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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그저 생각만 하는 것도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존재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보면, 명백히 틀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틀리다는 것은 심성이 나쁘다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그 생각이나 감정이 잘못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감정이 잘못될 수 있냐고 하면, 그렇다. 이는 생각과 인지와 감정이 맞지 않을 때 그렇게 된다.
전문 용어로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분명 논리에도 맞지 않고, 그런 논리를 생각할 수준이 되고, 실제로 답을 이끌어내더라도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은 믿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지부조화란 그런 경우를 말한다.
인지부조화는 생활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누구든 한 번은 겪었을 것이다. 아니면 글에서라도 한 번은 보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데, 그걸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를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도 재밌어하리라고 확신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확실한 가치가 있고 어느 정도는 재미가 있고 혹자는 명작이라 평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실제로 읽힌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두렵다. 지금까지 믿어온 내 글에 대한 애정이 상처 입을까 봐 그렇다. 여러 사람이 나를 보아주고 관심을 둬 줄 때마다 나는 가치가 있음을 잠깐씩이나 느끼겠지만 이도 잠시일 뿐, 별다른 소통 없이 나 혼자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까, 내 애정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도 재밌어하리라고 확신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는 재밌으리라 확신한다. 미래는 나아질 것이고, 점점 나는 괜찮아질 것이고, 언젠간 장밋빛의 나날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속으론 그렇게 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믿음을 떨칠 수 없다.
반면 또 다른 이유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몇 줄 위에서 내 이야기를 했었으니 다시 거기로 돌아가 보자. 아직 나에게 기억에 남는 평을 내려주는 사람은 얼마 없다. 이는 갈 길이 멀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악평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개선점을 지적당한 적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고쳐나가고 있을 뿐, 충격적이게 안 좋은 평을 들은 기억은 없다.
오히려 평이 들어오면 항상 나에게 관심과 칭찬을 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지금 상당한 노력을 들이며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노력을 해가면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여럿 들어왔지만, 아쉽게도 나는 노력파가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노력에 익숙해지도록 바뀌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나는 그런 평들을 듣고 지내왔다. 지금까지는 별 문제없이 이야기가 진행됐고, 결국엔 좋게 끝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했던 내 믿음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난 그런 평들을 믿고 나아갈 수 없다. 가끔씩 있는 착한 분이었겠지. 아니면 그저 눈이 낮은 독자일 뿐이었겠지. 아니면 잘 읽어보지도 않고 예의상 하는 말이었겠지.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역시 두려워서다. 말했듯이 나는 그리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말들로부터 의욕을 얻고 노력을 하여 더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거란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노력과 투자하는 시간이 늘지도 않으면서 그런 말들에 안위를 취할 뿐이라면, 나는 오히려 퇴보할 뿐이란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에 믿기가 두렵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언제나 걱정거리였지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정말로 실패해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런 쓸데없는 기우에 빠져 사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 했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들은 애초부터 그저 믿으려 들지 않아서 믿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걸 믿으려 하지 않으니 믿게 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 자신도 그런 설명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지간히 충격적인 사실이 아닌 이상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애인과 헤어진 사람에게 나중에도 다른 이성을 만날 것이라고 하거나, 그 애인의 단점을 짚어가며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소중했던 동료나 가족을 떠내 보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없어도 생활이나 프로젝트를 잘 진행할 방법을 설명한들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이런 이들이 논리적이지 못한 것은 그게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걸 안다. 다만, 감정이 이성을 앞서는 상태일 뿐이다. 설령 그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게 오히려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일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저 갈 곳 없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마치 강한 의지를 가진 듯이 일을 해나가는 존재가 그런 이들이다. 때로는 극적이게도 보이고, 때로는 한심하게도 보이겠지만, 이들 자신은 강렬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논리는 논리로 상대할 수 없다. 그게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해주고, 안아주고,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고, 혹은 생각을 바꿀 만한 설득력과 임펙트를 가진 것들을 접하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된다. 그건 책이 될 수도, 영화가 될 수도, 그림이나 음악이 될 수도, 추억이 될 수도, 아니면 그저 잠시간의 대화나 한 마디의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들에겐 그저 그들의 감정을 위해, 마음에 입은 커다란 상처를 메꿔주기 위해, 떠나간 이들을 안녕히 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주면 될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도움이 될 것을 하면 되냐고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논리나 방법에는 최선의 수나 정답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 복잡한 미로가 있으면 그 미로를 영원히 헤맬 수도 있고, 오래 걸려서 빠져나가기도 하고, 벽을 부수고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궁의 벽이 사실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설령 아무리 얇은 벽처럼 보여도 때로는 그 벽을 어떻게 부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길을 알려주려고 해도 같은 곳을 돌기에 바쁜 사람도 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떠도는 이들은 언제나 안타깝다. 내가 그렇다.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본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상당히 있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 테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런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다.
자신의 감정 속에서 헤메는 사람들은 항상 도움을 청한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길 바란다. 그들은 설명을 바라지 않는다. 구체적인 길을 알려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 게 필요했다면 이미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 입은 속을 드러내는 일은 어지간히 어려운 일이라 직접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늘 그랬다. 은근히, 하지만 확실히, 잘 살펴보면 어딘가 변해있고,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한다. 단순한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말하려 들지 않고, 물어도 무언가를 숨기는 듯하다면 대개 확실히 그렇다.
평화로운 나날이라고 하던가. 실제로 여러 상황을 떠올려보면 마냥 평화롭기만 한 경우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모두가 그렇다. 평화로운 와중에도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자칫하면 터질 때 즈음이 되면, 이들은 언제나 도움을 청한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도움을 청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고민에는 여럿이 있지만, 혹시 그런 고민이 내가 말한 감정적인 부류의 고민이었다면, 부디 그런 이들을 알아주고 도와주기를 바란다. 당장에라도 떠올려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를 도와주어라. 강요는 아니다.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힘을 내는 것을 보길 바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