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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돌아보니 오른쪽 다리가 있어야 할 장소에는 돌덩이 뿐이다.
나는 다시 소리를 지른다.
목이 찢어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
넓은 마트였던 건물은 돌덩이로 뒤덮힌 잔해가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살짝 허리를 돌리려고 하자 뿌드득 소리와 함께 다리에 격통이 느껴졌다.
눈이 뽑힐 것 같은 통증을 버틸 수 없었다..
나는 이내 기절하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얼마가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헛웃음만이 나왔다.
하하하..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
내가 죽는 것은 상관 없지만
집에는 아직 어린 남동생과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동생이 있다.
그 아이들은 내가 없어선 안된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나는 허리를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프지 않았다.
내 다리는 이미 바스러져 죽어있었다.
용케 살아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그래도 살점은 붙어있다.
나는 옆에 떨어진 유리 파편을 바라봤다.
꾹 잡았다.
웃옷을 벗어 입에 물었다.
최대한 꽉 깨물었다.
그리고 유리조각을 내리쳤다.
착, 착 하는 소리와 지직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눈은 핑 돌 것만 같았고, 입에서는 피맛이 났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나는 죽는다.
사정없이 내리치고 내리쳤다.
힘이 빠져 입에서 옷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내 오른 다리는 완전하게 잘렸다.
바삭 거리는 돌을 집고 올라갔다.
몇일이나 못 먹었는지, 못 마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신력 하나로 돌을 집었다.
외다리를 보면 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 아이들은 착하니까 울어버릴 것이다.
아니 종훈이는 해적같다고 부러워 할 수도 있겠다.
하하하.
웃으면서 돌을 집고 집었다.
보고 싶다.
내 동생들을 꼭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였다.
팍 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조인가.
나는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그런 힘이 어디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팍 팍 소리는 점점 커졌고
드디어 세찬 빛이 들어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살았다.
살아남았다.
나는 구조대의 손을 잡고 꺼내졌다.
흐릿한 정신이 끊어지기 전에 보인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의외로 치료가 빨랐다.
바로 외출이 가능하다고 할 정도니까.
나는 외출 허가를 받자마자 바로 밖으로 달려갔다.
시원한 공기, 밝은 빛.
그것들을 넘자 익숙한 길이 보였다.
저 가로수들이 깔린 길을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단골 가게가 보인다.
단골 가게 아저씨는 여전히 빨간 코에 헤롱헤롱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 가게에서 왼쪽으로 꺾어 언덕길을 내려가면 빌라 촌이다.
작은 빌라 촌의 가장 앞에 있는 작은 빌라의 문을 열었다.
깜박이는 불빛과 회색빛 계단을 올라 3층 301호.
그 곳이 나의 집이다.
나와 내 동생들의 집이다.
문을 열었다.
익숙한 우리집이다.
종훈아. 예은아.
돌아왔어.'
하하하.
돌무더기에서 굴러떨어졌다.
나는 멈춰버렸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더이상 행복한, 기적의 미래를 바라기에는 늦었다.
바싹 마른 입에서는 신음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눈물은 나왔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보고 싶다.
종훈아. 예은아.
보고 싶어.
나는 흙무더기에 손을 떨궜다.
그리고 마지막 한 숨을 쉬었다.
-
"엄마! 빨리와!"
"알겠어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참, 유라는 걸을 수 있게 되자 카트에 앉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게 귀여운 토끼 같다.
나는 훗하고 웃었다.
나는?
나는 분명..
다리를 슥 보았다.
다리가 있다.
다리를 왜 봤지?
종훈이.. 예은이..
그들의 이름이 입가에 맴돌았다.
나는...
갑자기 뚝. 소리와 함께 유라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세상이 암전되었다.
"음.. 처음이라 그런지 문제가 좀 있네."
갑자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신 누구야? 나는..."
"좀 조용히 해봐."
갑자기 수수한 복장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이거나 봐. 그럼 알겠지."
그는 거울을 툭 하니 던졌다.
거울에는 내가 비치고 있었다.
있어야 했다.
하지만 비치고 있는 것은 중년의 한 남성이었다.
누구지?
"이 사람은 누구지? 이건 내가.."
그제서야 모든 것이 떠올랐다.
