각이 짧은 것이 아니라 고통이 긴것이다. 동시에 반사적인 행동에 의존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내부 고통에 자극을 최소화와 회복을 위해서 행동 개입의 최소화에 주력을 한다.
늘 고통이 함께하고 있으면 당연하게도 행동 통제도 늘 함께 한다.
정말 사람의 복잡은 혀를 내두르지만, 목적을 위한 효율에는 어이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운영되고 있다. 나중에 말할지도 모르지만, 효율이라는 목적에 인간의 신체는 상상도 못한 희생을 감수한다. 그것도 극소부위가 아니라 전체적인 밑바탕을 전제조건으로 말이다.
다시 돌아와 말하지 말아야 할 것과 통제 되지 않는 행동에 괴로워 하는 것은, 앞 게시물에서 말한 경직과 반사신경에 달려 있다. 반면에 행동을 막는 것은 고통의 역활이 크다.
다만 조건반사와 고통의 비교우위에서 고통이 앞서기에, 기존 고통과 연관된 말 더듬이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말하는 방법중에 틱증상 처럼 정상적인 말을 하고 싶지만, 순간 튀어나오는 말로 분위기에 맞추지 못해 미움받고 고생한다.(더군다나 경우에 따라서 고통이나 생각통제에 문제점을 자각 못하기도 한다.)
말을 할 때 자신의 의지를 하나도 섞지 않고 척수반사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착한 사람도 생각 정리안되고 단어적통제 안된 말로 기분나쁘게 튀어나와서, 지적 받을 때 쯤에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 라고 듣는다. 상식적으로 불이익이 크고 자주 이런 것을 격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라서, 스스의 충동에 절대 다짐을 늘 맹세하며 산다.
누군가 기쁨에 험담을 할 수는 있겠으나, 친해지는 목적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불쌍사에 불이익을 감수하며 말하겠는가. 그것도 대놓고 말이다.
또한 조금 완화하면 처음에는 이상한 말을 하다가 점점 논리적이 정상적인 말을 하거나, 그 반대로 논리적이다가 마무리를 이상한 말로 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단순히 생각하면 아주쉬운 해결방법은 스스로가 조건부 침묵하면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모라고 하던지, 침묵으로 대부분 해결이 된다. 너무나도 쉽고, 해결의 방법중에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침묵과 환경에 녹아드는 말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놈은 억울하게도 상대방이 말을 건내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고싶지 않아도 하게 만든다.
고통의 경우에는 어떨까? 하고싶다고 하는 것을 막는 것보다 내면의 고통에 생각 자체를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행동에 큰 준비가 필요하다.
정상적인 사람이 쓰레기가 그냥 신경쓰이면 해결하고, 간단히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빠른 손놀림과 짧은 시간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못하는 것중에 하나가, 정반대로 느린 손놀림과 상상이상의 넉넉한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에 있는 사람은 그 쓰레기에 눈이 가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행동 오토사냥마냥 돌리고 만들어 놓은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한다. 심지어 버릴려고 할 때 고통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생존 필요 행동 이외에 다른 확장성이 아예 막혀버리는 것이다.)
물론 모순적으로 들리겠으나, 고통이라고 전부 칼에 찔린 것 같은 고통이 아니라, 자각하지 못한 고통이나 괴로움도 포함된다. 사람은 상상이상으로 고통을 통제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병중에 갑자기 말기 암환자가 되는 큰 이유이기도 한다.
고통이라는 것도 따로 게시물을 만들어서 길고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니, 본 목적으로 운동에 대해서 말해보자.
흔히 운동을 안하는 것이 게으름에 빗대어서 의지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다만 누구에게는 맞는 말이고, 누구에게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밤늦게 까지 일하고 나서 운동하는 사람이나 새벽에 나와서 운동하는 사람, 그리고 더운 날씨나 추운 날씨에 아랑곳 안하고 야외 활동을 하는 걸 말이다.
위의 활동성은 나이들면서 망각하고, 고통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막판에 몰려 부상당하는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을 비난만 할 뿐 이해를 못한다.
혹여 운동하는 당사자들은 그 모든것을 이겨내고 자신은 운동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출하지만, 막상 운동만 게으른 당사자가 공부를 말하거나 사람이 비난하는 사람이 잘하지 못한 것을 들이 내밀면 딴이야기 한다고 화를 낸다.
그래서 이처럼 당사자의 행동을 고치고 싶으면, 아낌없는 조언과 명언이 아니라 행동 할 수 있는 나름의 환경이 필요하다. 너무 심하면 아예 방치가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흔히 착각하는 것이 운동이 곧 건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회복요건이 되지 못하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악순환이나 , 기존행동을 더 심해지게 만든다.
여기서 운동을 할 때 반사신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운동의 목표에 자신을 몰아 세울 때, 점점 감당이 안되거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결과 문제가 드러난다.
앞서 말한 감당안된 상황에서 몸은 오토사냥하듯이 몸을 돌리고 운동도 마찬가지다.
아무생각도 안나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어서 운동한다는 사람에게 조언 하고 싶은 것은, 부상에도 똑 같이 아무생각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앞서 말했듯이 사람은 고통에 상응한 대응이 있어서, 운동할 때 아프지만 가만히 있을 때는 이상하지 않는 능력도 부여한다.
또한 가만히 있을 때 아픈 것 조차 혈액순환으로 회복하거나 혈액순환으로 고통을 낮추고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후 점점 내성이 생겨서 성장을 위해서 적응했다는 해괴한 설정의미까지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다시 말하지만 고통이 생기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나중에 살펴보면 그 문제은 더 심각해지거나 방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어렸을 때 삔 발목을 평생동안 유지된다 던지, 감기들 때면 아팠던 부위가 예전 부위와 겹치는 등등 말이다.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고 게시물에 많은 것을 알고 있는듯, 허풍을 펼치면서 정작 치료나 해결방법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게시물이다. 나름 사회에서 임시처방 이랍시고 급성 허리 통증에 도와주었던 사람 때문에 소문이 퍼져서( 부상으로 다 죽어가고 허리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을 10분만에 일으켜 세웠으니...), 사람들의 관심이나 내가 대응하지 못하는 관계까지 생겨 버렸기 때문에 후회를 많이 했다. 동시에 참견의 무거움을 너무 가볍게 본 것도 반성하고 있다.
또한 운동 자부심으로 옆사람에게 멋모르고 참견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당시에는 도와준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문제가 생겨도 도와준다는 것의 정의를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멋모르게 떠들어 대는 게시물에 너무 감정이입할 사람도 없을 거라고 보고, 개인 기록물 성격에서 정확도가 높을리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