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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봉준호 팬보이의 개인적 옥자 감상문
게시물ID : movie_681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생을즐4
추천 : 7
조회수 : 163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7/03 14: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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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옥자는 자본주의와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포괄적인 주제를 다룬 이야기라 봅니다. 

영화는 온통 자의적 정의에 매달려 올바르지 못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인간들로 가득차있죠. 

미란도 자매 중 한명은 (지극히 개인적인) 꿈과 이상을 쫓는듯 보이지만 그 목적은 언제나 자본과 기업의 수익이며 그것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수단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가지지 않습니다. 나머지 한명은 오히려 순수하고 솔직하게 이익만을 쫓는 탐욕적 인간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담백한 캐릭터입니다. 이 두 캐릭터는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 대자본의 두가지 얼굴을 대변합니다. 착한기업 이미지 마케팅으로 밝고 희망찬 환상을 팔거나, 혹은 대놓고 악당을 추구하며 순수하게 이익을 쫓는 욕망 그자체이거나요. 상반된 듯 하지만 이 둘은 하나이며 언제건 상황에 따라 그 얼굴을 서로 바꿔치기 하는 두개의 가면일 뿐이죠. 산업폐수 방류 호수의 폭발 사건으로 한번 바뀐 가면은 뉴욕 돼지소동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을 뿐 미란도 기업이란 자본 자체는 항상 그대로 그자리에 있습니다. 철옹성처럼 묵묵히요. (이러한 점에서 두 자매의 뒤에서 브레인 역할을 하던 나이든 임원 캐릭터의 모습에서 어떤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느꼈습니다. 가면이자 허수아비인 대표자 인간은 바뀌더라도 자본은 그 뒤에 숨어 모든걸 조종하며 영속한다는 거죠)

ALF 는 순수하고 순진하지만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습니다. 자신들의 순수한 신념을 지킨답시고 등장과 동시에 온갖 부조리극 코미디를 발사하더니 기어이 스스로의 신념과 반대되는 모순 속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립니다. 물론 이런 '저항세력'에 대한 봉감독 특유의 애잔한 애정의 시선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지만(이들의 이 바보같은 행동들을 귀엽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집니다. 괴물에서 보여준 세월 앞에 초라해진 386 운동권 세대에 대한 애잔한 시선과 딱 일치하죠) 이들은 순진하고 순수한 대신 무력하고 멍청하고 모순적인 형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결정적 순간에 거짓말과 폭력을 사용하는 부조리를 보여주죠. 이들 역시 자의적 정의를 위해 부당한 수단을 이용하는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주인공 미자 역시 매우 개인적인 동기로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어릴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이자 가족인 옥자와 함께 살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 단 하나만 가지고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채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자본의 방식으로 옥자의 대가를 지불하고선 명백히 홀로코스트에 대한 은유인 도축공장의 철망 너머로 수많은 슈퍼돼지들을 방치한채 옥자만을 구해 되돌아 옵니다. 와중에 눈물겹게 구조해 낸 새끼 돼지 한마리는 저항이나 혁명이 아니라 소심하고 소극적인, 약간의 죄책감을 걷어내는 것 뿐인 봉감독의 애교섞인 희망일 뿐이죠. 미자는 자본과, 그 자본이 만들어내는 생명까지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 어떤 위대한 혁명이나 전복, 저항을 한게 아닙니다. 그러기에 실패를 한 것도 아니죠. 관객 스스로 영화를 따라가던 어느 순간 ALF의 부추김에 살짝 혹해 그러한 결말을 기대하게 되었을지 모르나, 애초에 미자의 목적은 그쪽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 가족, 내 친구만 구하면 된거였고 그게 목적이었습니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미자의 개인적 동기에 공감과 동정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ALF를 만나고 체제에 대한 전복을 살짝 꿈꾸게 될지도 모르죠. 그러나 결국 혁명은 좌절되고 옥자만을 겨우 구해낸 뒤 다행이란 이기적 안도감에 대한 죄책감을 동정심으로 덮고 애써 외면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봉감독은 바로 이 부분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전달하려 한 것이죠. 

자본의 잔인함, 강력함, 그에 대한 저항의 무력함, 그 속에서 내 가족의 안위만을 챙기게 되는 무력한 개인의 이기심.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신랄하고 냉소적인 비판을 가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시선의 애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봉감독의 전작들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주제의식과 맞닿아있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우스꽝스런 풍자를 하면서도 그러한 부족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 봉감독 작품들의 일관된 특징이고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헐리웃 첫 진출작(설국 열차는 대부분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본 작품이 봉감독의 첫 헐리웃 진출작이 맞습니다)에서도 봉감독의 이런 특징은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네요. 엉뚱발랄해 보일 정도의 괴상한 유머감각을 자랑하는 풍자 부조리극, 그 속에 담긴 깊이 있는 주제, 그러면서도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는 봉감독 특유의 색깔은 헐리웃 속에서도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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