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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딸바보아빠가 본 로건. (예고편 정도의 스포)
게시물ID : movie_652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빠별
추천 : 3
조회수 : 73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7/03/01 19:28:42

내 딸은 어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사는 곳은 민주주의 사회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주의 메커니즘, 최소비용을 들여 최단기간에 최대이윤을 남기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그 단순명쾌한 규칙. 자본의 윤리는 승자의 로비. 노동착취는 구린 운동권 시대의 구호. 복잡하게 분화된 계급은 착취의 메커니즘을 감추는 퍼즐. 불평등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성장의 동력으로 둔갑 되었다.


자연의 처참한 경고를 받고도 여전히 자연을 무한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며, 땅의 소유를 넘어서서 씨앗의 소유권을 법으로 지정했다. 최소비용 최단기간 최대이윤이란 자본주의 논리에 걸맞게 '유전자 변형'이란 외압으로 자신의 모습을 잃은 식물들, 엑스맨들. 변이는 이제 '돌연'이 아닌 목적을 위한 통제된 수단. 옥수수는 영양 공급의 목적이 아닌 또 다른 대량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전락의 탈출구로서 엑스맨의 세대교체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운명. 영광을 뒤로한 돌연변이는 유전자와 변이를 통제하고 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세상에 맞선다. 한낱 수단이 아닌 존중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서. 중년의 엑스맨은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내 아이는 무엇을 먹고 있는 걸까? 로비의 힘에 지배받는 의학계는 현대인의 건강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과 선택의 문제로 치부한다. 내 아이는 어떻게 교육받으며 성인으로 자라날까? 공교육의 문제를 사교육에 의존하고 경쟁으로 아이를 몰아넣는 부모의 책임으로 얘기하곤 한다.


냉정한 자본의 이윤 논리. 노동자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고, 수단으로서의 부품은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고, 쓸모없어지면 폐기한다. 내 아이는 이러한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게 될까? 그 이윤을 위한 품목은 대량학살 무기일 수도 있고 옥수수일 수도 있고 유전자조작 씨앗일 수도 있다.


뭐든 이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드러내 본 적 없는 야망을 속에 품고 폭풍우처럼 내달렸던. 청춘은 기억 너머 흑백사진첩에 켜켜이 접어져. 내 나이 이제 47. 딸아이와 옆지기를 친정 나들이 보내고 10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코끝엔 피곤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품었던 야망의 불덩이는 가슴 속에서 여전히 꿈틀꿈틀 온기를 떨구지 못하는데.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내가 가야 할 정점은 내 인생길 위에 있다고. 그곳은 경쟁의 승리로 갈취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고.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로 언젠가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뽐낼 수 있는 빛깔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짓밟혀 그 빛깔을 잃게 될 거라고. 타인의 빛깔을 존중하고 나의 빛깔을 믿는다면, 결코 짓밟힐 일도 짓밟아야만 할 일도 없을 거라고.


우리 기성세대는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드는 데 아마도 실패한 것 같다. 너희에게 맡긴다. 무책임하게 넘기는 게 아니라 함께 투쟁하는 방식으로.


엑스맨의 세대교체. 영화 속 엑스맨과 유전자 변형 옥수수밭은 같은 운명일 수도. 돌연변이의 힘은 그 개체성으로서 존중했을 때와 조작으로 변이를 일으켜 통제했을 때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자본의 탐욕은 그러한 것을 지배 통제하에 이윤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늘 그렇듯 수단으로서 적합하지 않을 땐 가차 없이 폐기처분.


영광을 뒤로한 중년은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조명을 받지 못하는, 상위계급에 오르지도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족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쓸쓸한 일상의 주인공으로서 로건은 '헐리웃 스타일 히어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어쩌면 이 세상에 진정으로 돌연변이 히어로가 존재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그는 울버린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의 바람이 투영된 히어로가 아니었다. 로건은 악몽을 꿨다. 자신이 사람을 해치는. 로라도 악몽을 꾼다.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는. 평화와 안전과 자신감보다 공포와 두려움과 좌절감을 먼저 배운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펼치지 못한다. 로건은 짧게라도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많을 거라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많을 것이라 보여줬고 함께 싸웠다. 쓸쓸한 영화. 잔인한 표현은 분노와 서글픔에 파묻혀버린. 세대교체의 건널목으로 이보다 적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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