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빠'들이 항의하던 하나의 방식.
기자로 일할 때 마침 서태지가 등장하여 기사를 엄청 많이 썼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갈라졌기 때문. 바로 그 분수령이 되는 결정적인 시점에 서태지가 등장했다고 봐도 좋겠다. 시대가 서태지를 만들고, 서태지가 시대를 만들었고.
서태지 기사만 썼다 하면 항의 전화 혹은 편지가 여러 통 왔다. 폭주는 아니고. 처음에는 기사 내용에 불만이 있는 어린 팬들의 항의쯤으로 여겨 귀찮아 하다가 차츰 생각을 바꾸었다. 항의는 진지했다. 내가 모르는 내용도 많았다. 물론 "울 오빠 왜 건드려" 하며 불만스러운 감정을 표출하는 어린 팬도 일부 있었으나, 진지하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사주간지를 일부러 찾아서 읽은 독자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일부 장문의 편지에는 다음 기사에 참고할 만한 내용도 많았다.
항의 전화나 편지를 받은 직후에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약간 신경을 쓰기도 했다. 내부 검열이라고 하긴 뭣하고 조금 더 정교하게 기사를 써야겠다고 한 번쯤 생각한 정도. 물론 마감시간 닥치면 그런 거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지만.
기사가 나가면 은근히 반응을 기다렸다. 한번은 어느 여학생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항의 편지치고는 독특했다. 지적이 많았으나 예를 갖춘 편지였다. 무엇보다 글이 좋았다. 항의 편지를 누가 이렇게 예쁘게 쓰나 궁금해서, 연락해서 만났다. Y대 영문과 학생이었다.
나 : "나는 처음에 당신들이 앞뒤 분간 못하고 연예인 따라 다니는 빠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편지들을 받고 많이 놀랐다."
팬 : "잘못 쓴 기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는 하지만, 항의하는 방식이 서태지한테 누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나 : "누가 누구에게?"
팬 : "나 같은 언니들이 어린 동생들에게."
서태지와아이들기념사업회, 일명 서기회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이 사람과 두 번쯤 만나고 통화도 몇 번 했는데 서기회는 한참 후에 물어봤을 것이다).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나 : "어째서 기념까지 하나? 이런 숭배는 너무 하는 거 아닌가?"
팬 : "사람이 아니라 그 정신을 기념하고 드높이자는 건데, 뭐가 너무하다는 거냐? 그 정신을 부정하면 설사 서태지 본인이라 해도 욕 먹을 거다."
서태지가 컴백했을 때 다시 연락했더니 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하도 말을 잘 해서, 아예 원고를 청탁했다. 그러면서 했던 문답.
나 : "서태지 귀국하는 거 봤나?"
팬 : "공항 가서 봤다."
나 : "나이 들어 공항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팬 : "우리 같은 언니들이 뒤에 지키고 서 있어야 어린 애들이 조심한다."
나 : "서태지 보니 어땠는데?"
팬 : "걔도 늙었더라고."
-----------------펌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겪으면서 저도 신문사에 몇번 전화 해봤습니다만....... 신문사 기자들은 엄청 고자세였고
TV가이드 같은 잡지들 기자들이 좀더 나긋 나긋 했었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