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직전의 문턱에서 나의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
원치않던 파혼.. 그리고 그 어떤것들도 정리되지 못한 채
이런저런 고통과 방황의 시간들이 점철되던 작년 겨울 문턱에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어느샌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다시는 없을 감정이라며,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보였던 나에게
이미 한참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그 두근거림과 설렘을 주었던 당신..
집에서 담은 김장을, 혼자 사는 나에게 필요할것같다며 가져다줬던 그날, 나는 답례로 당신이 좋아하던 고기를 사주었다.
당신의 웃음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웃음이 좋았지만, 내가 그것을 좋아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며, 그러지 않고자 했다.
어떤 하루는, 원래 관심조차 없었지만, 이전에 당신이 얘기했던
당신 집 근처의 유명한 김밥집의 김밥이 한번 먹어보고싶었다며
당신 집 근처로 찾아와 저녁을 못먹었으니 저녁먹을동안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
그랬던 핑계로 당신을 불러내어 김밥을 먹고 갔다.
약속했던 30분의 시간이 두어시간이 되도록 당신에게 나는 내 고민이랍시고 나의 일상적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놨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당신은 어떠한 싫은 내색 없이 잠자코 들어주었다.
라이언을 좋아하던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혼자 잘때 외롭지 말라며, 라이언 인형을 덥썩 쥐어주던 그날..
십분만 시간을 내어달라 했고, 두어시간 넘게 당신을 붙잡았었다.
그저, 당신과 그렇게 이야기하는것이 좋았다.
그냥 그렇게 당신을 보고, 이야기하는것이 좋았다.
그 겨울,
광화문광장은 늘 주말마다 엄청난 시위대의 인파가 넘실댔다.
한번도 빠짐없이 늘 그 집회에 참석하던 나를 보며
자신도 그곳에 함께 가고 싶다 한번쯤은 꼭 함께 데려가달라던 당신과 함께 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당신에게는 처음이였을,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인파에 당신은 길을 잃을새라, 내 팔을 꼭 붙잡고있었고,
나는 자연스레 당신의 손을 잡고 그 광장을 행진했다.
그 추웠다던 그 날씨, 첫눈이 내렸던 그날 광화문에서 나는 잡았던 당신의 손을 놓고싶지 않아 그 광장을 밤새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파혼 이후, 나에게 있어 누군가를 만나는것, 사랑하는것, 그 사람과 다정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
내게는 없을, 없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랬던 내게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저만치 밀어내게 만든 사람이었다.
당신의 웃음, 따뜻한 말..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
나는 그러나,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당신과의 만남을 누구에게나 축복받으며 이야기할 수 없었고,
지었던 빚은 여전히 나를 압박하고 있었으며
사명감인지 뭔지 모를 그것들은 여전히 내가 있던 그 지옥같은 현장을 못벗어나게 했다.
여전히 내 삶은 엉망진창이였다.
그 어떤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널부렸던 내 과거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스러운 상황들..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나에게 실망했던 당신..
당신의 손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갈등이 생겼다.
받아주지 못할 갈등이 아닌, 순전히 나의 안일함과 내 못난 과거에서 비롯된 갈등들..
너무 사소했고, 들어주지 못할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는 그때, 그렇게 감내해 내지 못했다.
나는 침묵했고, 그런 나에게 당신은 실망했다.
그리고, 당신의 입을 빌어, 우리 관계를 끝내버리고 말았다.
당신에게 온갖 상처를 가득 안긴채...
..그때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신이라는 버거움을 덜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또한, 그런 당신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스스로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였으므로, 나같은 사람에게 오지 말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삭히며, 살아왔다. 아무일 없던 것처럼..
그런 하루를 보내는 어느날, 당신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 예쁜 미소를, 행복하게..
잘 되었다.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
다시금 심장이 쿵 하고 땅에 떨어지는
아찔했으나, 다행히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다.
내 옆에서 아팠을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는 당신..
당신이 행복해짐에 행복하고
당신이 행복함에, 나는 스스로 딱 지금 하루만 울기로 했다.
곁에 둘 수 없었던, 내 가시돋힘에 하루하루 죽어가던,
그랬던 당신이 행복하게 미소지음에
내가 그런 당신의 사랑이 되어줄 수 없었음에 스스로를 딱 하루만 원망키로 했다..
당신을 곁에 둘 수 없도록 만든 내 과거들과
나의 나약한 마음을..
잘 지내길 바란다..
못다 전한 내 마음 그냥 허공으로 흩어지고
한두번 찾아갈까 망설였던 그날 밤의 그 순간들도
오롯히 내가 가져가야 할 몫이다..
그렇게 잘 지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