"이제야 깨달았나봐."
"나...나는 잘못 없어! 이게 왜 내 잘못인건데!!"
"그래.. 니가 사고를 일으킨 건 아니지. 마트에서 대규모 가스 폭발이 일어나서 건물이 붕괴한 것이 너 때문은 아니야."
"근데 왜 구조대를 막은거야? 왜 이틀동안 아무것도 안한거야?"
"그건.."
나는 그의 살의가 담긴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또 헛소리로 빠져나가기엔 이미 늦었어."
"너가 이 건물의 부실 공사와 깊게 엮여 있는건 전국민이 다 아니까."
"그래서 너가 여기 있는거잖아?"
그러고보니.
여긴 어디지?
"529."
"그게 무슨 숫자지?"
"역시 모르는구나."
"마트 붕괴 사건으로 죽은 사람의 수."
"그중 520명이 승인했고 8명이 승인 대기 중이야."
"무엇을.."
"지금 이 '회상 시스템'말이야."
"너가 뉘우치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거든."
"넌 그냥 감옥에서 돈 펑펑 쓰다가 뒤지겠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말이야."
"그래서 도입한 새로운 시스템이야."
"죽은 사람이 되는거지. 직접."
"어때? 첫번째 사람은?"
"꽤나 슬프지? 아프지? 니가 인간 새끼가 아니라고 해도. 직접 그 상황이 되면 다를거야."
"앞으로 527명 남았어."
527명?
527명이 된다는 것인가?
그럼 그 시간은..
"사건 당시는 250명, 사건 1년전 부터가 150명, 사건 5년전 부터가 120명, 생애 전부가 8명이니까."
"한 990년인가 1000년이네."
"걱정마. 네가 죽을 때가 되면 뇌만 꺼내서 남은 시간을 채우게 할 꺼니까."
1000년이라니.
그 아득한 숫자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 나를 풀어줘. 뭐든지 원하는 건 다 줄게. 정말이야. 돈이든 뭐든 다 줄테니까. 풀어만 줘."
그에게 정말 모든 것을 다줘서라도 이 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건 버틸 수 없다.
나중에 나오고 처리하면 된다.
우선 도망쳐야한다.
"그 역겨운 입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생각하는 것은 전부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헛소리 하지마."
"너 때문에 준호형은 죽었어."
"설마. 하고 생각했지? 그래."
"누나랑 내가 그 문앞에서 그 문이 열리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우리들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제야 어느정도 알았을 려나?"
"그때 우리들을 억지 울음으로 끌어 안으면서 사진이나 찍었을 때는 몰랐겠지만."
"그런.."
"어때? 이제 좀 알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그는 웃고 있었지만
매우 슬픈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할까."
"다신 돌아올 일 없을거야."
"뭐,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어?"
나는 살려줘. 같은 뻔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딱 한가지 걸렸던 것이 있었다.
"총 사망자 수는 529명이라고 했다만, 승인한 사람은 총 528명이었지."
"1명은.. 날 용서해 준 것인가?"
"참 뻔뻔하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 1명은 말이야."
"가장 열성적으로 구호 활동을 하던 아버지였어."
"나도.. 참 많이 도와주셨지. 아버지는 없었지만 저런 사람이야말로 아버지 아닐까 할정도로."
"나중엔 구출작업마저 직접하겠다고 달려나가셨어."
"그리고 결국 자신 손으로 자신의 아들을 찾았지."
"피웅덩이에 뭉게진 시체였지만."
"그는 우리들에게는 꼭 모두를 찾자. 너희들의 가족도 조만간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웃으면서 말했어."
"그리고 다음 날, 죽었어."
"그의 손에는 피칠갑이 된 사진 한장이 쥐어져 있었지."
"그가 전날 아들의 꽉 쥔 손에서 찾은 사진 한장."
"그건 참 행복해보이는 가족사진이었어."
"그가 널 용서했냐고?"
"이젠 알겠지?"
"널 용서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말이야."
"한번 1000년동안 뼈저리게 느껴봐."
"꿈꾸는 지옥이 끝나면"
"진짜 지옥으로 떨어지겠지만."
철컹 소리와 함께 세상이 밝아졌다.
나는.
"엄마!"
"알겠어~"
돌연 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지옥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