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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이 될 때를 읽고
언어의 온도라는 에세이를 읽고 너무 좋아서 서점 에세이 코너를 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죽음을 앞둔 30대의 유망한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과연 절망 말고 무엇이 있을까?"하는 호기심에 끌린 것도 있었고 그 모습을 생각하니 약간 불쌍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의사였다면 30대까지 죽어라 공부만 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주인공 폴 칼라니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그리고 용기가 있었다.
폴은 전도 유망한 신경외과의다.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과 생물학 학사를 따고 영문학 석사를 마쳤다. 그러던 그는 영문학에서 자신이 궁금해하는 죽음이란 것의 본질로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죽음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의대를 진학한다. 신경외과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레지던트가 되었고 자대인 스탠퍼드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교수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그러던 그의 레지던트 생활의 끝이 보일 때쯤 그는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자신의 CT 사진을 보고 자신의 아내 루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폴은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절망했고 분노했다. 그러나 암이라는 것, 아니 모든 병이라는 것이 그렇듯 죽을 날을 정확하게 집어주지 않는다. 너무나 잔인하게도 죽음의 지점을 희미한 안개로 가리고는 그 안갯속에 희망이라는 얄궂은 것을 뿌려놓곤 한다. 폴은 의사에서 환자로 담담하게 자신을 놓기로 한다. 그리고 아내 루시와 자신의 아이를 갖는다. 그는 알았다 앞으로 아이의 삶에 놓이게 될 부재를.... 그리고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딸 케이디가 자신을 기억하는 딱 그날까지만 자신에게 시간이 있기를 바랬자만... 그는 암이라는 죽음의 안갯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의사와 환자, 희망과 절망, 아내와 자신의 아이를 향한 사랑과 피할 수 없는 이별, 그 속에서 헤매며 자신의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닌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을 택한 폴이 본 세상에는 절망만 가득하지도, 희망만 가득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며 때로는 그 담담함이 다른 격렬한 감정보다 내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이 책의 저자 폴은 이 책의 마지막을 맺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즉, 이 책은 미완성된 책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이 책이 완성되지 못했기에 완성된 책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세상의 누구도 인생을 완성하고 죽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죽음이 완성된 것은 아닐까. 혹시 죽음의 본질이라는 것이 미완성이 아닐까... 그리고 루시는 그가 죽었음에도 자신의 옆에서 함께 있음을 말한다. 죽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끝낼 것이라고 하지만 이 부부의 사랑을 끝낼 수는 없었다. 또한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삶을 열심히 살 것을 또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우리가 죽음과 삶이란 무엇인지 때로는 머리로 때로는 가슴으로 음미하게 해준다. 아마도 폴은 이 책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숨을 거두었겠지만 내 생각에도 이 책은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충분히 잘 완성된 책인 것 같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본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